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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가 흐르는 곳,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 가다[Review & Preview] 다큐멘터리 산업의 최전선, 인천다큐멘터리 2015 참관기
성상민 / 만화평론가 | 승인 2015.11.15 06:04

1998년, 한국 영화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격량 속에 서있었다. IMF의 충격파가 한국 영화계에도 고스란히 닥쳐왔고, 뒤이어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과 함께 <타이타닉>과 <아마겟돈>과 같은 할리우드의 대형 블록버스터가 극장가를 휩쓸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무르익더니 1996년 사전 검열 폐지 판결로 족쇄를 던지고 비상할 것 같았던 한국 영화는 당장 서있는 발자취가 위태위태한 시기였다. 불안한 지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자장을 보인 <여고괴담>, 한국의 유명 감독 중 한 명이 된 김지운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보였던 <아름다운 시절>이 공개된 시기 역시 1998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피칭’(pitching)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던지기’라는 뜻 외에도 ‘권유, 홍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피칭’(pitch)는 미국 영화계에선 감독이 제작자로 하여금 자신이 만들 작품에 투자하도록 알리는 행위에 쓰이는 단어였다. 그러한 업계 용어였던 ‘피칭’는 1979년 독립영화 제작자들과 감독들이 모인 행사 IFP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과 독립영화에 투자할 생각이 있는 기업-단체를 모아놓고 제작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장을 만들면서 사적인 행위에서 공개적인 행사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후 198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가 ‘시네마트’(CineMart)를 통해 국제적인 장으로 판을 키우며 피칭을 통한 영화 투자가 점차 주목을 받았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에선 1998년에야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지만, 2015년 현재 부산-전주-부천과 같은 소위 3대 영화제는 물론 대다수의 영화제들에 하나씩 존재하는 영화 제작 지원 제도가 되었다.

피칭은 공개적으로 영화 제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특히 다큐멘터리와 같이 시장이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제작비를 조달하기 어려운 장르의 경우 알음알음 제작비를 구하러 가는 것보다 좀 더 손쉽게 제작비를 투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밝은 부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작품을 어필하기 위해 제작자들이 작품 제작보단 겉으로 드러나는 홍보에 치중하게 된다는 의견부터 독립 영화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피칭의 경우 제작자들 간의 과잉 경쟁을 부추긴다는 의견까지 여러 부정적인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의견은 2014년 말 서울영상집단의 김청승 감독이 공개적으로 날선 비판을 제기한 이래 2015년 초에 개최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토론 주제를 피칭으로 잡을 정도로 피칭에 대한 왈가왈부는 여전히 지속 중이다.

이렇게 피칭에 대한 이야기가 엇갈리는 와중에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인천역 부근에 있는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에서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피칭과 세일즈를 전면에 내건 행사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5’(Docs Port Incheon 2015)가 개최되었다. 피칭에 대한 의견과 별개로 한국 영화, 특히 독립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있어 피칭의 가지는 위상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나흘 간 행사에서는 어떤 모습들이 펼쳐졌을까.

산업적인 입장으로 다큐멘터리들을 바라보다

 

   
▲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피칭에 중점을 맞춘 행사이자, 산업적인 시점으로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는 장이기도 하다. 사진은 다큐멘터리 관련 기업, 영화제, 방송국이 모여서 자사를 홍보하고 흥미로워하는 다큐멘터리의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세일즈 앤 펀딩 가이드’의 모습.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2013년부터 개최되어 올해로 세 번째 행사를 맞이하는 무척이나 젊은 피칭 행사이지만, 기존의 피칭과는 다른 점들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한국 피칭 행사가 영화제에 부속되는 식으로 열린 것에 비해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기획 당시부터 ‘다큐멘터리 펀딩의 신개념 플랫폼’임을 내세우며 다큐멘터리 피칭과 판매에 초점을 두었던 행사이기 때문이다. 메인 프로그램인 다큐멘터리 피칭은 한국에서 만드는 다큐를 대상으로 하는 ‘K-Pitch’, 아시아를 소재로 만든 다큐가 대상인 ‘A-Pitch’,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개봉을 준비하고 있거나 후반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는 작품을 알리는 장인 ‘러프컷 세일’, 그리고 방송용으로 기획 중인 전세계의 다큐멘터리가 모이는 ‘글로벌 다큐멘터리 피칭’(글로벌 피칭)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공간과 행사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투자사 간의 연결에 신경을 쓰고 있다.

비록 일정 문제로 개막식 바로 직전에 열린 ‘러프컷 세일’은 참관하지 못했지만, 이후의 피칭 행사들은 빠짐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피칭은 다큐멘터리에 투자할 권한을 지니고 있는 회사나 단체들이 피칭 후에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나 의견을 나누는 ‘라운드 테이블’을 무대 바로 앞에 설치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해외의 피칭 행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의 것이다. 생각했던 것만큼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지만 장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고심 끝에 선정한 프로젝트들이, 그리고 각각의 프로젝트들을 발표하는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라운드 테이블에 착석한 관계자들 역시 자신들이 어떤 작품에 투자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장인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만든다.

매일 오전 약 3시간 (단, 글로벌 피치의 경우 6시간) 가량 진행되는 피칭은 많은 부분들에서 흥미로웠다. 제작자들이 가지고 나온 작품들을 확인하는 묘미도 있지만, 프로젝트의 발표가 끝난 뒤 나오는 의견들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나오는 작품들이 각자 다양한 색을 지닌 만큼, 라운드 테이블에서 나오는 의견 역시 가지각색이었다. “예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프로젝트다.” “풀어나가는 방식이 흥미롭다.”는 긍정적인 의견서부터 “이대로 제작되면 너무 지루할 것 같다.” “너무 자주 시도된 주제라서 평이해 보인다.”는 비판적인 피드백, 그리고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누는 가벼운 위트성 발언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말들이 오고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다큐멘터리를 바라본다는 하나의 맥락에 바탕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주제가 흥미롭고 의미가 있더라도 제작자가 발표한 프로젝트가 관객이나 시청자의 흥미를 모으기 어렵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면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그러한 지점을 지적하는 피드백이 흘러 나왔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것은 올해 처음으로 준비된 ‘세일즈 앤 펀딩 가이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국내외 다양한 다큐멘터리 관련된 회사, 영화제, 방송국들이 자신들을 소개하고, 다큐멘터리에 투자하는 자신들만의 기준을 말하는 이 섹션에서는 피칭 현장의 발언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날 수밖엔 없다. “우리는 현재적,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감독들이 극장 개봉에만 너무 신경 쓰는 대신 저희 방송국을 통해 경력을 쌓으면서 폭도 넓혔으면 좋겠네요.” “우리가 주최하는 다큐멘터리 마켓은 인터랙티브 매체도 함께 중개하고 있어요.” 작품들이 공개되는 자리가 아니기에 행사장에 모인 이들은 피칭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공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국제 다큐멘터리 산업의 현주소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다큐멘터리의 ‘항구’로 자리 잡기 위하여

 

   
▲ 한국에서 피칭 행사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피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시도는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사진은 올해 초에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 2015에서 다큐멘퍼리 피칭에 대한 포럼이 열린 현장. (사진제공=인디다큐페스티발)

다큐멘터리를 ‘산업’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단순히 찬반의 문제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국을 비롯해 영화 전반이 산업화되었던 것처럼, 시장이 커지고 오가는 사람과 작품이 늘어날수록 산업적인 시선의 필요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방송을 통해서 유통되는 작품의 많은 상황에서 산업적 접근이 어느 정도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동시에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지점이 된다.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을 비롯해 독립 다큐멘터리는 사회 운동과 함께 발을 맞추며 성장했는데, 작품을 완성할 제작비를 모으기 위하여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감독들끼리 경쟁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피칭의 특성상 기업이 중심에 서게 되어 그들의 입맛에 충족하는 다큐들이 양산될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미디액트 <ACT!>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혔던 바가 있다. 조 프로그래머는 “피칭은 단순히 돈만 던지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는 장”임을 강조하며 피칭에서 드러나는 산업적 접근이 다큐멘터리를 다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보았다. 또한 피칭이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역시 SJM문화재단이 작년 용산 참사에 대한 다큐 <두 개의 문 2>에 제작 지원했던 사례를 예로 들며 다양한 기업들과 단체의 참여가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조 프로그래머는 이야기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들은 이 행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행사를 참관한 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간단히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피칭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운영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각각의 프로젝트들도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완벽하게 행사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는 않았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나오는 피드백은 분명 감독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좋은 작품들을 선정하여 이들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제작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산업 논리에 맞춰 틀에 박혀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몇몇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 역시 비슷한 의견으로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작품들이 오고 가며 중간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산업적 접근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우려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마냥 한쪽이 옳거나 틀린 식으로 가릴 수는 없는 것들이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피칭 본선에 진출하는 작품들은 저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소재를 채용하고 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제작 지원 프로젝트 다음으로 제작비를 모을 수 있는 장이자, 다양한 이들과 만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동시에 날카로운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인디다큐페스티벌의 피칭에 대한 포럼에서도 지적되었던 것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피칭의 특성상 다큐 제작자들이 피칭을 준비하고 경쟁을 하기 위해 많은 피로와 부담감에 휩싸이는 등의 문제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행사 참가자들이 모인 공식 파티에서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한 관계자에게 피칭을 비롯한 행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피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많은 의견을 들으면서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칭 행사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피칭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피칭 자체를 단순히 거부할 수도 없지만, 지속적으로 피칭에 대해서 비판하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피칭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의견 공유가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피칭 행사를 표방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확고하게 다큐멘터리가 오고 가는 ‘항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들의 의견을 받는 또 다른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아직 개최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행사이고, 행사가 더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이번 행사의 상을 휩쓴 강상우 감독의 <김군>과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는 두 작품 모두 신인 감독들의 작품인 동시에 사회적인 주제를 독특한 시선으로 접근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어느 정도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9년 처음 막을 올린 영국의 ‘굿 피치’(Good Pitch)가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사회성이 짙은 작품들이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 있게 한 것처럼,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역시 자신들만의 특성을 살리면서 다양한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피칭에 대한 논쟁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발굴하려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좋은 길로 나아가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성상민 / 만화평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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