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다시 화두다. ‘친박 실세’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니는 인사들이 정치권의 커튼 앞뒤에서 연이어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에 이어 홍문종 의원이 개헌론 군불때기에 가세하면서 담론의 파괴력은 급상승하고 있다. 이전까지 개헌을 논했던 인사들이 주로 권력의 변두리로 밀려난 ‘비박’에 속하는 인물이었다면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 ‘친박 실세’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돼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왜 친박들은 개헌을 말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한 번 더 하려고 그러는가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실현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헌법을 고친 당사자가 다음 순서의 정권을 연이어 잡는 것을 법과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 개헌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년중임제’ 개헌을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굳이 헌법상의 조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불가능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영향력을 언급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952년생으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생물학적으로도 비교적 젊기 때문에 퇴임을 한 이후에도 일정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도 이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좀 더 깊이 있는 해석의 열쇠는 ‘박근혜 없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것인가’라는 여권 일반의 불안감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다. 즉, 직접 통치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한 정치를 기득권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개헌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영향력 발휘에 도움이 되는 맥락이 무엇인지는 잠시 뒤에 더 살펴보기로 하자.

▲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사무총장이 26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언론은 분권형 개헌을 전제로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정치의 수준은 러시아 정도까지 추락하는 것이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라는 슬로건은 최근 언급되는 이 제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따르면 애초에 ‘반기문 대망론’을 용인할 때부터 이런 구상이 존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분권형 개헌 이후 탄생할 ‘반기문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하게 될 텐데, UN사무총장을 지낸 사람만큼 여기에 걸맞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뒤집어 말하면 이 구도에서 실제적인 국내의 ‘통치’는 총리가 담당하게 되는데, 이 덕분에 국내의 정치구도는 다분히 내각제적 성향을 띄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분권형 개헌이 추진된다고 해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분권형’이라는 문구 하나에 묶여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불리는 헌법의 형태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제나 마찬가지지만 특별한 환경에서만 총리의 권한이 확대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은 어떤 상징적인 지위만을 갖고 실질적인 통치는 총리가 전담하는 형태도 있다. 그런데 어찌됐든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라는 구호나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라는 구상은 명백하게 후자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맥락을 현재의 정치구도에 그대로 적용하기만 해서는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제도를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그 도입을 추진하는 주체의 의지와 이 제도에 이해관계를 두고 있는 세력들의 동학, 이를 둘러싼 문화 일반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를 그대로 우리 사회에 들여올 경우 애초 예상하지 못했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현실을 다시 돌아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는 ‘양당제+a’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여기서 ‘+a’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제3세력의 존재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겪는 정치구도는 사실상 양당제에 가까운 형태지만, 이에 대한 제3세력의 끊임없는 도전을 용인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에도 불구하고 양당제적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중심제의 효과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여당의 구심이 단단해지고, 이에 대항해 차기에 권력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이 반대에 모여 제1야당이 형성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정계개편의 핵심적 흐름이다. 현재 이 양대세력에 포섭되지 않은 층은 크게 두 부류인데 첫째는 이념적으로 제1야당의 왼쪽을 추구하는 계층이며 둘째는 여당과 제1야당 모두에 유보적 시선을 보내는 중도층이다. 제3세력은 첫째 혹은 둘째를 각각 대변하는 세력이 형성되는 걸로 등장하는데, 보통의 경우 진보적 지지자와 중도층을 모두 흡수하면 일단의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분권형 개헌은 이러한 대통령중심제에서의 일정한 후퇴를 시사하고 있다. 내정을 책임지는 총리를 직선으로 선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원내에서 각 세력들의 합종연횡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정치제도가 변화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연립정부 수립의 제도적 보장일 것이다. 이럴 경우 굳이 같은 당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갈라서기 더 쉬운 환경이 조성될 거고 현재의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중심 질서도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만일 양당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이념적 구분에 의한 다당제가 도입될 수 있다면 이는 한국정치사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된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기 이전에 먼저 떠올려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에 다당제적 질서가 존재했던 때가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남의 평민당, 충청의 공화당, 부산경남의 통민당, 대구경북의 민정당으로 나뉘었던 순간의 소위 ‘지역당 체제’가 그것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다당제적 질서가 도입된다면 극우파당, 우파당, 중도좌파당, 좌파당의 구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역구분에 기댄 측면이 더 가까울 것이다. 현실의 세력을 쪼개보아도 그렇다. 어쨌든 새누리당 내 친박의 정치적 기반은 대구경북이다. 비박은 부산경남과 수도권 일부다. 그렇다면 친박과 비박이 갈라서는 경우는 사실상 대구경북당과 부산경남당이 생기는 걸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보통 친노 대 비노를 말하는데, 이른바 친노세력에 대한 호남지역의 반감을 보면 결국 호남 대 비호남으로 분리될 가능성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 여기에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조합하면 어떻게 될까? 이 질서가 길게 이어질 경우 지역당 체제의 강화된 버전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는 건 결코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한 표는 이길 수 있는 후보에, 한 표는 좋은 정당에’라는 슬로건은 ‘영남은 영남당 찍는다’를 이기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퇴임 후의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경북지역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장 ‘TK물갈이론’ 같은 구상이 현실이 되는 걸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 현재의 친박 세력은 이를 동력으로 총리의 배출을 위한 합종연횡 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들 것이다. 결국 이런 정치는 일정 정도 이상의 퇴행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암울한 소설(?)을 쓴 것은 개헌이나 선거제도개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현실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도 강조했듯 제도를 논할 때 그 제도 자체의 효과나 당위에만 집중해서는 ‘정치’를 잃을 수 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갈 길을 알고 가는 사람과 모르고 가는 사람의 처지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제도 개선의 문제는 다시 각 정치세력이 어떤 정치를 보여줄 것이냐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여권이 개헌을 논하고 정계개편을 꿈꾸는 이때, 야권은 이에 대응할 충분한 정치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개헌이 현실화 되든 말든 이 물음을 또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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