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까지 합치면 정확히 4번째 파병 연장이다. 파병 연장방침을 밝힐 때마다 내세운 논리도 거의 똑같다. ‘한미 공조’와 ‘국내 기업의 이라크 진출’.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대국민담화 형식을 통해 ‘올해 말까지 완전 철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죄송하다’는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24일자 아침신문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부의 파병연장 방침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이다.

자이툰 파병 연장마저 ‘정치 공방’으로 전하는 KBS SBS

▲ 10월23일 KBS <뉴스9>(왼쪽)와 같은 날 SBS <8뉴스>.
사실 자이툰 파병연장과 관련해 언론보도의 방점이 찍혀야 하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나 정치권의 파병연장 찬반에 따른 대선 쟁점 부각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정부의 파병연장 방침에서 나타난 문제점 자체를 지적하는 것은 ‘기본’이자 ‘필수’에 해당한다. 기본적인 요소와 함께 주변부적인 내용이 병행될 때 리포트가 완결성을 가지는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23일 KBS와 SBS의 ‘자이툰 파병 연장’ 리포트는 문제가 많다.

KBS와 SBS는 이날 각각 <뉴스9>와 <8뉴스>에서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관련 리포트를 두 꼭지씩 전했는데 ‘방식’이 거의 똑같다. 노 대통령의 담화문 내용을 한 꼭지 전한 뒤 대선 후보들 사이에 찬반 입장이 나뉘어 이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식이다.

정부의 이번 파병연장이 가지는 문제점이 없지는 않을 터인데 KBS와 SBS는 정부의 방침과 각 대선후보의 입장만을 나열한 채 리포트를 마무리해버렸다. 기본적으로 따지고 점검해야 할 부분은 생략한 채 주변부적인 사안들로만 리포트를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파병연장 문제도 ‘정치 공방’으로 처리가 된 셈이다.

한미 공조와 경제실익의 ‘효과’ … 이제는 냉정히 따져야

▲ 서울신문 10월19일자 1면.
노 대통령이 밝힌 파병연장의 ‘논리’는 그 자체로 문제점이 적지 않다. 우선 한미 공조. 24일자 아침신문들도 많은 지적을 했지만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 공조가 강화됐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경향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 정부가 2004년 김선일씨 피살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규모 파병을 했지만 북·미관계가 어느 때보다 악화됐다는 것도 ‘한·미동맹 강화=한반도 평화 진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다국적군의 철군 행렬이 이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연장은 이런 흐름과 역행하는 것이다. 당연히(!) 다국적군의 철군 행렬이 이어지는 이유와 이런 상황에서 한국군의 파병연장이 중동 지역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에 대한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KBS와 SBS는 노 대통령의 담화문과 대선 후보들의 ‘쟁점’ 속에 이 문제를 묻어 버렸다.

경제적 실익에 대한 효과도 논란거리다. 지난 19일자 서울신문이 1면에서 보도한 내용은 이 같은 논란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서울은 이날 1면 <“자이툰 파병 경제실익 없다”>에서 국책연구기관과 금융기관 관계자 말을 인용, “석유법을 둘러싼 종파 갈등과 정부의 빈약한 재정상태 등을 볼 때 쿠르드 지방정부(KRG)가 추진하는 재건사업은 채산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라고 보도했다.

대선 앞에선 모든 것이 대선 쟁점일 뿐인가

▲ 10월23일 MBC <뉴스데스크>.
서울은 “자이툰 부대의 주둔 연장이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에 도움이 되리라는 국방부의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이라면서 “쿠르드 지방정부(KRG)가 원하는 것은 손실을 감수하고 사업에 뛰어들 모험적 투자자들이다. 파병국 기업에 특혜를 줄 것이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라는 한 민간연구기관 관계자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올해 말 철군하겠다는 애초 계획을 번복한 것도 문제고, 노 대통령이 파병연장 방침을 밝히면서 언급한 ‘이유’들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라크에 파병된 다국적군의 철군 흐름과도 배치되고 시민단체들은 파병연장 방침에 ‘결사반대’ 하고 있다. 대선 후보별로도 입장이 엇갈려 대선 쟁점으로도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3일 KBS와 SBS는 이 가운데 노 대통령의 담화문과 각 대선후보별 입장만을 끄집어냈다. MBC만이 이날 <뉴스데스크> ‘국민설득 어떻게?’와 ‘단신’ 등을 통해 정부 방침의 문제점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목소리를 담아냈을 뿐이다.

파병 연장이 대선 쟁점으로 부각된다는 것은 ‘현상’일 뿐이다. 현상을 쫓고 그런 흐름을 따라가서 보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담아내서 이를 전해야 한다. KBS와 SBS에는 바로 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없다. 대선 앞에선 모든 것이 ‘대선 쟁점’일 뿐인가. KBS와 SBS 리포트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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