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늘 중요하다. 사태의 근본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득권은 온통 뭔가를 회피하기에 바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어떤 면에서 그런 ‘회피’의 표현이다. 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역사를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반복 강조했는데, 결국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뉴라이트들이 지난 정권부터 줄창 제기한 문제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을 스스로 다시 한 번 고백한 것이다.

기득권의 역사에 대한 접근은 ‘우리는 그렇게까지 나쁜 놈이 아니다’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언어로 하자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이다. 기득권의 주장은 자신들이 비록 독재를 통해 민중들에게 가혹한 짐을 지우긴 했지만, 그 덕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학계 일부와 정치권은 여론을 주도하며 이 공식을 정치적 대세로 만들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도구로 한 우익들의 프로파간다는 이러한 기득권의 주장을 문화적 측면에서 ‘인준’하였다. 이제 <국제시장>의 “그 풍파를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는 유명한 대사는 예비군 훈련장에까지 등장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기득권이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를 나쁜 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나쁜 놈은 아니므로, 우리 정도의 나쁜 놈은 이 사회가 주류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누군가의 명언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우리의 뿌리를 찾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누군가의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혁명을 기계처럼 작동하는 관료체제에 갖다 바치지 않고, 대중의 열망을 광기로 환원해 이용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효율성의 추구를 빌미로 독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때문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역사가 이를 통해 의도하는 것은 그 잘못한 자들을 대책없이 증오하기만 하라는 게 아니라 그 자들이 한 것을 반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정확히 이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이 논란의 한편에는 역사를 “우리는 (그렇게 많이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로 쓰려는 발전없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그들을 증오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충분한 준비가 돼있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누군가 진정으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해’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면 먼저 이 구도부터 깨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화해는 두 세력이 공동으로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어떤 잘못을 앞으로 어떻게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를 생산적으로 논의할 때에야 가능하다. 그러나 권력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상황에서 이런 이상적 관계 설정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다른 발언 역시 권력이 퇴행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경제활성화를 비롯한 여러 법안 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복 언급하며 “국무회의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단지 메아리 뿐인 것 같아 통탄스럽다”고 발언했다. 그간 호사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말해봐야 메아리 뿐인 것 같아 통탄스러운 것은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만은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는 어떻게 얼어붙게 되었는가? 그건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처럼 갈등을 폭발적으로 야기하는 문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치’의 모습은 보여준 적이 없고 일방적으로 입장을 설명하거나 거의 구박을 하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니 오늘날의 정국 경색을 풀 책임의 상당 부분을 대통령이 져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러한 ‘정치’의 책임을 다하는 걸 끝없이 회피하고 있다. 국회를 민원처리반으로나 생각하고 그 창구를 여당에 한정하는 한 대통령은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부 수반’으로만 한정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이러고 있다고 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이 날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상이 삼권분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또 보여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도 발언했다. 겉보기에 그저 상투적 의미의 발언 같지만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배신의 정치’ 발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발언 역시 같은 맥락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총선에서 여당 장악을 강화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구 출마설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 다수 공천될 거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여당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에 충성하는 사람을 ‘꽃아서’ 말을 듣게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잠깐의 레임덕 대비는 될지 모르겠으나 임기말까지 대통령의 행복을 지켜줄 지는 의문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실천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시기 임기가 다해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그 수많은 ‘주이야박(낮에는 친이계 밤에는 친박계)’들을 떠올려보라.

정말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상황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승부해야 한다. 역사를 고쳐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인위적 물갈이로 여당의 충성심을 제고하는 것은 모두 미봉적 해결책에 불과하며 일종의 회피일 뿐이다. 문제를 직시하려면 “우리가 과거에 한 일들은 나쁘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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