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다 나쁜데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호통치고, 공무원들에게는 기초질서를 확립하라고 호령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몸에 밴, 서울시장 시절부터 갈고 닦은 습관이어서 그런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법조차 쉽게 무시하는 ‘불법 대통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집권 기간을 돌아보면 그의 불도저식 정치 스타일이 이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법치국가’에 대한 상식조차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 ‘모범’을 지켜서 그런지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 공무원들도 점점 법 알기를 우습게 안다. 지난 12월 5일 진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김정헌 위원장에 대한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문화부) 장관의 일방적인 해임 통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사진기자들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며 막말을 하고 있다. ⓒYTN 화면 캡처
문화부는 김정헌 위원장이 위원회 운영과 관련하여 ‘문화예술진흥법’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법령과 규정을 위반하였다고 근거를 밝혔으나, 사실 ‘문화예술진흥법’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유인촌 장관이다.

이번 해임 통보의 구체적 근거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논하지 않더라도, 김정헌 위원장의 실질적인 해임 사유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유인촌 장관 스스로 공개적인 자리와 언론을 통해 수차례 증명해 주었듯이 이번 해임은 오직(!)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복 행위”다.

문화부 장관이 적법한 절차를 걸쳐 임명되고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을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협박하고, 강제 해임시키는 행위야 말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불법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치색, 정치적 당파성 이전에 법치주의의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중앙 정부의 장관을 어떻게 수행한다는 것인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해임돼야 할 첫 번째 이유이자 명백한 사유이다.

유인촌 장관의 두 번째 해임 사유는 심각한 직무 유기이다. 새 정부의 첫 해가 저물고 있는 지금까지도 문화부는 새 정부의 문화정책 비전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중장기 문화 비전은 고사하고 하나하나 쪼개서 발표하겠다던 정책 플랜들조차 스스로 공표한 일정을 어긴 채 표류하거나 ‘재탕 삼탕’ 수준의 날림 정책으로 버티고 있다.

대신에 유인촌 장관은 지난 수개월 동안 ‘정치색이 다른 기관장들에 대한 협박과 해임’, ‘촛불집회 등에 대한 정권의 나팔수 역할’ 등에 모든 힘을 집중해 왔다. 문화정책, 문화예술 현장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데, 문화부 장관은 직무를 유기한 것은 물론 개인의 정치적 취향을 위해 사회적 비용을 낭비해왔다. ‘촛불집회 관련 망언’, ‘좌파 적출론 파문’, ‘국회 욕설 사태’,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파문’…. 지난 몇 개월간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행적을 돌아보면 그의 직무유기는 매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유인촌 장관 ⓒ여의도통신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의 정책적 전문성과 국정 운용의 실용성이 있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해임해야 할 사람은 김정헌 예술위 위원장이 아니라 바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다. 높은 수준의 문화정책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직무유기와 사고치기를 반복하는 장관을 위해 국민들이 사회적 비용을 대신 지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김정헌 위원장에 대한 문화부의 해임 통보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인촌 장관이 과연 문화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했다고 괜찮은 문화부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인촌 장관은 좋은 배우였는지는 몰라도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말 최소한의 기본 상식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예를 들어 이번 김정헌 위원장의 해임 사유 중 하나로 문화부는 예술위가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1층의 ‘테이크 아웃 드로잉’과 관련하여 수의계약한 것을 문제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테이트 아웃 드로잉’은 그냥 식당이나 카페를 위탁 운영하는 사업이 아니라 과정이 존재하는 예술 프로젝트이다. ‘테이크 아웃 드로잉’은 지난 몇 년간 삼성동, 성북동 등에서 공공예술, 커뮤니티 아트의 형식으로 진행되며 문화예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예술 프로젝트이다. ‘테이크 아웃 드로잉’은 그런 예술적 성과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재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 1층에서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따라서 ‘테이크 아웃 드로잉’에 대해 ‘경쟁 입찰’ 운운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그럼 앞으로 공공영역에서 진행되는 모든 미술관, 박물관의 프로그램은 예술적 가치 여부와 무관하게 ‘경쟁 입찰’로 진행하라는 것인가. ‘경쟁 입찰’로 어떻게 문화예술의 가치를 판단하고 확보한다는 것인가. 그럼 문화부 장관은 왜 ‘경쟁 입찰’을 하지 않는가. ‘꽉 막힌’ 기획재정부 관료들이나 할 짓을, 그런 짓을 막아주고 이해시켜야 할 문화부 장관이 오히려 문화예술을 탄압하고 있으니…. 문화예술에 대한 빈곤한 철학과 전문성의 부재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해임돼야 할 세 번째 이유로 충분하다.

문화부가 제시한 김정헌 위원장 해임의 주요 사유인 ‘기금 운용 규정 위반’에 따르면, 유인촌 장관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부터 지금 즉각 해임돼야 마땅하다. 문화부는 “국가재정법과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한 금융기관 선정기준을 위반했다”, “C등급에도 투자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실에 비춰 문화부의 논리를 따르자면 결국 예술위가 “기금 운용에서 고수익을 발생시키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처럼 “규정을 어기지 않은 채 투자한 부분에서 발생한 확정되지 않은 손실”의 책임은 김정헌 위원장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경제위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이 최근 기금운용에서 수익률이 크게 감소했을 것이 분명한데, 누가 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이 있다면 해임돼야 할 사람은 김정헌 위원장이 아니라 작게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번 예술위 위원장의 해임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해임 사유는 너무나도 많다. 제목이 101가지인데 나머지 97가지 해임 사유는 어디에? 그건 독자들을 위한 퀴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를 매일 매일 계산하고 있는 당신을 위한 심심풀이 땅콩이다. 너무 쉬운 퀴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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