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존 레논은 <Imagine>을 노래하며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했지만, 철부지 같은 소년들이 무인도에 고립되었는데 그 군상은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은 책이 있다. 소설의 제목 <파리대왕>에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1954년 윌리엄 골딩이 발표한 이 작품은 198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히브리어로 ‘베엘제버브’를 번역한 것으로서 직역하면 ‘곤충의 왕’이라는 의미지만 <악마>를 암시한다고 한다.

▲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유종호 옮김, 민음사, 2000

무인도 이야기는 그 곳에 머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 리즈 시절의 브룩 쉴즈가 출연하는 영화 <푸른 산호초>에서는 표류 끝에 살아남은 두 남녀가 무인도에서 성장하고 살아간다. 젊고 아름다운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섬을 고립되고 외로운 장소가 아닌 파라다이스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파리대왕>의 무인도는 질서가 탄생하고 파괴되는 인간 본성의 실험장이며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는 체제는 붕괴된다.

5~12살 사이의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핵전쟁이 벌어진 위기적 상황, 영국 소년들을 비행기로 안전한 장소로 후송하는 공수 작전 중 비행기가 적의 공격을 받아 격추된 것이다. 이곳에는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아이들은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리더가 필요했다. 아이들은 다수결이라는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랠프를 지도자로 선출한다. 랠프는 언젠가 지나가는 배가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섬의 가장 높은 지대에 봉화를 올린다. 당번을 정해서 봉화를 관리하고, 비를 피하기 위한 오두막을 짓는다. 구성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며 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한편 잭은 언제부턴가 그런 랠프가 불만이다. 그에게는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리며 질서 타령만 하고 사는 것보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의 생존이 중요했다. 그가 사냥팀을 조직하고 멧돼지를 사냥해서 돌아오자 고기맛에 매혹된 아이들은 잭의 사냥패에 가담하게 되고, 권력은 점점 잭에게로 기운다. 랠프의 질서는 점차 잭에 의해서 파괴되고, 급기야는 잭의 무리는 그들을 지배하는 공포와 광기로 친구를 살해한다. 잭과 아이들은 자진해서 랠프가 구축한 문명을 벗어던지고 사냥에 매료되고 스스로 야만인으로 타락해 간다.

흔히 이 소설을 ‘문명’(랠프)과 ‘야만’(잭)의 대립이라고 말하지만 2015년 이 소설은 ‘구성원을 이해하지 못한 리더의 말로’를 보여준다. 랠프는 사실 타고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친구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양심이 있고, 꼬마들의 복지를 근심하는 따뜻한 성품도 지녔다. 하지만 섬의 소년들에게 그가 제시한 비전이란 기약 없는 ‘구조를 준비하는 일’뿐이었다. 반면 잭은 도덕적으로 파렴치하고 권력지향적인 인물이지만 소년들이 지금 원하는 것을 알지 않던가?

랠프와 잭이 공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일 소설처럼 그 둘이 공존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리더의 편에 서게 될까?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언제가 될지 모를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고군분투할 수 있을까?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리더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자.

이미정 _ 예비 출판인

대한민국의 흔한 전공 경영학을 배웠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유통회사를 다니다 어느 날, 딱 10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1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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