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2석 대 새누리당 15석. 전국 24개 지역에서 실시된 기초단체장, 광역·기초 의원을 선출한 10·28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또 다시 참패했다. 지난해 7·30과 금년 4·29 재보선에 이어 벌써 재·보궐선거 3연패 째이다. 이전의 지방선거와 총선·대선, 그리고 2013년에 실시된 두 번의 재·보궐선거를 합하면 총 8연패 째다. 이제 무슨 변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지난해 7·30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수도권 1승 5패, 금년 4·29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수도권 3전 전패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10·28 재·보궐선거에서도 수도권 1승 9패, 승률 1할이라는 아주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더구나 광역의원 6석 중 원래 5석은 야당 의석이었으며, 기초의원 4석은 새누리당과 대등했던 선거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랑 인천 서구에서 광역의원 한 명만을 당선시켰을 뿐이다. 야당 강세지역이라고 일컫는 수도권에서조차 잇달아 패배하고 있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도대체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나서서 무슨 할 말이라도 해야 할 것인데 다들 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다시 또 지도부를 교체하고 이름 모를 혁신 노름이라도 재삼재사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수도권은 지난 총선 당시 야권연합(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이 의석의 61.6%를 석권한 지역이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단체장의 60.6%, 광역의원의 63.4% 차지해 야당의 강세가 지속된 그야말로 야당 텃밭이다. 수도권은 정치의식도 매우 높은 지역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10월 셋째 주 여론조사에서 수도권은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하여 반대(50%)가 찬성(35%)보다 매우 높았고 이는 호남권역 다음이다. 그런데도 이 수도권에서조차 10·28 재보선 성적표는 새정치민주연합 1석 대 새누리당 9석으로 참담했다.

지난해 7·30 선거는 세월호 참사라는 매우 유리한 선거환경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참패했다. 금년 4·29 재보선도 성완종 스캔들이라는 여당에게는 대형 악재가 터져 나왔는데도 오히려 여당이 전승했다. 이번 10·28 재보선은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국민여론이 국정화 추진에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에도 야당은 또 참패했다. 세 번 연속 상대인 범여권이 실수를 하거나 국민이 나서서 힘껏 싸우며 도움을 주는데도 제1야당은 이를 받아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대로 가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내년 4·13 총선 전망은 참으로 어두워진다.

지금의 야당은 결코 연전연패를 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승리의 기억이 오래되어서 그렇지 특히 수도권에서는 아주 강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여당 시절 40연패를 포함, 연전연패하던 통합민주당은 야당으로 치른 2008년 4월 총선 직후 첫 재·보궐선거에서 드디어 감격적인 승리의 기쁨을 맛본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이후 4년 만의 일이었다. 2008년 6월 4일 실시된 9개 기초단체장 이하 지방 재보선에서 비로소 연패 사슬을 끊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는 무려 60%를 육박했다. 그러나 4월부터 40%대로 급락하더니 두 달 만에 30% 초반까지 뚝 떨어졌다. 이유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었다.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니 하는 인사 실패에 대한 여론악화도 함께 작용했다. 4·9 총선에서 149석이나 되던 의석이 81석으로 절반 가까이 크게 줄어든 통합민주당은 이에 굴하지 않고 광장에 모인 민주시민들과 더불어 촛불을 들었다. 낙선 의원들이 수십 명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소고기 재협상부터 하라는 당론 관철을 위해 원내외 투쟁에 힘껏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치르는 지방 재보선이었지만 결국 대선과 총선에서 2연승한 여당은 참패한다.

<표> 2008년 6·4 재보선 정당별 당선자 / (단위 : 석)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한나라당 1 7 1 9
통합민주당 3 14 6 23
자유선진당 2 2 4
민주노동당 1 1
무소속 5 5 5 15

비록 지방 재보선이었지만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누구보다도 선봉에 섰다. 그는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고 국민의 건강이다.”라며 유권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인사 파동이나 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상당히 낮아졌지만 통합민주당이나 자유선진당이 대안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해 투표율은 상당히 저조했다. 21세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2000년 6·8 재보선 당시의 21%보다 약간 높은 평균 23.3%에 그쳤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 9석 중 텃밭인 경북 청도군수 외에는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반면 연패의 늪에 허우적거리던 통합민주당은 승리를 계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민주당은 2009년 상·하반기 재보선,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상·하반기 재보선에서 승승장구한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 부터 이석현 국회 부의장, 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야당은 다시 한 번 이 2008년 6·4 재보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지지층만 결집하는 재·보궐선거이기 때문에 야당이 불리하다고 핑계대지 말라. 투표율이 낮고 국회의원 선거가 없으므로 크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2008년 6·4 재보선은 연 2회 재·보궐선거 제도가 정착된 2000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지방 재보선이었다. 그래도 당시 통합민주당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야권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하여 투표율 각각 23.2%와 19.8%에 그친 서울 강동구청장과 인천 서구청장을 승리함으로써 4년여 동안 연승을 이어오던 한나라당에 처음으로 참패를 안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10·28 재보선 투표율 20.1%가 결코 야당의 패배를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옹색하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갓 여당 물이 빠진 야당이었으나 정말 사력을 다해 야당답게 싸우는 야당이었다. 서울 종로 지역구에서 낙선한 패장인 손학규 대표가 앞장서서 선거를 지휘했고, 낙선한 수십 명 의원들이 각자의 지역구에서 최선을 다했다. 임기 만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7대 국회의원들은 지원 유세를 위해 내 일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상대는 대선에서 530만 표 차이로 압승한 직후에 과반수 국회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 그리고 사실상의 친여 정당인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까지 합하면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어쨌든 모두들 젖 먹던 힘까지 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심이 통했는지 유권자들은 이에 보답했다.

최근의 선거를 보면 생존권의 이슈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2008년 6·4 재보선 역시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관련하여 국민이 활짝 켜 놓은 촛불에 함께하면서 야당은 압승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17개 시·도 교육감 중 13개 교육감을 민주진보 교육감이 석권했다.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문제를 제1의 과제로 삼은 30대~40대 학부모 유권자들이 적극 나선 영향이 대단히 컸다. 2010년 지방선거 역시 민주당을 필두로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등 야권연합은 한나라당이 저소득층부터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한다는 방침인 것과 달리 2011년부터 전면적으로 초중고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무상급식 이슈는 한 마디로 먹고 사는 문제였으며 야권이 민심을 제대로 읽어냄으로써 6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한 계기가 됐다.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반대 투쟁에 임하는 야당의 태도는 장외투쟁에 올인하는 것도 아니고 장내·외 투쟁을 병행하는 것도 아니니 정말로 어정쩡하다. 노동개악, 일자리, 증세, 연금문제 등 국회 안에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교과서 문제에만 올인하는 듯한 야당의 태도는 옳지 않다. 재보선 결과로 교과서 문제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일자리와 복지 문제와 같이 피부로 와 닿는 이슈가 아님은 또 다시 확인되었다. 문재인 대표가 자기 고백한 것처럼 “국민들을 투표장으로 이끌 만큼 희망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야당”이다. 과거 정치개혁 일변도로 나갔다가 연전연패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중산층과 서민 등 지지층 결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이제 더 이상 시험대는 없다. 이번 10·28 재·보궐선거가 내년 총선을 가늠해볼 수 있는 마지막 풍향계이다. 야당은 진짜 엄정히 평가하고 반성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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