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조선일보>에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남산위의 저 소나무’라는 역사다큐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인터뷰에서 “좌파정권 10년간 뿌리내렸던 자학적 역사관이 국민들 마음속에 우울한 자화상을 남기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제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이 역사다큐드라마의 제작은 KBS <TV문학관>으로 유명한 장기오 PD가 주축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문화 연구자 홍성일이 찾은 답을 세 차례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장기오PD가 바라본 지금의 젊은 세대

“많은 젊은이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루어낸 민주화가 달성되면서 이념을 위한 투쟁은 더 이상 필요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투쟁이 필요 없는 시대의 이념은 트렌드화 되어버렸다. 반미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젊은이라면 으레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 휴대폰 같은 장신구나 패션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무슨 거창한 소신이나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괜히 빠지면 왕따 당할 것 같아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족들 데리고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참석한다. 아이들 장난처럼 코믹하게 혹은 스트레스를 푸는 운동처럼 이념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유신시대든 군부독재시대든 가족들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 던지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으면서 말없이 착하게 살아온 많은 소시민들을 수구꼴통으로 몰아붙이는 패션형 이념은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무엇이 트렌드인가를 저울질한다.”(장기오(2007), TV 드라마 각색의 사례연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그의 이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논쟁적이다. 우리에게 지금 민주화가 달성되었는지, 이념이 과연 트렌드와 패션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러 광화문으로 나갔던 것인지를 아무리 자문해 보아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나 지난 여름, 촛불 국면에서 본 10대의 발랄한 정치는 그저 아이들 장난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물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가족이 내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가족이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생각건대 그런 이유로 꾹꾹 참으면서 말없이 착하게 살아온 많은 소시민을 수구꼴통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살은 장기오 PD에게 돌아간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 했는지 말이다.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다고 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장 PD는 정년퇴임 후 아예 드라마를 안 보고 산다. 보기만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기 때문”에. 젊은 후배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세대차이라고, 오히려 이 시대 문화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반박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의 느낌은 곧 장기오 세대들, 5060 세대들이 TV 드라마 보면서 느끼는 일반적인 소외감일 것이다. 여러 계층이 접근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양승혜(2004), 변해야 산다<10> 전문 영역에서 일가 이룬 작가주의 PD들-장인정신으로 독자적 세계 구축, 신문과 방송 제 408호. pp.91-92)

▲ 장기오PD가 제작한 <TV문학관>의 한 장면ⓒKBS
세대와의 소통은 ‘흥분’, ‘폭력’이 아닌 ‘대화’로

물론 그렇다. 여러 계층이 접근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함에 적극 공감하다. 그가 <TV 문학관>을 통해 보여준 원숙한 영상미와 탐미주의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의 누적을 거치지 않고서는 다듬어질 수 없는 거장의 손길 때문이었다. 그의 작가주의를 존중하며 그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손꼽고 있다. 다양성이 상실된 TV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소외감을 5060 세대만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탓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식히는 일이다. 흥분보다는 대화가 먼저다. 왜 나만, 나의 세대만 소외되는가를 말하지 말고 왜 다른 여러 사람들도 소외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가령 이주노동자, 여성, 다문화가정, 성적 소수자 등도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다. 굳이 5060 세대만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셈이다. 나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라는 인식이 먼저 있어야 많은 계층이 접근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면 결국 이는 단 하나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자리 바꾸기 게임일 뿐이다.

혹시 자기가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박탈감으로 인한 이기적 욕망의 분노가 아니었던지, 그리고 이를 감추기 위해 곁다리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그 뒤에 나뿐만 아니라 정말로 많은 사람이 소외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것은 구조를 바꾸는 실천이다.

▲ 장기오PD의 <나 또한 그대이고 싶다> 책 표지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서는 안 된다. 느릴지언정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지 윽박지르거나 나만 따르라고 해서는 아니 된다. 내 진정성을 모두가 알 것이라고 미리 짐작해서는 아니 된다. 대화와 수평적 소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기오 PD의 수필 속에는 그가 독선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란 의심을 살 부분이 간혹 보인다. 단적으로 다음 사례가 그렇다. 소위 군기를 잡기 위해 PD는 별다른 이유 없이 배우와 제작진에게 호통치고, 그런 PD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평소 PD에게 귀여움 받는 여배우가 무조건 잘못을 빌어 PD의 지도력을 확인하는 방식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누가 있어 그런 카리스마를 행세한다면, 아마 십 년 먹은 체증이 다 내려갈 것 같다. 그때 그 사람들이 새삼 생각나는 것은 흘러간 세월의 미련이 아니라, 그런 당당한 권위의 실종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장기오(2008), 「나 또한 그대이고 싶다」, 도서출판 이유, p.166)

이것은 당당한 권위가 아니다. 한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혈 폭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작 현장의 후진성, 아니 전근대성에 다름 아니다. 이에 대해 향수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지도자를 따르는 모델이 탁월한 효율성을 발휘하지만 이는 결국 전체주의로 귀결되어 나와 남 모두를 공멸하는 길임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구조적 폭력에 희생되는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되묻고 싶다. 그저 묵묵히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 던지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으면서 말없이 착하게” 사는 게 모두의 모범 답안이 될 수 없다. 사표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고 참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이 더 이상적이지 않는가.

물론, 현실 세계는 이상과 달리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싸우는 아비규환이 현실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오 PD가 생각하는 것처럼 ‘젊은 기득권’이 옛 세대를 수구꼴통, 기회주의자, 보신주의자로 몰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답은 다른 곳에 있다. 장기오 PD는 여러 곳에서 드라마 PD로서의 자존심을 위협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거에는 연기를 잘하는 연기자가 대우를 받았지만, 지금은 인기 위주이다.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던 탤런트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스타 권력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출자들도 탤런트 눈치를 본다. 소신 있는 연출을 할 수가 없다. 일은 같이 하지만 동업자라는 느낌이 안 든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 것이다.

가난했지만, 사람간의 소통이 되었던 그때가 더 풍요롭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자본이 발달할수록 천박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인가?

그 때의 순수가 그립다.”

그렇다. 장기오 PD가 잘 보았듯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만들어 서로를 차단케 하는 벽은 자본주의로부터 비롯한다. 보신주의와 기회주의로 매도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세대별 다툼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옛 세대를 빨리 내보내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소비력 높은 젊은 세대의 감각에 편승하기 위해 옛 세대의 지혜를 헌신짝 여기듯 하기 때문이다. 허나,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평가인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말은 개인에게 탓을 하기 이전에 그 이면에 있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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