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구걸이 아니다. 고자질도 아니다. 권력을 쥔 자라 할지라도, 다수의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도 스스로 '접거나 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게 정치다. 그것이 야당정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투쟁을 집요하게 펼쳐나가야 한다. 그래야 권력이 스스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

박근혜 정권이 내세우는 잘못된 의제, 국민들의 상식에 동떨어진 의제, 오로지 정략적이기만 한 의제 등 야당이 정치투쟁으로 풀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극우적 성향을 가진 현재의 청와대에서 발주하는 갖가지 어이없는 정치 의제에 대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오로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생각으로 무비판적 굴종만을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그 증거다. 스스로 내뱉은 발언도 걷어 들이고 자신의 소신과 정치철학도 쓰레기통에 집어던진다. 대통령을 위해서 온 몸을 불사르는 듯 아부하고 굴종하며 푸들마냥 꼬리를 흔든다.

▲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지도부회동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설정돼있는 상황에서 야당이 정치협상을 통해서 얻어낼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들이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노동 관련 법·제도의 개악이나 경제활성화법이라고 불리는 재벌특혜법 등에 동의해 줄 수도 없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보여준 행태는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경호를 위해 온 몸을 던지며 아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여론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만 보호대상이다. 이런 정국에서 야당이 협상운운하며 문제해결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로지 야당이 야당다운 정치투쟁으로 전술변화를 기해야 하고 그 강도를 높여가야 한다.

문제는 문재인, 이종걸 이 두 사람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야당 최고지도자들은 ABC도 갖춰지지 않은 청와대의 회동 요구에 너무나도 쉽게 응했다. 5자회동을 제안하자 3자회동으로 역제안 했다가 거절당한 것까지는 좋다. 대변인 배석을 요구하고 또 거절당하더니 ‘쪼잔한 청와대’라는 ‘쪼잔한’ 비난발언 하나 남기고 청와대의 요구를 곧바로 수용했다. 덤터기만 쓰고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두 번의 제안을 다 거절당하고 굳이 그 자리에 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청와대 회동 후 “절벽을 대하는 암담함”, “섬에 갔다가 온 느낌”운운하며 구걸의 실패를 국민들에게 고자질하는 게 어찌 국민들의 눈에 가소롭지 않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를 위해 그 추운 겨울 장외투쟁을, 그것도 달랑 측근 십 수 명을 데리고 4개월 동안 집요하게 펼쳤다. 언론의 외면과 여당의 무시를 참아내며 그 긴 시간 동안 아스팔트 위를 전전했다. 이 때문에 결국 노무현 정권은 사학법을 고치는데 실패했다.

당시에도 우아하고 품위있는 언론들은 박근혜 당시 야당 대표를 대상으로 ‘의회주의’ 운운하며 국회 내에서 해결하라고 주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야당 내 중진들도 박 대표의 국회귀환 필요성을 여러 통로로 제기하며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대표는 자신들의 요구가 끝까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외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뜻을 관철시켰다.

▲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연합뉴스)

어떤 면에서 보면, 정치투쟁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이 벌인 당시의 일 때문에 지금 상지대와 같은 비리사학이 버젓이 활개 칠 수 있게 됐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당시와 비교해 훨씬 가치있는 ‘반대투쟁’ 이다. 사립사학 영남대 이사장 출신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개정반대와 비교할 일이 아니다. 달랑 1인 시위로 생색내려 하지 말자. 청와대에 구걸하다 안 받아주니 국민한테 고자질하며 징징거리지도 말자.

문재인, 이종걸 이 두 사람이 찢겨져 누더기가 된 깃발이라도 들기만 하면 박근혜 야당 대표의 4개월 장외투쟁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그 뒷줄을 지키고 함께 할 것이다. 야당 지도자는 야당답게, 투쟁의 파고를 극점까지 높여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예 힘으로 돌파하거나 아니면 그 극점에서 정치협상으로 문제를 풀 줄 알아야 한다. 구걸과 고자질로는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을 늦게라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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