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기사는 별개이다.” 최근 한겨레의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 광고 논란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말이다. 기사나 사설에서의 논조와는 반대되는 내용이더라도, 언론이 자본주의의 ‘룰’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주장일 것이다. 재정이라는 측면에서 한 푼이 아쉬운 때에 정부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내준 게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느냐는 지적인 셈이다.

신문 지면에서 광고와 기사가 물리적으로 분리돼있고, 내용에 있어서도 서로 별개의 맥락에 놓여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언론이 기사를 통해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한 부조리를 지적하는 동시에, 삼성 계열사 광고를 지면에 게재하는 것은 상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건 어떤 ‘위선’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룰에 따른 것이다.

좀 더 논의를 진행시켜보자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광고가 광고로 등장하지 않을 때이다. 다시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면, 차라리 기사와 별개로 삼성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광고가 실려 있는 편이 낫다. 언론들이 삼성으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삼성 백혈병 문제의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양산해냈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가장 비극적인 것은 방금 ‘예’로 든 ‘사례’는 그저 ‘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가까울 거라는 점이다.

여하간 이런 잣대로 보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를 홍보하는 정부의 의견광고를 받은 것 자체를 갖고 한겨레를 비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 윤리를 논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 차원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문제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권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언론이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한겨레는 그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왔을 것이다. 심지어 정권친화적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경우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에 비판적이다.

▲ 한겨레 19일자 1면 기사와 광고

문제는 이 국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당위를 강조하는 교육부의 광고는 단지 광고가 아니라 정치의 연장선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너무 강하니, 이를 진화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 자신들의 주장을 직접 신문에 게재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한겨레는 이를 자연스럽게 지면에 반영함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정치에 조력한 결과를 맞게 됐다. 조금 과도한 비유를 갖고 오자면, 좀 전까지 우리는 기사의 광고화를 걱정하였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광고의 기사화이다.

좀 전에 들었던 사례인, 한 언론의 지면에 삼성의 백혈병 문제에 대한 부실한 사후처리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만일 이날 같은 신문에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 어쩌구 식의 단순한 이미지 광고가 실렸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면에 삼성의 “우리는 백혈병 문제를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해결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이 우리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가 게재됐다면 그것은 분명히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결국 ‘광고’라는 형식을 부여했다는 명분으로 ‘정치’라는 내용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광고는 광고의 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언론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을 따져보면 단지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신문 지면에 아무 광고나 실을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언론 지면에 실리는 광고는 최소한의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 없는 상품을 있다고 사기 치는 등 광고주가 책임을 질 수 없는 광고를 지면에 싣는 것은 언론이 지양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사기에 가까운 내용의 광고를 지면에 실은 언론은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광고에 “우리 아이들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감을 키울 수 있는 역사교과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대한민국 헌법가치에 충실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런데 한겨레는 교육부가 이 주장에 책임을 질 수 없을 거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정부가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은 사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밀어붙였다고 보도한 것도 한겨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궁극적으로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의 기본 정신을 부정할 때에야 가능해진다. 한겨레 지면의 기사만 보면 교육부가 자기 광고의 내용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교육부 차관이 날아갔다. 한국일보 등의 보도를 참고하면 이는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청와대의 강력한 ‘경고’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교육부가 왜 뒤늦게 거액을 투입하며 국정교과서에 대한 홍보전에 나선 것인지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광고주가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불분명한 광고를 지면에 실음으로써 한겨레는 청와대의 ‘교과서 국정화 드라이브’를 거든 셈이 됐다. 어떤 측면에서 보든 비판을 안 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겨레가 재정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아니겠냐는 온정의 시선도 있다. 한겨레 내부의 반발 수위를 보면 이것도 일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재정 문제는 보수 정권의 시대에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모든 언론이 겪고 있는 문제로,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단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고 마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신문이 싣고 싶지 않은 광고를 지면에 실어야만 하는 것은 신문 시장이 크게 왜곡돼있기 때문이다. 신문이 광고가 아니면 자립할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돼있다. 구독을 늘리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광고 영업과 비용 책정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지, 신문이 자립을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저렴한 구독료 때문에 신문은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진단도 나오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현실도 신문이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화하고 있다.

한탄이 아니라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서야 한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체념이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안이한 냉소적 논리를 극복해야 문제가 풀린다. ‘비판’은 그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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