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켜면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쿡방이 대세다. 구글에서 ‘쿡방’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순식간에 23,000개의 뉴스가 뜬다. 쿡방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 얼마 전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엄청난 양의 기사다. ‘먹방’ 관련 기사는 무려 ‘271,000’건에 이른다. ‘먹방, 쿡방의 전성시대’라 불릴만하다.

우리는 ‘먹방, 쿡방’ 이러한 것들을 흔히 트렌드라고 부른다. 그 시대의 유행, 또는 쏠림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뭔가 있어 보이고, 대중들이 보다 더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방송과 인터넷은 이러한 트렌드를 ‘세팅’하고 ‘붐업’시키며, 사회와 개인들의 ‘동조효과’를 유도한다.

먹는 것과 만들어서 먹는 것. 인간 삶의 기본 의식주 중에서 식(食). 왜 현재의 우리는 이와 같은 식(食)에 열광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부연설명은 이웃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일본을 탐방한 이유는?

2015년 들어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일본탐방이 줄을 이었다. 그들이 일본에 간 이유는 일본의 첨단산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 바로 편의점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국내에서도 넘쳐나는 편의점을 왜 굳이 일본에까지 가서 탐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의 장기침체 속에서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이 편의점과 편의점 도시락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저성장 시대, 그리고 노령화, 디플레이션, 저출산 등 소비를 제한시키는 경제적인 변수를 더하며 장기적인 침체기에 빠져든다. 국내에서도 익히 알려진 ‘잃어버린 10년+10년+향후 ?년’이다. 경기변화에 민감한 증권업계는 국내 소비환경이 과거 일본과 유사한 형태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함께한 먹방, 쿡방

방송의 트렌드는 돌고 돌기 마련이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트렌드가 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방송도 리얼리티, 퀴즈 등이 돌고 돌면서 트렌드를 형성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구루메(グールメ)프로그램’이다. 직역을 하면 ‘미식가’를 뜻하지만, 우리로 치면 ‘먹방, 쿡방’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 ‘구루메프로그램’은 90년대 이후 일본 방송프로그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직접 편의점 도시락을 프로듀스하는 과정이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고,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가게를 찾아가 친절하게 가격, 위치, 맛을 함께 전해주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저렴한 체인레스토랑의 인기메뉴 순위를 맞히는 포맷, 유명 레스토랑의 쉐프가 만드는 요리의 가격을 맞히는 포맷, 연예인이 1만엔으로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어떤 것을 만들어먹는지를 리얼리티로 프로그램 등, 몇 가지 포맷적 장치가 가미된 구루메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일본의 저성장 구조 속에서 탄생한 계약직, 파견직, 그리고 일당직 일본 젊은이들, 흔히 달관세대(さとり世代)라고 불리는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싸게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를 충족시킨 것이 먹방, 쿡방이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가와 국가를 단편적으로 비교·접근 하는 것은 좋은 접근방법이 아니다. 세세한 것을 들여다 보면 너무 많은 것들이 다르고, 결국 비교가능성의 문제에서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의 사례를 통해 함의를 도출하고 있는 연구와 보고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만큼 국내에서도 나타나는 가시적 현상들이 일본과 닮아 있고, 또한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먹방, 쿡방의 전성시대로 대변되는 트렌드에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녹아들어가 있고, 그 모습을 먼저 보여준 일본, 특히 일본 젊은층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에 만족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우리네 젊은이들의 모습이 우리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윗분들이 세팅하고 있는 미래 한국의 모습인가? 정말 그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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