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서른이었고, 결혼은커녕 애인조차 없다는 사실이 나를 효를 다하지 못한 딸로 내몰던 시절 이야기이다. 다가올 잔소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명절에 맞춰 떠났던 여행지에서 돌아와 마주한 일상이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고, 잊고 싶은 것과 씹고 맛보고 싶은 것이 많아 친구와 술을 마시며 다음 명절에 어디로 떠날까 궁리할 때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야, 너 이거 병인 것 같아.”라고. 여행도 병이라는 유명한 여행 작가의 시적 표현에서 온 ‘병’이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진단 같은 것이었다. 그 말의 파장은 상당히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무척 진지하게. 왜냐면 그가 나의 첫사랑이었고, 십 년도 더 지난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자기 멋대로 내가 좋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내가 싫다고 나를 차버린 남자였기 때문이다. 뭐, 옛날 일이니까 남편도 그냥 웃어주면 좋겠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여러모로 삶에 이롭다.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는 소로우와 버몬트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던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이야기를 읽으며 떠나는 행위를 더 이상 ‘도피’가 아니라 ‘발견’의 행위로 사고를 전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 없이 내 시간을 오롯이 나의 템포에 맞춰 보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던 첫사랑의 진단은 그렇게 오진으로 전락했고, 나는 은둔자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가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한 오두막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시베리아의 숲속에 있는 오두막에서 말이다. “

2011년 메디치 상의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라는 사실보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며 3시간 동안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탔다는 작가의 한 마디는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전원 교향곡은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는 클래식 음악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장면이 재생되었다. 프랑스의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실뱅 테송의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숫가 오두막 한 채를 얻어 두 계절, 겨울과 봄의 6개월 동안의 은둔의 기록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10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던 그 오두막은 이웃도, 도로도, 방문객도 없었고, 겨울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하강하고 여름에는 호수 둔치에 곰들이 돌아다니는 호수 곁에 있었다.

“야생의 숲에서 즐겁게 사는 것이 도시 한복판에서 시들어 죽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저, 임호경 역, 까치, 2012.12.10.

숲에서의 삶의 본질은 단순함에 있다. 오두막은 간소한 기반 위에 하나의 삶을 세우기에 완벽한 장소이다. 은둔자의 간소함이란 거추장스러운 물건들과 인간들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전의 잡다한 욕구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오두막 살이는 이르쿠츠크 슈퍼마켓에서 쟁여 온 관리 장부의 식량 목록을 체크하면서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은둔자들처럼 삶에 대한 철학을 통해 자급자족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지 않는다. 단지 도시로부터 잠시 떠남을 통해 인생에서 결핍된 것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이 별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둔하는 동안의 발견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했다.

모든 번잡함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은 휴식과 명상,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해야 할 일들의 가짓수는 축소된다. 물을 긷고, 책을 읽고, 장작을 패고, 글을 쓰고, 차를 마신다. 삶의 빈곤을 경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공을 들여 고른 약 70여권의 책을 오두막으로 가져왔다. 도시가 흩뜨린 삶은 숲에서 다시 모였다.

오두막에서의 두려움은 고독이었다. 다른 인간의 존재는 세계를 무미건조하게 만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을 혼자 느끼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릿한 슬픔을 느낀다. 게다가 비상용으로 가져 간 위성 전화에 다섯 줄의 문자 메시지가 뜬다. 아내로부터 이별 통보였다. 그의 고독은 자신이 만든 에덴에 갇힌 상태가 되었다. 그의 실험적인 오두막은 그렇게 그를 다시 도시의 삶으로 보낸다.

떠남은 간소한 삶의 실천이다. 첫사랑의 말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시간은 지났고, 아직도 낯선 도시의 이름을 적으며 이 도시를 탈출하기를 꿈꾼다. 왜 떠나는가 물으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일상으로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여행은 요즘 사회인의 필수과정인 ‘자기 계발’은 되지 못하겠지만 ‘자기 발견’ 정도는 된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비우고 채우기의 반복, 일상에서 주도권을 잃은 인생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정 _ 예비 출판인

대한민국의 흔한 전공 경영학을 배웠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유통회사를 다니다 어느 날, 딱 10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1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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