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역사관 주입, 친일과 독재 미화,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약 조항 및 UN의 역사교육 권고 위배 등으로 각계 비판이 나오는데도 정부는 12일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다. 부분 검정제를 거쳐 완전 검정제를 도입한 지 6년 만의 변화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직접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고 역사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정부는 이번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명명했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초부터 ‘교과서 국정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부 검·인정 교과서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등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처럼 ‘왜곡된 교과서’를 쓴 집필진의 성향을 문제 삼고 있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쓰이는 검·인정 교과서가 통용되도록 최종 승인한 곳은 정부다. 사실과 다르거나 엉뚱한 내용이 들어 있는 교과서가 있다면,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집필진마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담는 교과서가 여러 종 나오는 것보다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교과서가 존재하는 것이 왜 더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검·인정 교과서의 경우 소송이 잇따르기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만 답하고 있다. 교육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12일 KBS·MBC·SBS 메인뉴스는 ‘국정교과서’를 모두 톱 뉴스로 뽑아, 적게는 3꼭지, 많게는 5꼭지를 보도했다. 하지만 정부가 왜 ‘2017년’을 기준으로 국정교과서를 펴내려고 하는지 이면을 설명하거나, 야당이 왜 황우여 장관 해임안 제출 카드까지 쓰면서 총력전을 펼치는지, 역사학계·교육계·학부모·학생·시민까지 왜 이렇게 국정교과서를 비판하고 우려하는지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라는 이름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한 정부의 작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정부 발표에 기댄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 앞세운 KBS

<2017년부터 국정화 확정…‘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톱 뉴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2일 KBS <뉴스9>는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국정교과서’에 가장 ‘몸 사리는’ 보도를 선보였다. <뉴스9>는 2017년부터 시작되는 ‘국정교과서’는 검정 교과서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출판사 집필진이 특정 이념에 따라 객관적 사실마저도 과장하거나 왜곡해 기술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이유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게 됐다는 취지의 정부의 주장을 소개했다.

▲ 12일자 KBS <뉴스9>

<뉴스9>가 집중한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한계는 ‘집필진 구성’이었다. 정부는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교과서 개발에 나선다고 했으나 주어진 시간이 매우 부족하고, 정부의 주장에 맞게 ‘편향성’을 타파할 수 있는 객관적 집필진을 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 아래 국정교과서를 썼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이미 다수의 역사학자·교사들이 국정화 반대 방침을 밝힌 것을 의식한 듯 “정치사·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팀을 구성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요약하고 예상되는 지엽적인 문제점을 언급한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 정치권과 교육계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올바른 역사 교육” vs “역사 쿠데타”…여야 전면전>에서는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이 심화됐고 교육부의 수정보완 지시도 집필진 반발로 무산된 만큼 국정화가 답’이라는 여당과, 국정화 결정을 ‘역사쿠데타’로 규정하고 100만 서명운동과 촛불집회 등으로 ‘국정화 반대 총력투쟁’을 벌이겠다는 야당의 입장이 나란히 배치됐다.

<뉴스9>만 봐서는 현행 교과서를 검·인정한 곳이 정부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지 않으니, ‘역사 왜곡 사례집’을 발행해 현행 교과서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새누리당의 계획이 왜 코미디인지 알 수 없다. “‘훌륭한 지도자는 역사를 바꾸고 저열한 권력자는 역사책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 이상 역사 앞에 죄를 짓지 마십시오”라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추상적인 발언만 나갔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 논리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좌편향 교정” “反 민주”>라는 네 번째 리포트를 보고 나서야 국정교과서 문제 갈등의 첨예함을 그나마 실감할 수 있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설문조사에서 62.4%가 국정화에 찬성했다는 설명이 나오지만, 평교원을 제외한 간부들에게만 이루어진 조사라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 교육의 목표를 “하나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치는 것”으로 규정한 안양옥 교총 회장의 말도, “국정이 이게 옳다, 다른 것은 다 틀렸어 라고 말한다면 검정은 이것이 옳을 수도 있고 저것이 옳을 수도 있어, 우리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는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한준영 씨의 말도 그저 단순 전달될 뿐이다.

각계 거센 반대 의견 축소한 MBC

뉴스 첫머리에서부터 “오늘 <뉴스데스크>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겠다”고 한 MBC <뉴스데스크>는 국정교과서 보도에 3사 중 가장 많은 꼭지를 할애했다. 우선 <뉴스데스크>는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한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목표뿐 아니라 ‘새로운 교과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 교육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황우여 장관의 말을 전했다.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국정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를 예상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단 시기에 달성한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라는 황우여 장관의 말과 함께 산업화 부분이 강조될 것이라는 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교과서에 반영할 것이라는 점, 북한의 선전구호와 주장을 싣는 것이 곧 북한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관련 기술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 등 KBS <뉴스9>에서는 보도되지 않았던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나타났다.

그러나 <뉴스데스크>는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돼 있다’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힘을 싣는 한편, 역사학계·교육계·역사학도·학부모·학생·시민 등 각계에서 터져 나오는 반대 여론을 그대로 전하기보다 하나의 흔한 ‘정쟁거리’에 불과한 것처럼 보도했다.

▲ 12일자 MBC <뉴스데스크>

“국정교과서로 확정이 된 만큼 교과서를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 되겠죠”, “검정 체제가 다양성과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사실은 편향성과 왜곡을 방임하는 빌미가 되어 왔다, 이런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다시 국정화 논의가 나온 것” 등의 앵커 멘트나 남북 모두 6·25 전쟁의 동기는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일기를 싣고,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한 양민 학살을 제외하고 국군에 의한 학살만 자세히 서술한 곳도 있다며 정부가 북한 우호적으로 편향돼 있다고 주장한 사례를 소개하는 기자 멘트에서 현행 교과서와 국정교과서에 대한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뉴스데스크>는 반대 여론을 축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여당이 국정교과서 드라이브를 걸었던 9월 초부터 현장 역사교사, 서울대 역사학 전공 교수의 의견서 제출, 독립운동 후손, 학부모, 예비 역사교사, 법학 연구자, 학생,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분명한 반대’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뉴스데스크>는 “국정교과서 전환에 우려하는 역사학자들이 상당수”라는 표현으로 수위를 낮췄다. 특히,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은 “특정의 사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적인 면에서 정말 반교육적”이라는 한철호 동국대 역사학과 교수의 발언과 “역사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화를 역사쿠데타로 규정”했다는 기자 멘트가 전부였다.

또, <뉴스데스크>에서는 ‘현행 검정체제가 유지되는 한 좌편향 시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교육을 바로 잡기 위한 특단의 조치’, ‘김대중 정부 당시에도 한국사는 줄곧 국정교과서였다며 국정화는 유신독재 회귀라는 야당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등 새누리당의 논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정부여당이 군사 작전하듯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금지를 법제화할 것을 다짐한다’는 주장만 있을 뿐 근거는 생략됐다.

‘적지 않은 논란과 갈등’ 운만 띄우고 발 뺀 SBS

국정교과서 논란을 다루는 SBS <8뉴스>는 구성과 내용 면에서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타사에 비해 <8뉴스>는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으나 양측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전달하지도 깊이 있게 분석하지도 못했다.

<8뉴스>도 <뉴스9>처럼 정부 발표를 충실히 전달하느라 정부여당의 주장에 생기는 의문을 해소하는 데에는 소홀했다. 이를테면 ‘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든다는 황우여 장관의 주장은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김정배 위원장 발언으로 바로 뒤집히지만 <8뉴스>는 이런 점을 짚지 않았다.

▲ 12일자 SBS <8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나타나 있지만, 대한민국 수립일이 1948년인지 1919년인지 묻는 질문에 김정배 위원장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바로 답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면 불필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안 하겠다”고 입을 닫았다. 정리하면,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동의를 밝히지 않은 사람을 수장으로 둔 국사편찬위원회가 ‘헌법정신’에 입각한 국정교과서를 만든다는 소리다.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을 축소하고 정쟁으로만 조명한 점은 <뉴스데스크>와 닮았다. <8뉴스>는 “정치권의 논란도 뜨겁다”며 각각 국민 통합과 역사쿠데타라는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장을 담았다. 다만,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일종의 역사 쿠데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권 맞춤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 ‘국정화가 다원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 등 <뉴스데스크>보다는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이 더 풍부하게 나갔다.

81초 동영상으로 핵심 찌른 뉴스타파

방송 3사는 정부의 국정교과서 방침을 보도하며 ‘좌편향된 교과서 수정’, ‘집필진 역사관 문제’, ‘국민통합’ 등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을 설명하는 데 애썼다.

반면,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일반적인 방송 리포트 시간인 81초(1분 21초) 분량의 영상으로 국정교과서 부활의 배경을 명쾌하게 짚었다. <뉴스타파>는 12일 “청와대 ‘역사전쟁’의 함의를 알기 위해서는 1989년 38살 박근혜 씨의 발언과 2013년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에서 있었던 김무성 의원의 발언까지 연결해서 봐야한다”며 81초 동영상을 공개했다.

▲ 뉴스타파는 12일 국정교과서 관련 81초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영상 중 일부

영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매도당하고 있던 유신, 516 거기 대해서 이런이런 소신을 갖고 참여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말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잘 모색해서 좌파와의 역사 전쟁에서 승리로 우리가 종식시켜야 되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를 “긍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교과서는 교육현장에서 채택률 0%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영상은 “우리 공동체는 지금 역사교육을 둘러싼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 기억을 둘러싼 내전적 상황까지 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즉 역사 기억을 잡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허동현 경희대 한국현대사 연구원장의 말로 끝난다. 집권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최초의 국정교과서를 내놓은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되며 ‘그 아비에 그 딸’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국정교과서 편찬’을 강행하는 중이다. 방송 3사가 짚지 못한 속내를 뉴스타파는 방송뉴스 리포트 1편의 분량을 통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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