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그가 인종적 편견의 장벽을 뚫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탄생한 사실은 역사적·지구적 대사건이다. 미국은 유색인종한테는 자유와 희망을 약속하는 땅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그 저류에 일고 있던 정치적 격랑이 표출되어 대이변이 일어났다. 같은 맥락에 유럽에서도 천년의 구각을 깨고 비주류가 기성체제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정치적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공산주의의 붕괴로 촉발된 사상최대의 인력이동이 비주류 돌풍을 일으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피부색이 희되 앵글로색슨계이고 개신교를 믿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의 나라였다. 러시아계 유태인인 이스라엘 쟁윌이 1909년 미국을 다양한 종교·문화·인종을 녹여내는 도가니(melting pot)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유럽인에게나 해당된다. 미국이 영국, 네덜란드에 이어 1789년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헌법적 원리에 불과했다. 청교도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는 마녀사냥을 일삼는 박해자로 행세했다.

영국보다 30년 늦게 미국도 1865년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하나 그것은 휴지에 불과했다. 미국은 원주민을 몰살하고 흑인을 족쇄로 채워 노예로 부리고 중국인은 쿨리(coolie-苦力)로 혹사하는 인종차별국가였다. 2차 대전 때만 해도 징집된 흑인을 육군은 공병대에, 해군은 취사병으로만 배치했을 정도였다. 그 전쟁이 끝나고서야 인종적·종교적 관용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1년 아일랜드 출신 가톨릭 신자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탄생하는 이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 11월 10일자 한국경제 6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
1963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나는 꿈을 가졌다’라는 연설을 한 지 45년이 지나서야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로서 종교는 개신교이다. 케냐인 친부, 인도네시아인 의부의 영향으로 이슬람 문화를 체험했을 것이다. 종교적 편견으로는 이단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다. 노예의 후예가 아닌 그는 흑인사회에서도 비주류이다. 미국사회의 위대한 선택은 그 저류에 형성된 거대한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

이에 앞서 종교적·인종적·이념적 관용이 서유럽에 확산되고 있었다. 2005년 독일에서 최초의 여성총리 안젤라 메르켈이 태어났다. 그는 여성 이전에 동독출신이다. 가족이 동·서독을 자유롭게 여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부친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통일비용, 실업증가, 소득격차로 동·서독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서로 서쪽놈(Wessie), 동쪽놈(Ossie)이라고 욕한다. 그는 개신교도이다. 그가 소속한 기독민주당은 남성중심의 보수정당으로서 가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치적 대이변이다.

프랑스는 어느 나라보다 배타적이다. 그런데 2007년 헝거리계 이민 2세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되었다. 더욱이 어머니가 그리스계 유태인이라는 점이 세계를 더욱 놀라게 했다. 2000년 동안 유럽에서 핍박받아오던 유태인 아들의 대통령 탄생은 정치적 이변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엘리트 정치인 양성소인 그랑제콜이 아닌 일반대학인 파리10대학 출신 변호사이다.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인은 정치적으로 2등 국민이다. 2007년 총리에 오른 고든 브라운이 잉글랜드 출신이 지배하는 정치무대의 전통을 깼다. 그는 10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냈지만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두 지역은 원래 다른 나라로서 지금도 서로 앙숙이다. 멜 깁슨이 출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뿌리 깊은 적대감을 잘 말한다. 스코틀랜드가 뒤늦게 동인도회사를 차리고 해외무역에 나섰다 재정파탄이 나서 1707년 대영제국 깃발 아래 합병된 탓이다.

2006년 캐나다 총리에 오른 스테픈 하퍼도 정치적 이단자이다. 캐나다에서는 전통적으로 변호사 출신이 총리가 되나 그는 회계사 출신이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국가라는 종교적 장벽을 뛰어 넘었다는 점이 이변이다. 그의 종교는 기독선교연합이란 아주 희귀한 개신교이다. 그의 출신지인 영어권의 온타리오는 가톨릭 비율이 34.7%이나 불어권인 퀘벡은 83.4%이다.

선진국에서는 종교적·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관용의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종교적·지역적·이념적·계층적 편견의 포로가 되어 증오의 정치로 국민을 재단한다. 세계의 흐름과 거꾸로 가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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