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검사는 제게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인정하지 않았고 고영주 검사는 을러댔습니다. 하루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20일인지 30일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공소 제기 마감 시일까지 지루하게 끌었습니다.…(중략)…어떤 때는 아무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또는 밤늦게까지 검사실 한 쪽 구석에 처박아 놓기도 했습니다. 빨간색 포승줄로 온 몸을 꽁꽁 묶은 채, 손목에는 철제 수갑을 채운 채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뒀다가 불러서는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습니다”_김훤주 기자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이 1985년 공안검사 시절 <일보전진> 단행본을 펴낸 한 대학 언론출판연합체 회장에 대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고 있었다”라는 진술을 강요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고영주 이사장은 당시 ‘구속’, ‘실형’이라는 말로 위협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고영주 이사장으로부터 직접 조사를 받았던 김훤주 현직 기자의 기사를 통해 폭로돼 파문이 예상된다.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기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팀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을 통해 <고영주가 진술의 임의성을 입에 올렸다고?>라는 제목의 글(▷링크)을 통해 1985년 한 대학 언론출판연합체 회장으로 있으면서 <일보전진>을 출간했다가 고영주 당시 검사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사실을 폭로해 주목받고 있다.

김훤주 기자, “저도 고영주 검사에게 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훤주 기자는 블로그 글을 통해 “부림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해 1981년 당시 부산지검 공안부에서 사건을 맡았던 고영주 변호사가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이라며 법원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학생들이 한 진술의 임의성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진술의 임의성, 강제로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술술 다 말했다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게 사실일까? 저도 고영주 검사한테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 10월 6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미디어스
고영주 이사장은 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부림사건’ 등 피해자들을 불법 구금한 사실과 관련해 “당시에는 임의동행제도가 있어서 유치장에 들어가지 않고 여관 같은 데에서 수사를 하고 그랬을 것”이라며 “공안사건 양이 많았기 때문에 조사하는데, 그런 편법들이 사용됐다”고 정당성을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편법이 아니라 불법’이라는 지적에도 고영주 이사장은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여관에서 구금수사를 한 것)”이라면서 “제가 수사를 할 때에는 고문을 했다는 말이 나온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변호사들, ‘부림사건’ 관련 “당사자 동의하에 구금” 발언 고영주에 사퇴 촉구)

김훤주 기자에 따르면, 그는 1985년 한 대학 언론출판연합체 회장 시절 <일보전진>이라는 단행본을 펴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당시 고영주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단행본에 ‘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5년 대학생들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을 벌였고 대학을 중심으로 투쟁이 활발해지자, 전두환 정권의 공권력이 대학 캠퍼스를 덮쳐 <일보전진>을 압수해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이다. 김훤주 기자는 “언론출판연합체는 삼민투와도 총학생회와도 관련이 없었다”며 “언론은 언제나 독립성을 지켜야 했기에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훤주 기자가 체포됐고 검찰로 넘어가면서 고영주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김훤주 기자는 “고영주 검사에게 조사를 받는 동안 진술의 임의성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쟁점은 딱 하나”라며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도’이다. 이런 목적이 있어야 성립되는 범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훤주 기자는 “고영주 검사는 제게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정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라고 강요했다”며 “저는 인정하지 않았고 고영주 검사는 을러댔다.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20일인지 30일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공소 제기 마감 시일까지 지루하게 끌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어떤 때는 아무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또는 밤늦게까지 검사실 한 쪽 구석에 처박아 놓기도 했다. 빨간색 포승줄로 온 몸을 꽁꽁 묶은 채, 손목에는 철제 수갑을 채운 채였다. 그렇게 한참을 뒀다가 불러서는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다”고 덧붙였다. ‘비둘기장’이라는 좁고 어두운 곳에 가두기도 했다고도 밝혔다.

김훤주 기자는 “(고영주 검사는)만약 인정하지 않으면 실형을 받고 감옥에서 썩고, 반대로 인정을 하면 어쩌면 석방돼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아버지를 통한 회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훤주 기자는 고영주 검사의 회유와 협박에 강요대로 죄를 인정했고 1986년 1월, 징역 2년6개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날 때까지 180일 넘게 감방살이를 했다. <일보전진>이라는 출판물에 대해 공안검사로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던 고영주 이사장이 과연, 공영방송의 관리감독기관 수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김훤주 기자, “10년 후 만난 고영주 ‘그랬어요?’하고는 끝…가해자는 금세 잊는 법”

김훤주 기자는 “제가 고영주 검사 앞에서 한 진술에서 임의성이 인정될 수 있을까?”라면서 “하물며 부림 사건은 1981년에 있었다. 그 시절 검찰에서 한 진술에 임의성이 보장됐을 리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그런데도 고영주 변호사는 부림사건의 무죄 판결을 두고 ‘좌경의식화 학습을 받은 사람들이 현재 중견 법관까지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한 번 공안은 영원한 공안인가 보다. 공안 검사 출신인 자신이 가장 중립적이라고 착각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좌익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씁쓸함을 드러냈기도 했다.

김훤주 기자와 고영주 이사장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10년이 지난 1999년 고영주 검사를 만난 적이 있다”며 “법조계 취재를 맡아 창원지방검찰청에 드나들게 됐는데 고영주 검사가 검사장 다음 2인자인 차장검사로 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훤주 기자는 “당시 제가 한 번 슬쩍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당신한테 수사를 받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랬더니 고영주 검사는 ‘김 선생이, 그랬어요?’ 하고는 그만이었다. 피해자는 잘 잊지 못하지만 가해자는 금세 잊어버리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김훤주 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고영주 이사장에 대해 “부림사건에 대해 ‘당사자들의 동의하에 합숙수사를 했다’라거나 ‘국사학자의 90%가 좌편향됐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이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이 편향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방문진 이사로 임명한 쪽에서 책임지고 해임해야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