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청와대를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프롤레타리아의 시래기.
사진은 물결같이 지면에 나부끼고
오로지 탁하고 둔한 시장의 푯대 끝에
목도리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미디어에 제공할 생각을 한 그는.

▲ 12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노점 할머니도 울고 대통령도 울었단다.(12/5, 중앙일보 1면 헤드라인) 나도 울었다. 이런 범국가적 차원의 슬픔 유발 행사에는 적극 동참하는 시민의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통령 임기 안에 주가 5000을 달성할 수 있고, 선진화를 통한 세계 일류화를 달성할 수 있다. 아, 슬프다 슬퍼. 2만원, 많이 팔면 3만원 정도를 번다는 그 삶. 그나마 “시래기 다듬는 칼이랑 손수레를 몇 번이나 뺏기는 할머니”(12/5, 조선일보의 별도 인터뷰 기사 중)의 인생살이. 아, 정말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사람을 울려버리면.

대통령은 20년 쓰던 낡은(?) 목도리를 벗어줬단다. 그 목도리의 생생한 애틋함을 느껴보고 싶어 배달되는 일간지 모두를 살펴봤는데, 할머니와 대통령 누구의 목에도 걸려있진 않았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하리. 나안~ 벗어줬을 뿐이고, 즉석에서 배추 500포기도 샀을 뿐이고, 그 할머니 보며 엄마 보고 싶을 뿐이다. 실천하는 정부, 가락동으로 뛰는 대한민국이다. 아, 따습기도 하여라, 그 마음씨. 오, 놀라워라. 그 준비된 순발력.

정치적인 센스도 잊지 않으셨다. 농협을 조지는 데 일고의 망설임도 없으셨다. “농협이 (돈을) 벌어 가지고 사고나 치고, 정치를 하니까 안 된다”고 하시며, “농협 간부라는 사람들이 농민을 위해 온 머리를 다 써야지. 농민들은 다 죽어 가는데 이권에나 개입한다”고 역정을 내셨단다. 아울러, “농협이 금융을 해서 몇 조원씩 벌고 있는데, 장비 임대값을 싸게 해줘서 농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가르침도 내리셨다. 같은 날 옆자리에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청탁’ 혐의로 구속수감된 노건평의 기사가 실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사의 배치. 노건평과 농협에겐 ‘죽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이명박과 청와대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 절묘하다. 근데 왜 이거 자꾸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보일까. 이거 누가 그랬을까?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언론을 들었나 놓으시니, 전설 속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민간항공기가 떨어져 200여명의 사상자가 나도 뉴스 첫 머리에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오늘…”로 시작하는 하수구 청소 장면을 먼저 전해주었다던 그런 시절 말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지나갔다더니 언론과 정권의 우애로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있다. 이명박이 나서는 자리에는 늘 경험했던 과거의 국면이 열린다. 신통방통도 하여라.

▲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광고, “밥 처먹었으니 경제는 꼭 살리라”던 욕쟁이 할머니편.
시래기 할머니를 보며, 다른 할머니를 떠올린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은 ‘밥 처먹고 나한테 한 약속 꼭 지켜라잉~’이 말풍선으로 달린 만평을 그렸다. 맞다. 그 할머니. 경제를 살려달라고 했었는데. 그런 이들이 많았는데. “제발 좀 살려주이소”라고 외치던 청년백수 이영민씨도 있었는데…. 이제,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그 분들은 지금쯤들 다 뭐 하시나 모르겠다. 오늘은 특히나 더 춥다. 이미지로 활용되고 사라져버린 이들 모두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씨다. 잘 살고 계십니까? 압구정 욕쟁이 할머니, 청년 백수 이영민씨.

설마,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언급해두자. 정치학에 ‘잉글리시 머핀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하야하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포드 대통령 때 만들어진 말이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이후, 직접 뽑히지도 않은 주제에 닉슨을 사면하기까지 한 포드 대통령은 임기 초 국민적 지지는 고사하고 아무런 권위도 누리지 못했었다. 그런 포드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진 한 장을 계기로 반전의 기회를 잡았는데, 그 사진인즉슨 아침에 잉글리시 머핀 빵을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포드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이미지로 포드 대통령을 표상하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웠단다. 이후, 국민의 마음을 데우는 사진 한 장이야 말로 백 마디 말 그리고 그 어떤 정책 홍보보다도 우수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미로 ‘잉글리시 머핀의 법칙’이란 말이 사용된다.

▲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청년백수 이영민씨.
행여나 청와대의 계산이 바로 이 ‘잉글리시 머핀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면 참으로 망측한 오답이다. 베낄 땐 잘 베껴야지 밀려서 베끼거나 답의 순서를 바꿔버리면 전혀 엉뚱한 쪽팔림만 당할 뿐이다. 사진이 독점되고 그래서 귀하디 귀하던 40여년 전의 공식으로 ‘뽀샵’ 만연의 시대의 민심을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어쩜 그리 사진들이 한결같이 ‘연출티’가 나느냐부터, 건네주었다는 ‘목도리’는 어디 갔냐는 비아냥이 횡횡하다.

미학자 진중권은 ‘잔인한 포토제닉 정치’라는 표현으로 오늘의 해프닝을 압축했다. 언론은 바로 그 사진을 빠뜨리지 않았다. MB는 재래시장 ‘재건축’ 얘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품에 안겨 우는 할머니를 봐야하는 심란함은 결국 그것이 아무 것도 전달하지 않는 허무함이다. 정권과 미디어가 합작해 내는 개와 늑대의 풍경. 하여간 눈물겹다. 그 우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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