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고 앙증맞은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을 보면 내 입장에서 참으로 신기하다. 저렇게 작은 곳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핸드백으로서 기능을 하겠지? 슬며시 엿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내 가방은 거의 움직이는 사무실이다. 일단 큰 가방에 넣을 수 있은 것은 다 넣어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다행히 자동차가 이동장소 근거리까지 움직여주기 망정이지 뚜벅이 신세였다면 매일 배낭에 짊어지고 다녔어야 할 판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나의 가방을 엿보고 싶어한다. 막상 부피가 적은 가방에 꼭 필요한 것만 넣어가지고 다니려고 정리를 해보아도 불편하게 느껴져 결국 큰 가방에 이것저것 담아서 늘상 그것만 들고 다니게 된다. 게으른 탓이 크다.

오늘은 하도 가방이 무거워서 발칵 뒤집어 놓고 하나하나 점검해보니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보태고 있었다. 수첩과 화장품 파우치는 기본이고 종류별 펜이 담긴 필통도 줄일 수 없는 것이다. 각종 기획서는 파일별로 담겨서 분류는 용이하지만 파일 자체의 무게도 간과할 수 없는 지경이며 심지어 카드 영수증이나 퇴근길에 시간 나면 들리려고 모아둔 각종 쿠폰은 유효기관이 경과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음악 CD, 특집 방송 CD도 두 어개 기본으로 가방에 넣어져 있고 시집과 전공서적도 한두 권 들어 있기 마련이다. 가방을 홀딱 뒤집어놓고 하나 하나 정리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정돈되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유효기간이 경과한 것,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들어내면서 과연 이 상태가 며칠이나 유지될지 스스로를 못미더워하는 모양새도 맘에 들지 않는다.

▲ 김사은 PD가 진행하는 전북원음방송 '아침의 향기' 홈페이지 캡쳐
방송을 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감정의 재고, 또는 과잉 생산이다. 나 자신을 분석해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감정이입도 무지 빠르다. 다큐멘터리 보면서도 훌쩍이고, 드라마를 보면서 별스런 상황이 아닌데도 화장지를 낭비하는 탓에 아이들과 함께 TV 보기가 민망할 때도 있다. 작은 아이가 맹장염으로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어주다가 목이 메어 한참씩 멈춰야 했다. 덕분에 병실에 함께 있던 어린이들과 보호자들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좋게 보면 감정이 풍부한 것이지만 어느 땐 청승맞은 것 같다. 이 점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방송을 진행하다가 “너무 슬픈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가정에 부딪치면 잠시 갈등이 생긴다. 어떤 피디는 단연코 “진행자는 냉철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하고 나는 “프로그램 유형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입장인데, 만약 전자의 피디와 일했다면 나처럼 감정이 범람하는 진행자는 금방 ‘짤리고’ 말았을 것이다. 최근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침의 동화>라는 코너에서 인터넷에 소개된 <어머니, 그날 얼마나 추우셨어요?>라는 글을 낭송하게 되었는데, 어째 원고를 받아든 순간부터 가슴이 찡한 게, 과연 방송을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 생각했다. 아무리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해도 한줄 한줄 읽어 가는데 기어이 목이 메어오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그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

눈이 수북이 내린 어느 날 겨울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를 두 사람이 무었을 찾아 해매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미국 노인 한사람과 젊은 청년 한국 사람이 눈 속을 빠져 나가며 골짜기를 해매든 두 사람은 한 무덤을 찾아서 그 앞에 섰습니다.

나이 많은 미국 노인이 한국 청년에게 말 했습니다.

물론 영어로 하는 말 청년은 다 알아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무덤을 찾은 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인한 1.4 후퇴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는데 눈 속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눈 속을 파고 들여 다 보는 순간 병사는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아이를 눈 속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고 보니 아이는 꽁꽁 얼어 있는 채로 죽어 있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엄마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 이였다는 사실에 병사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는 눈 내리는 깊은 산골짜기 에서 길을 잃고 갇히게 되자 아기를 살리기 위해 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고 허리를 꾸부려 체온으로 아이를 감싸고 자기는 얼어 죽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국 병사는 언 땅을 파서 어머니는 묻고 아이는 자기 양아들로 입양을 해서 재대 후에도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자 그 아이의 양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그때의 그 무덤 아이의 어머니 무덤을 찾은 것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여기 이 무덤이 바로 너의 어머니 무덤이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청년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눈 치우기를 시작 하더니 눈을 다 치우고 그 무덤 위에다가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을 모두 덮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에게 한 것과 같이 그리고 어머니에게 옷을 입혀 드리는 것처럼 정성스레 입혀 드리고 나서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날 눈바람에 얼마나 추우셨어요?”

어머니라면, 자식이라면, 어찌 이 글에서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겨우 겨우 낭송을 마치고 노래가 나가는 동안 진행자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정말 프로라면 본인은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울릴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이게 바른 진행일까? 내가 스튜디오 밖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청취자들의 문자가 쇄도한다. 감동이라는 반응이었다. (그 가운데 “누님, 너무 슬프네요”라는 문자가 있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진행자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많이 들어봤어도 ‘누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아마 나 아닌 다른 진행자가 이런 글을 읽으면서 맹숭맹숭 읽었다면 나 또한 피디로서 건조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만약 다른 진행자가 방송에 차질이 있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면 나 역시 부스 건너편에서 눈물 콧물 짜내며 펑펑 울었을 것이고 다른 방송사의 채널에서 이런 내용을 들었더라도 충분히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을 것 같다. 라디오이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의 교류가 아닐까.

슬픔이나 동정 연민 따위의 감상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한, 풍성한 감성은 감동을 잉태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가방을 뒤집어서 필요없는 것들을 걸러내야 하는 것처럼, 감정에서도 쓸데없는 부유물은 걷어내야겠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삭막한 세상에, 감성의 물꼬라도 열어두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에 의지해 살아갈 것인가? 하여 나는 눈 맑고 결 고운 지역민들과 감성을 교류하며 그 감성에 의지하여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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