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판결 내용은 분명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김한성)는 MBC가 권성민 PD에게 내린 정직, 전보, 해고 모두 무효라고 24일 밝혔다.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 ‘엠XX PD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정직 6개월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양형이 과하다’고 표현했으나, 정직 이후 비제작부서 경인지사로 가게 된 것은 ‘부당 전보’이고, SNS에 MBC 예능국의 일상과 예능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을 담은 웹툰을 올린 것은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 관련기사 : <MBC, 또 졌다… 권성민 PD, 해고무효소송 ‘승소’>)

판결 다음날인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이하 MBC본부) 사무실에서 권성민 PD를 만났다. 강의 일정 때문에 선고 당일 법원에 오지 못했던 그는 승소를 예감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질 수 없는 소송이라고 봤다”며 “특히 가장 마음을 썼던 ‘부당전보’ 부분을 다 원천무효라고 해 줘서 안도했다”고 말했다. 자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정직 6개월, 부당 전보, 해고까지 험난한 일을 연달아 겪은 권성민 PD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인터뷰는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PD저널, 오마이뉴스 기자가 참가한 가운데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왜 이런 뉴스가 나가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지난해 4월 16일, MBC는 <이브닝뉴스>에서 세월호와 세월호 탑승 승객이 받을 보험금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5월 7일에는 ‘함께 생각해봅시다’라는 코너에서 유가족들과 국민의 ‘조급증’이 민간잠수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큰 사고를 겪으면서도 성숙한 태도를 보였던 타 국가와 비교하는 리포트를 방송했다.

노사가 합의한 공정방송 보장 장치인 공정방송협의회를 해태하는 등 사측이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는 2012년 1월 30일부터 김재철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때문에 가르침을 줄 선배도 없이 정신없이 일했던 신입 PD는 노조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 4월 1일 곧바로 노조에 가입해 파업에 참여했다. 공정한 보도를 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며 수많은 구성원들이 거리로 나섰고, 법원조차 당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었지만 MBC란 이름 아래 나가는 보도들은 개선되지 않았고,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2014년 5월, 2년차 PD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실명을 걸고 ‘엠XX PD입니다’라는 글을 쓴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파업을 해서 그렇게 오래 싸웠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밖에 있는 사람들은 ‘(MBC 구성원들이) 변했구나. 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이런 식으로 보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고, (세월호 보도)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런 뉴스가 나갔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화가 나기도 했고. 글은 누굴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설명’을 드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변호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이라는 것만 같이 알고,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웹툰 <예능국 이야기>가 해고 사유가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제작부서로 ‘유배’ 간 사원들의 SNS를 회사가 감시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았지만 혹시나 회사가 보기에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민감한 부분은 ‘별로 안 그렸다’. 중심 소재는 그가 머물렀던 정든 ‘예능국’의 생활이었다. 예능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나 선배들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능국에 있을 때와 달리 ‘퇴근’하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직 이후 예능국으로 돌아갔으면 절대 못 그렸을 만화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죠”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정직 6개월이 나고 나서 (예능국) 선배들끼리 회의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쨌든 (정직 끝나고) 예능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자고. 저도 되게 조용히 있었다. 콘텐츠 작업을 하긴 했으나 사규 위배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잘 버텼는데도 정직 (풀리기) 하루 전까지도 아무 얘기 없다가 그날 저녁 7시에 수원으로 가라고 해서 짜증이 났다. 러시아워에 출근하는 게 진짜 힘들더라. 가서도 TO(할당 인원) 바깥의 인원으로 (나를) 배치해 놨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 일도 안 주고 책상 하나 줘서 수용소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아, 내가 이렇게 유배 받는 신세가 됐구나. 예능국으로 돌아가긴 좀 힘들 수도 있겠다. (돌아갈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조심은 하되 하고 싶은 걸 하자, 콘텐츠를 만들자 생각했다.

선배들을 그리면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은 (웹툰을) 볼 거니까… 정직 6개월 지내느라 일도 못하고 예능국 소식을 전해 듣기만 하고 있었다. 수원에 가 있지만 ‘저 여기서 잘 살아 있어요’ 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았다. (‘유배’라는 표현은) 워낙 (MBC 안팎에서) 공공연히 쓰였고, 제 상황에 대한 자조였는데, 윗분들은 워낙 예민하셔서 자기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 권성민 PD가 그린 웹툰 <예능국 이야기> 중 일부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노보)

“당연히 질 수 없는 소송… 선배들은 빨리 ‘편집지옥’으로 오라고 한다”

MBC는 선고 직후 공식입장을 내어 권성민 PD가 ‘반복적이고 맹목적인 해사행위’를 했다며 상급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25일에는 <MBC 특보>를 발행해 “웹툰은 반복되는 해사행위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MBC는 권성민 PD가 오늘의 유머에 쓴 글을 인용하면서 △회사 존립 부정·선전선동 △시청자 조롱 및 폄훼 △정파적 이념·가치 맹목적 주장 △보도행위 조롱과 비하 △반복되는 극언과 망언 △파업 유도·종용하는 듯한 표현 △정치적 중립성 위반 및 방송사를 이념과 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표현 △억지 정당성 주장 등을 했다고 주장했다.

권성민 PD는 선고 직후 나온 회사의 입장을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 항소할지 여부도 예상이 됐다면서. 승소하리라고 예상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질 수 없는 소송이라고 봤다”며 “특히 가장 마음을 썼던 ‘부당전보’ 부분을 다 원천무효라고 해 줘서 안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개 사안(정직, 전보, 해고)에 대해 상식적으로 판결 내려주셨다는 게 기분 좋았다”고 덧붙였다.

승소 소식을 듣고 예능국 동료, 선배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묻자 “예능국 선배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어서 편집지옥으로 돌아와라. (돌아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6층에서 신나게 갈궈주마’ 이거였다”고 답했다.

▲ MBC를 상대로 제기한 정직 및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한 권성민 PD (사진=PD저널)

그러나 MBC가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법정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는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싶다”며 ‘지금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새로 생긴 브랜드 ‘타파스’에서 객원 PD로 참여하는가 하면,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서 영상제작실습 강의를 맡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있다.

권성민 PD는 “실제로 노동시간은 훨씬 적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PD 역할만 하면 됐다. 자료 수집, 섭외는 각각 팀이 맡아서 했고. 주어진 트랙 안에서만 잘하면 되니까 정신은 덜 필요했는데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야 하니까 인지적인 자원은 더 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예능 PD로서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현장에 있어봤기 때문에) 저기서는 PD가 어떤 디렉션을 줬구나, 저 현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게 보이고 왜 조연출이 자막을 그렇게 썼는지도 다 보인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좋지만… ‘해고 데미지’가 제일 클 때가 예능 볼 때여서… 그래서 잘 안 보게 된다”고 말했다.

선배인 이상호 기자가 해고 후 대법원까지 ‘무효’ 판결을 받고 복직하기까지 2년 반이 걸렸다. 사측이 항소하겠다는 입장인데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으니, MBC에 돌아오려면더 기약 없는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권성민 PD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선배들에게 보내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1심 통과해서 (갈 길이) 많이 남았겠지만 밖에서 놀다 왔다고 너무 혼내지 마시고, 저 예고할 연차 지났으니 예고 시키지 마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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