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이버인권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사이버인권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된 사이버인권법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과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개정안으로 각각 제출됐다. ‘사이버인권법’은 별도의 법안이 아니라 토론회 주최 쪽이 이들 법안을 ‘사이버통제법’이라 통칭하고 이에 맞선 개념으로 붙인 상징적 이름이다.

따라서 토론회 역시 1부에서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중심으로, 2부에서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중심으로 사이버인권법 섹션의 토론회 모습
“사업자에 모니터링 의무부과는 인터넷 핵심 파괴할 것”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인권법 발제를 맡은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고려대 법학과 교수)은 “인터넷 규제가 다른 표현의 자유 규제와 다른 이유는 항상 표현한 사람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표현을 매개하는 사업자에 대한 규제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포털이 아닌 게시자가 직접 자신의 게시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의제기, 소명의 권리가 뒤따르는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주장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 실명제와 관련해서 박 소장은 “인터넷 상에서의 익명권은 민주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며 “외국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확고하게 보호되고 있다”며 “인터넷실명제는 오히려 차별적 규제”라고 비판했다. 방송은 모자이크처리가 가능하고 출판에서는 필명을 사용할 수 있으나 유독 인터넷에서만 실명을 사용하라는 것은 잘못됐다는 말이다. 박 소장은 “수사의 용의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이버 명의 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엔 처벌하기 위해서는 아이피를 추적해서 확인해야 한다”며 인터넷실명제는 반대로 정부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잠재우는 역효과를 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이용했던 것은 감시 없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보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정보가 자신의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는 것에 대해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인터넷의 핵심을 파괴하는 조항”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마치 주차장을 운영하는 사람들한테 주차장 차량이 미등록차량인지 계속 확인하도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가 토론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영문 방송통신위원회 네트워크윤리팀 서기관은 “인터넷실명제와 제한적본인확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며 “익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한적본인확인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네티즌들이 정보를 올릴 때마다 사업자들의 이익에 비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에 있어서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며 음란물, 명예훼손 정보에 대한 모니터링 의무부과가 정당하다는 의견을 펼쳤다.

그러나 박경신 소장은 “정보서비스사업자들에게 모니터링을 의무화하지 말고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DMCA)을 도입하자”고 말했다. 개정법안에 담긴 DMCA는 사업자가 삭제 요구가 들어온 게시물을 스스로 삭제하는 대신 게시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함으로써 위법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하는 ‘면책조항’이다. 박 소장은 “정보서비스사업자들이 불법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사업자에 대한 모니터링 의무부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같은 섹션의 토론자로 참석한 민경배 경희대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는 사이버모욕죄에 대해 “나경원 의원께서 공개석상에서 대한민국 여교사 대다수가 혐오와 충격을 받을 만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됐었는데 이 발언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도 사이버모욕죄에 찬성하겠다”면서 “규제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율규제를 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고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라며 “이것이 존중이 된다면 강제적인 법규정 없이도 건전하고 깨끗한 인터넷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중심으로 사이버인권법 섹션의 토론회 모습
“사이버인권법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조항 삭제해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인권법 발제는 이은우 진보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법무법인 지평 변호사)이 맡았다. 이은우 변호사는 “통신비밀은 표현의 자유와 쌍벽을 이루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며 “따라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하려면 법률로써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법률의 입법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목적달성을 위한 방법이 적정해야 하며, 피해는 최소에 그치도록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에 균형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은우 변호사
이어 통신비밀보호법에 관한 사이버인권법의 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사이버인권법에는 ‘일상적 위치추적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휴대폰 감청의 금지’, ‘긴급통신제한조치의 삭제’, ‘통신제한조치의 기록의무 부과’, ‘의사·변호사·종교인 등 직무관련 통신의 감청 금지’ 등이 포함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천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사이버인권법에 대해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감청 장비를 수사기관이 보유하고 있으면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감청장비 등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통신사의 협조를 얻어서 감청을 하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감청제도가 합법적이지 못해서 1997년 X파일 사건 때 중대한 범죄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증거가 될 수 없었다”며 “휴대폰 감청이 합법이었다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은우 운영위원은 “협조의무를 구체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감청이 불가능한 통신서비스는 하지 말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라고 답했다. 이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문제돼 왔으며 감청설비를 하지 않는 통신서비스사에 과태료를 계속적으로 부과하는 점에 대해서도 논란을 빚어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현행법상 일반 전화는 감청을 해왔기 때문에 휴대폰도 허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일반전화 감청과 휴대폰 감청은 프라이버시 침해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수사의 편의가 아닌 기본권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황순원 한국진보연대 민주인권국장이 참석해 “MB 집권 이후 국정원에서는 노골적인 국내 정치 사찰을 지속해왔다”면서 “이는 지난 촛불정국과 같은 국민적 저항이 다시 일어나 집권 기반이 와해되는 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한 “사이버인권법 개정안을 보면 제5조(범죄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허가요건)에서 국가보안법 제2조 내지 6조의 죄를 포함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자체가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고 국가보안법의 무용론에 비춰봤을 때 적절하지 않다”며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국장은 최근 국정원이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에 대해 사찰한 것을 비롯해 ‘BBK 재판 관련 재판부 전화 및 기자 사칭 법원 출입’, ‘KBS 사장 해임 관련 관계기관 대책회의 참석’, ‘기륭전자 사측에 노조와 합의하지 말 것을 압력’, ‘전교조 김형근 교사 2년에 걸쳐 감청 및 우편물 검열’, ‘총학생회 선거 정보수집 및 개입 정황 포착’ 등 다양하게 정치사찰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의 사회를 맡은 전병헌 민주당 국회의원은 “사이버 공간은 상상과 소통, 자유가 기본인데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감시와 통제와 제재장치를 가져다 붙이고 있다”며 “사이버인권법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자유로운 권리가 보장되도록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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