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종편 방송국의 뉴스에서 ‘헬조선’ 현상에 대해 다루면서‘헬조선 지옥불반도’가 소개되었다. '대기업 성채'를 가기 위해선 ‘노예 전초지’를 거쳐야 하고, ‘공무원 거점’에 들어가기 위해선 '백수의 웅덩이'를 지나야 한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땅 위로 헬조선살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변방의 ‘이민의 숲’은 평온해 보이기만 하니, 어째서 희망과 행복은 이 땅에서 이토록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을까? 하나의 그림에 지나지 않는 풍자가 하루 종일 뇌리에 남는 것은 그것이 웃으라고 만든 그림이 아니라, ‘아이고, 죽겠다’는 신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분 전환을 위한 가벼운 여행 에세이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한『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관광지와 맛집 체험기, 말랑말랑한 감성이 담긴 예쁜 책이 아니었다. 진정한 행복과 복지의 본질에 관해 인문학적, 사회학적 성찰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덴마크 여행기에 자연스럽게 담았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도 덴마크에 오랜 관심을 보여 왔다. 보수 쪽은 새마을 운동의 기원지로, 그리고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라는 이유 때문에, 진보 쪽은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라는 이유 때문이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가 덴마크에 관심을 보여 왔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특히 최근 화두가 되고 ‘청년취업’과 ‘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덴마크의 방식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 그들은 왜 행복할까?, (유승호, 가쎄, 2013.03.01)

덴마크는 모든 직업에 차별이 없다

덴마크에서는 목수가 되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남들의 평판보다는 스스로가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인데 그중 하나는 보장된 급여를 꼽을 수 있다. 변호사와 목수의 월급 차이도 세금을 떼고 나면 크지 않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공무원이나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을 선호한다.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모두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적이라는 공통점을 꼽을 수 있다. 게다가 철저하게 서열화가 된 사회에서 직업은 현대 사회에서 계급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는 곧 사회에서 신분이 되어버린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취업이 안된다고 투덜되는게 한심하다고 한다. 어떤 중소기업에서는 인재를 뽑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경쟁이나 모험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다. ‘청년 희망 펀드’와 같이 국민 개인의 기부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국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어차피 좋은 직장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청년 취업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덴마크는 해고가 쉽다

성, 종교, 임신 등 사회적 차별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든 해고가 가능하다. 해고 예고기간도 1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짧고, 근속 9개월 이하의 생산직 노동자는 해고 예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다. 갑자기 덴마크라는 나라가 살기 힘든 살벌한 나라처럼 느껴지겠지만 덴마크 노동자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직장불안정성은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자유로운 해고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황금 삼각형 모델’이라는 덴마크의 정책 모델은 세 꼭지점이 서로 의지하여야 가능한데, 세 꼭지점이란 ‘우연한 노동시장’, ‘사회보장’,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다. 해고와 채용을 쉽게 해 기업은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쉽다. 대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실업자를 위한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 취업알선, 직업훈련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할 뿐만 아니라 4년 동안 실직수당을 제공한다. 노동자는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가 그들을 보호해 주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직을 전업이자 승진의 기회로 여긴다.

우리 정부는 ‘쉬운 해고’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다 잘 될 거야’식으로 일축하고 있다. ‘황금 삼각형 모델’은 세 꼭지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온 국민이 염원을 담아 다 잘될거라고 소원을 비는 것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규칙을 토대로 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결국 또 다른‘사회적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사회학자인 저자 유승호 교수의 글에는 청춘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 청춘의 불안정함이 성장통인 것처럼 위로를 건네는 교수님도 청춘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야, 너희들이 아픈 건 이 세상이 야바위꾼 같기 때문이지.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다.’라고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저자와 같은 교수님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세상에 돌을 던지지 못한다면, 사회의 부조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나라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냥 모험해봐라, 아파봐라, 막장까지 떨어져 바닥치고 올라와 봐라,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오르락내리락은 청년 스스로 하는 것이지만 트랙은 누군가 만들어줘야 한다. 그건 바로 사회의 몫이다. 국가나 사회의 리더들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 오르락내리락에 자신을 던지라고 말해야 한다. 목숨까지 걸라고 하는 건 전쟁 때나 하는 얘기다. 궤도는 튼튼해야 한다. 중간에 궤도가 끊어진 트랙에서 제트코스터를 한번 멋지게 타보라고 말하는, "너 한번 열심히 나처럼 해봐" 라는 말은, 끊어진 트랙에서 용케 멋진 점프로 성공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겐 도움 되는 말이겠지만 결국 많은 사람은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이미정 _ 예비 출판인

대한민국의 흔한 전공 경영학을 배웠다.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유통회사를 다니다 어느 날, 딱 10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1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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