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이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일 당무위·의원총회 연석회의를 열고 문재인 대표에 대한 재신임을 확인하는 결의문을 재택했다. 이는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투표를 철회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결정으로 그간의 내분이 사실상 ‘봉합’ 국면으로 들어갔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봉합’이라고 하더라도 내분 사태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비주류 의원들의 모임인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갈등요소가 내재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 16일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된 이후 한풀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든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 종결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에서 더 큰 불안요소로 전화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다. 20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치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할 ‘개혁적 국민정당’의 창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천정배 의원은 “새정치연합은 야당다운 패기와 기상을 잃었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참패할 것이고, 이는 야당의 참사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구독점 기득권 세력의 절대 우위가 고착되는 국가적 참사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정배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연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너나 잘 해라’라는 말이 생각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혁적 국민정당' 창단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표는 일단 천정배 의원의 발언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다. 문재인 대표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무례한 말”이라면서 “야권이 정말 똘똘 뭉쳐도 어려운 판에 이렇게 분열한다면 더더욱 어렵다. 저는 천정배 의원이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는 “호남 민심이 요구하는 바는 통합이다, 분열하지 않는 것이다”이라면서 “천정배 의원이 신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호남 민심에 역행하는 것이고 호남 민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그러나 천정배 의원이 신당 창당을 선언한 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정치개혁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것은 둘 사이에 어떤 ‘공감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어 새정치민주연합을 내외에서 흔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20일 정치 입문 3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부패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거나 재판에 계류 중인 당원에 대해서는 즉시 당원권을 정지하고, 당직은 물론 일체의 공직 후보 자격 심사 대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면서 “부패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구 퇴출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확정된 날부터 즉시 제명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의 이러한 입장은 주류 대 비주류의 구도로 ‘내전’이라 부를 정도의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새정치’라는 정확한 컨텐츠로 승부하겠다는 나름의 입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이 전면화 되는 시점에 안철수 의원과 천정배 의원의 회동이 성사됐다는 것과 이날 천정배 의원의 신당창당 선언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양자 간의 어떤 교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추측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치공학’이라는 틀로 보자면 이런 해석이 제기되는 게 안철수 의원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 외부에서 천정배 의원이 원심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 내에서 자기 주장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정치적 효과로 본다면 안철수 의원이 천정배 의원과 어떤 경우든 행보를 함께하는 것은 손해로 돌아올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천정배 신당’의 파괴력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정배 의원의 신당 창당 입장은 민감한 정치적 수사들이 다수 포함돼있으나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신당을 누구랑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아 충분한 정치적 파괴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칩거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원이나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추진하는 ‘신민당’, 김민석 전 의원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 박주선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탈당파 등을 ‘천정배 신당’에 합류할 수 있는 인사들로 볼 수 있는데, 이들만 갖고 전국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대선후보급 인사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성공 여부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천정배 신당이 부담스러운 것은 스스로 흥할 수 있을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남을 망하게는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천정배 의원 자신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와 자력으로 광주에서 당선된 전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들이 호남권 일부에서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새정치민주연합에게는 ‘위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또, 첨예한 양자대결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지역구에서 천정배 신당의 후보가 출마해 3자구도를 형성하는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패배가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부담이다.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 예는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동영 전 의원이 연출 했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출마선언 3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일 안철수 의원이 이런 위기를 눈앞에 두고 당의 단결을 호소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야권의 대선주자로서 상당한 입지의 확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전면에 나서서 한손에는 정치개혁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민주평화개혁 세력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깃발아래서 내년 총선을 함께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해보라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이렇게 나오면 당장 당 내에서 탈당 시기를 저울질하는 일부 비주류 인사들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천정배 의원의 행보에 대해서도 힘을 뺄 수 있으며 비생산적인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당 내 주류-비주류 갈등에도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대선주자들도 여기에 호응해 내년 총선을 노린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혁신 경쟁’을 시작한다면 지긋지긋한 싸움에 관심을 거둔 국민들이 제1야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표 역시 원스트라이크 아웃이든 부패인사 추방이든 안철수 의원의 제안을 생산적으로 소화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태를 돌파해야 한다. 단지 재신임이냐 아니냐의 방식으로는 여전히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다. 좀 더 절박한 태도로,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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