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진통 끝에 노사정 합의안을 추인하고 노사정 본회의에서 ‘대타협’이 선포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입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분위기다. 일간지들은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보수언론의 경우 ‘질의응답’ 형식의 기사를 작성해 노동개혁을 둘러싼 ‘오해’를 경계하며 야당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 한겨레 15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15일 1면에 <노조 울타리 밖 노동자 1800만명 ‘고용 불안’ 내몰릴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노사정 합의안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노사정 합의안의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요건 관련 항목에 대해 “합의문 초안은 ‘명확히 한다’고 했을 뿐 ‘완화’라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와 사용자 쪽은 일반해고와 관련해 ‘저성과자’니 ‘업무부진자’를 거론했다. 절차와 요건이 강화될 리 없는 것”이라면서 “취업규칙 관련 내용도 정부가 이미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과반 노조나 노동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바뀐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도 “‘합의’가 아니라 ‘협의’다”라면서 “협의를 거듭해도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정책으로 실현되면, 결국 고용불안의 폭풍우 앞에 서는 건 무노조 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이라면서 국내 노조 조직률이 OECD 가입국 중 최하위인 10.3%에 지나지 않고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겨레는 “취업규칙·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비정규직 종합대책까지 고려하면 이번 합의는 ‘노동유연성 강화 대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면서 합의안에 기간제·파견 노동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 등의 개악안이 이후 국회 처리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돼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 한겨레 15일자 3면 기사

한겨레는 3면에 <통상임금 범위 법제화…‘제외항목’ 정부에 맡겨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명확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이라는 3대 현안에 있어서도 문제가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적어도 2024년까지 주 60시간 체제가 유지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통상임금 범위를 사실상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직무, 숙련을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겨레는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대책이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고용 확대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합의안의 내용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봤다.

▲ 한겨레 15일자 사설

노사정 합의가 결국 ‘노동의 양보’만 강제했다는 게 한겨레의 평가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잠정합의 내용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우리 경제의 두 바퀴라 할 노동계와 재계에 끼치는 영향이 ‘상호 비대칭적’이란 점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고 해고 위험은 커졌다. 노동자가 떠안은 부담은 현실적이고 확정적이다”라면서 “반면, 기업은 해고나 임금 삭감을 제자하도록 노력하라고 권고 받은 뿐이다. 기업의 부담은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이다”라고 썼다. 한겨레는 “잠정합의 내용이 지닌 명확한 한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노사정 모두에 큰 오점으로 남을뿐더러 진정한 노동개혁의 성과를 이뤄내지도 못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런 관점은 경향신문 지면에서도 반복 표현된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에 <당·정 ‘노동 독주’ 브레이크 풀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노사정 대타협이 외환위기 후 18년 만에 ‘쉬운 해고’ 등으로 노동시장을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변곡점이 될 수 있고, 합의안에는 노동계의 견제장치가 취약하다고 우려하고 있다”면서 “노동계에선 한국노총이 ‘약속어음’만 받고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드라이브에 들러리만 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한국노총은은 누구를 위해 노동개악에 손 들어주었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합의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노동자의 희생과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노동개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 경향신문 15일자 사설

그러나 보수언론으로 눈을 옮기면 영 딴 세상이 펼쳐진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노동개혁, 첫 문턱 넘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친절하게도 3면에서 일반해고 기준과 임금피크제에 대한 ‘질의응답’ 형식의 기사를 배치하기도 했다. 이 기사 내용에 의하면 일반해고 지침은 “지금보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해고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지침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다양한 판례를 지침에 담으면,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라는 규정을 남용해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하는 폐단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일반해고 지침에 법적 구속력도 없다면서 해고 분쟁이 증가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결국 노동자를 더 잘 해고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겠다는 취지임을 강조한 것이다.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15일 '질의응답' 형식으로 노동개혁에 대한 정부 논리를 반복한 기사들

조선일보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나지면 임금 체계를 현행대로 두면 기업 부담이 커지면서 청년 신규 채용 여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임금피크제는 임금 유연성을 확보하는 일부 방안일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근무연수가 많으면 자동적으로 임금을 올릴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직무와 능력 중심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새로운 임금체계가 도입돼야 한다는 데 많은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이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포석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 조선일보 15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또 4면에 <노동개혁법 키 쥔 환노위, 여야 동수에 野는 강성…‘입법전쟁’ 예고>라는 기사를 배치해 향후 국회에서 노동개혁 입법이 순조롭게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일보는 <‘노동 개혁’ 받아들인 한국노총, 이제 국회가 화답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평균 연봉이 9700만원이나 되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을 65세까지 늘려달라며 파업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을 누가 약자의 호소라고 생각하겠는가”라면서 “야당이 끝까지 강성 노조의 편에 서면 노동 개혁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 입법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 15일자 사설

‘노동개혁은 노동자 측에 이익인데, 국회 환노위가 강성노조와 손잡은 야당에 장악돼있어 입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논리는 다른 보수언론의 지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5면에 <저성과자라고 무조건 해고 못해…대법 “재기 기회 줘야”>라는 제목의 ‘질의응답’ 형식 기사에서 이번 노사정 대타협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임금체계가 성과형으로 바뀌어 재량근로가 가능하게 되며 비정규직 처우가 개선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일반해고의 경우 저성과자라도 무작정 해고하면 대법원이 부당해고로 간주할 수 있다고도 해설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국회의 개악 우려되는 노사정 대타협>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정치권에서 이번 합의를 절대 흥정이나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면서 “청년일자리 확대라는 대승적 목표를 위해 정치권의 ‘통 큰’ 타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도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3면 <저성과자 해고땐 직무재배치 등 구제조치 반드시 거쳐야>라는 제목의 ‘질의응답’ 형식 기사에서 앞의 두 신문들처럼 정부 논리를 반복했다. 또 동아일보는 4면 <與 “5대법안 이번 국회에 처리”… 野 주도권 쥔 환노위 변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회 환노위의 야당 중심 지형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핵심 빠진 노사정합의, 국회서 ‘맹탕 노동개혁’ 안 된다>는 사설에서 노사정 합의의 노동유연성 관련 조치는 추후 협의 대상으로 돼있으면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부분과 사회안전망 부분은 대부분 명시적으로 규정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래서야 고임금 대기업 정규직과 저임금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의 격차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려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노동개혁의 근본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15일자 사설

또, 동아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합의안에 반발하고 있고 민주노총이 의견수렴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환노위가 야당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국회선진화법 문제도 있다면서 “자칫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에 법 개정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20, 30대를 포함한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개혁에 찬성하는 현실”이라면서 “야당이 강성 노동계의 주장에 휘둘려 그보다 훨씬 많은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도 주장했다.

결국 보수언론이 의도하는 앞으로의 상황은 이렇다. 먼저 노동개혁 문제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을 진화해야 하고, 현재의 ‘대타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노동유연성 제고라는 실질적 과제 해결로 상황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하며, 국회에서 노동개혁 관련 법안 통과가 진통을 겪을 경우 야당을 비난하면 된다.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하든 말든 정치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행보를 앞으로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보수언론과 박근혜 정부가 함께 만드는 끔찍한 풍경이 우리 눈 바로 앞까지 와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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