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양문석 박사가 진단하는 ‘위기의 한국 드라마’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출연료 작가료 제작비 외주정책 제작사의 제자관행 협찬 PPL 단막극 미니시리즈 연속극 주말드라마 등 총체적이며 상호유기적인 문제점을 분석해보고,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연속기획으로 보도할 계획입니다.

드라마의 위기를 논하는 토론회 이후 한국의 언론들이 보도하는 모양새를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토론회의 핵심은 배우나 탤런트들의 회당 출연료가 아니고, 공생공존할 수 있는 대안이 뭔가, 현재 제도의 문제는 뭔가, 방송사는 정당한 행위를 해 왔는가 등의 질문과 이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의 결과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연기자의 출연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듯 보도를 쏟아냄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적어도 한국에서 드라마는 국민 전반에 위로를 주고 꿈을 주며 모르던 역사와 놓치고 있는 문화적 경향성을 알려주는 장르다. 재미 오락 교양 정보의 총체적 예술이다. 그리고 산업적 측면에서도 한 때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할 수 있었던 첨병이었다. 한데 이 드라마가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연배우의 회당 출연료로 상징되는 제작비의 과다편성은 지상파의 존립마저 뒤흔든다. <KBS스페셜> 등 지상파가 공익적 차원에서 반드시 제작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한 편 제작비가 중견 조연배우들의 1회 출연료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예를 들어 KBS의 <환경스페셜> 한 편 제작비가 18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신인 배우 1회 출연료가 이만큼 되니 이게 비정상적인 출연료 책정 관행이 아니고 뭐겠는가?

▲ 12월 2일자 세계일보 10면.
스크린쿼터 싸움에 한 번도 나와 보지도 않던 영화배우들이 스크린쿼터가 무너진 이후 속속 드라마쪽으로 몰려든다. 왤까? 오로지 돈벌이하기 좋은 곳이 지금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영화판의 톱스타 출연료가 편당 3억 가량, 하지만 드라마 24부작에 출연해서 회당 5천만원을 받으면 12억원이다. 미니시리즈 24부작 제작기간이나 영화 한 편 제작기간이 평균 6개월임을 고려할 때 드라마 출연료가 영화 출연료보다 무려 4배 이상 높다.

상황이 이러니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드라마 곳곳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MBC 미니시리즈 <에덴의 동쪽>에 등장하는 국 회장(유동근 분)은 카지노 재벌이다. 대저택에 산다. 그런데 가정부, 운전기사, 심지어 비서조차 없다. 혼자서 전화받고 반드시 받아야 할 전화가 있으면 딸이 하루종일 집안에 대기하다가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없고, 가족도 딸 하나다. 편부에 외동딸.

각종 사극을 보라. 국운을 걸고 붙는 전쟁에 등장하는 군사 수가 50여명 남짓. 단역과 엑스트라의 하루 출연료는 대체로 5만원 이하다. 그렇다면 전투신을 제대로 찍기 위해서 1000명 정도 등장시키면 5천만원이다. 주연급 1회 출연료로 생생한 전투장면 서너편은 찍을 수 있다. 의상비를 고려한다고 해도 1억이면 실감나는 전투장면이 여러차례 나온다. 그런데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전투신에 등장하는 군사 수는 많아야 100명이고 대체로 50명 안팎이다.

비오는 거리에서 연인의 애틋한 이별 장면, 뒤쪽 아스팔트는 허옇게 말라있는데 연인들은 우산을 쓰고 있다. 소방차 2대 분량으로 뿌려야 할 비오는 장면을 달랑 소형 소방차 한 대로 감당하려다 보니 연인들 주변에만 물을 뿌릴 수밖에 없다. 정작 들어가야 할 장치들이 빠짐으로써 시청자들은 실감나는 장면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기업 사무실 장면이다. 복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아주 작은 사무실 공간에 너댓 명이 만날 회의만 한다. 그리고 젊은 실장이나 사장 방에서 비서도 없이 3각관계의 갈등만 존재한다.

▲ MBC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당시 인터넷에서는 2만 군사를 대적하러 가는 주몽의 별동대 등 전쟁신의 스케일을 희화한 한 이미지가 유행했다.
문제의 핵심은 제작비 배분에 있어 심각한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연 배우 3인이 전체 제작비의 60~70%를 움켜쥐고 있는 현실에서 제작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다른 장면 다른 영역에서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문제가 단지 연기자의 고액 출연료 때문에 왜곡되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문제인가? 고액출연료를 요구하는 연기자의 문제인가? 아니면 고액출연료도 마다지 않고 캐스팅하는 제작사의 문제인가? 방송사의 문제인가 외주제작사의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연예기획사의 문제인가?

모두의 문제다. 그들의 눈에는 시청자의 눈높이란 별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장면설정이 어색하고 출연진의 구성이 엉성해도 대충 시청률만 나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절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왜냐면 시청자들은 그나마 어색하고 엉성해도 다른 대안이 없어 한국 드라마를 울며 겨자먹기로 시청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의 시청률이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미국 드라마 수입비용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한때 한국민들의 자긍심의 핵이었던 ‘한류’가 주저 앉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탄탄한 구성, 실감나는 연기와 더불어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한국 드라마의 가격이 한류의 3요소였는데, 제작비 증가로 수출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제작비 증가로 구성이 허술해짐으로 인해서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이 동시 하락해 한류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제작비 배분의 과학화다. 둘째, 고액 출연료가 과연 정당한 가격인가에 대한 과학적 산출 방식을 개발하고 이에 대해서 제작자들이 합의,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자나 기획사 그리고 연기자들이 ‘드라마 제작 기반’과 ‘시청자’가 존재해야 자신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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