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 사태가 일단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승부수’에 위기감을 느낀 중진들이 협의한 결과 재신임 투표를 연기하고 16일 중앙위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이 당 혁신의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고 재신임 투표 실시 날짜를 두고 주류·비주류가 대립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형성되는 국면이다. 14일 일간지들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지면을 구성했는데 보수언론은 제1야당 내의 갈등을 공천권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文 재신임 파동, 혼자 살겠다는 정치꾼만 득실거린 결과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 대표가 국정감사 기간에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국민에게는 ‘느닷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면서 “문 대표가 자신과 친노가 지지하는 혁신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압박 카드로 재신임을 꺼내 이 소동을 빚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선일보는 당 안팎에서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되면 재신임 문제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문 대표가 지난 며칠 보여준 ‘즉흥 정치’를 생각하면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당 내 비주류 인사들이 혁신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속내는 어떻게든 혁신안을 좌절시켜 문 대표를 끌어내리려는 것”이라면서 “친노나 비노 모두 야당의 환골탈태를 위해 머리를 맞대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도 비주류 측은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주류 측의 혁신안을 사사건건 비판만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혁신위안이 다음 총선 공천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봤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결국 이번 야당 내분 사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나 하나 국회의원 자리를 챙기는 것을 앞세우는 이기적 정치꾼들이 득실대는 야당의 실정을 드러낸 셈”이라면서 “총선이 다가올수록 공천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 격화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온갖 소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결국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둘러싼 이 모든 소란이 2016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걸 기정사실화 한 셈이다.

▲ 동아일보 14일자 사설

이런 관점은 동아일보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드러내고 있다. 동아일보는 <새정연, 국감 팽개치고 ‘공천권’ 싸움에만 매달릴 텐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감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야당의 존재감을 국민에게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지금 당내 문제에 매몰돼 국감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새정치연합 내분의 핵심은 친노 주류와 비노 비주류 간의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싸움”이라면서 “문 대표 중심의 친노 주류가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친노 공천권을 강화해 결국 친노 패권주의를 고수하려 한다는 비노 측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2012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당시 한명숙 지도부가 공천 물갈이를 단행해 친노가 부활했다며 “이번 혁신위의 공천안도 20% 전략 공천, 현역 의원 교체지수 평가, 국민공천단에 의한 경선 등 19대 총선 때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비노 비주류, 특히 물갈이 대상으로 점쳐지는 호남권 의원들은 물론이고 범친노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계까지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면서 “이런 혁신안을 놓고 당내 계파들이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야당이 국정감사라는 역량과 실력을 발휘해야 할 분연의 역할까지 내팽개치는 모습은 더 한심하다”라고도 주장했다.

▲ 중앙일보 14일자 사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 관점을 보였다. 중앙일보는 <문재인과 비주류, 공천권 놓고 대타협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 대표와 비주류가 싸움의 명분으로 당의 혁신이나 민주화를 내걸지만 속내는 뻔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지분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권력 투쟁이 본질이다”라면서 “10년간 나라를 이끌었고 2년 뒤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129의석의 제1야당 수준이 한심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친노계에서 다선·중진 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비주류 역시 다선·중진 의원 불출마로 화답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 “양측이 공정·투명한 공천제도에 합의해 계파를 초월한 인재 수혈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문 대표와 비주류는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서로가 공감할 수습책을 도출해야 한다”면서 “양측에 그럴 마음이 없다면 아예 친노는 친노대로, 비주류는 비주류대로 뭉쳐 딴 살림을 차리는 게 나라를 위한 차악이 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관점에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은 내년 총선에 대한 공천권 문제를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정당의 공천을 통한 국회의원직의 쟁취는 단순한 기득권의 편입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비전을 펼쳐 보일 힘을 손에 넣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공천권을 둘러싼 내분을 단지 ‘밥그릇 싸움’ 정도로나 폄하하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는 정치적 냉소주의만 강화하는 결과로 치달을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것 말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비전을 보여주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보수언론도 위에서 돌아봤듯 이러한 바를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보수언론이 다양한 정치적 ‘술수’들을 통해 이러한 ‘소홀함’을 부추기는 데 함께 해왔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에 얼마나 힘이 실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 보수언론은 최소한의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않고 비슷한 내용의 비난만 반복하고 있다.

▲ 한겨레 14일자 사설

그러나 이런 보수언론의 행태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다른 언론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을 해소할만한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한겨레는 <새정치연합, ‘무책임의 책임 구조’로는 희망 없다>는 사설에서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높은 비율로 통과된다고 해서 새정치연합의 혼란이 쉽게 정리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면서 “이번 싸움의 본질이 혁신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내년 4월 총선과 그 이후를 내다보고 있는 당내 각 세력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문제는 각 세력의 다른 이해관계가 아무런 조정장치 없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는 새정치연합의 ‘무책임의 책임 구조’에 있다”면서 “야당 지도자들은 이런 무정치, 무책임의 당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 이어가는 것은, 자민당이 사실상 일당 지배체제를 굳혀가는 일본처럼, 한국 정치를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깊이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의 책임 구조’를 극복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겨레도 제대로 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누군가 당의 무언가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단일 계파가 당내 여당의 역할을 정확하게 자임하면서 조직을 장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시도는 거의 언제나 ‘계파갈등’의 전형으로 이어져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초래해왔다. 언론은 당의 원로나 중진들을 중심으로 계파 간의 중재를 시도하는 것 역시 늘 퇴행적 정치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주장하는 ‘무책임의 책임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 경향신문 14일자 사설

경향신문 역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은 <새정치연합, ‘임시 봉합’ 넘어 ‘진짜 정치’ 필요하다>는 사설에서 “16일 중앙위를 열되 ‘통과의례’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혁신안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제대로 된 토론을 벌여야 한다”면서 “중앙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한 뒤 공정한 절차에 따라 투표하면 된다. 이후 재신임 절차가 진행되면 그 또한 양측 모두 치열하게 임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향신문은 “주류든 비주류든 명심할 게 있다. 어느 쪽도 완승을 거두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라면서 “상대편의 일방적 항복을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정치의 본질은 양보하고 타협하고 협상하며 접점을 찾아가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양보는 모르겠으나 타협과 협상은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인사들이 매양 해오던 것들이다. 소위 ‘계파간의 담합 구조’라는 게 이 결과다. 언론들은 어느 시점에 분명히 그런 타협들이 문제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바로 그게 문제였다고 회고한다. 이런 현실인식은 혁신안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을 하고 재신임 절차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된다. 양측이 진검승부를 하되 완승을 거두지 말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제1야당의 고질적 분열을 극복할 대안이 없다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 날의 신문 지면에서도 이런 점은 거듭 확인됐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서 야당의 정치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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