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노동개혁에 대한 ‘대타협’을 이뤘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의 대표자들인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은 13일 임금피크제 도입, 일반해고 기준과 절차 명확화, 청년 고용 확대 노력, 기간제 파견근로자 고용 안정 및 규제 합리화, 근로시간 적용 제외 제도 개선 등에 합의했다. 14일 일간지들은 이에 대해 평소의 논조에 따라 명확히 갈린 관점을 지면에 반영했다.

▲ 조선일보 14일자 1면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노사정 “임금피크 동비해 청년고용 확대”>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와 같은 상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청년단체들 “고용 절벽 완화하는 양보와 타협 환영”>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청년이만드는세상 등 청년 5개 단체가 모여 만든 임금피크제도청년본부가 내놓은 “고용 절벽 문제를 완화하는 노사정의 양보와 타협의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란 내용의 성명을 인용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6면에 <“임금피크제 땐 ‘청년 일자리’ 4년간 13만개 늘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임금피크제가 청년층의 고용절벽 문제를 해소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14일자 6면 기사

조선일보는 3면 <‘해고 지침’ 명확히 만들자는 정부 요구…勞, 결국 받아들여>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노총이 그간 반대해온 일반해고에 대한 지침 부분에 있어 정부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이번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근로계약해지와 임금체계 양쪽에서 유연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노사정이 뜻을 같이 한 것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을 전하면서 “이 때문에 정부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한 ‘2대 쟁점’을 모두 관철시켰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고 평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면서 “한국노총으로서도 ‘안전장치’를 두었다. 노사정 합의문에 ‘(2대 쟁점에 대한 합의를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를 명문화했다”고도 보도했다. 또, 조선일보는 2면 기사에서 “일반 해고가 당장 법제화 되지 못했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도 향후 노사 간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면서 재계가 이번 합의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태도는 이번 합의가 재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1면에 <노사정, 노동개혁 잠정 합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합의 내용을 전하고 3면에는 <‘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 여론이 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국민이 노동개혁에 힘을 보탠 건 이번 기회에 일하는 방식이나 정규직 중심의 경직된 고용시장을 확 바꿔보자는 열망 때문이었다”면서 “실제로 이번 합의가 현실화하면 고용시장은 물론 국민 생활이 크게 변할 전망이다. 비정규직 보호나 주5일 근무제와 같은 특정사안에 한정했던 과거 타협안과 달리 노동시장 전반을 건드리는 종합판이어서다”라고 설명했다.

▲ 중앙일보 14일자 3면 기사

중앙일보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면 휴일근로가 사라지게 돼 일에 매몰된 근로자가 숨통을 트게 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신규 인력을 채용해 메꿔야 하니 일자리가 늘어나며, 선진국형 근로형태인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확대되고 능력과 역할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되면 하청업체 근로자가 낮은 임금을 받는 사례가 사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체계가 형성되고 청년 고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노사정 합의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 중 긍정적인 것들만 어떻게든 모아 ‘장밋빛 미래’를 만들어 열거한 것이다.

▲ 중앙일보 1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극적 타결한 노동개혁안…신속한 법제화 나서야> 제하의 사설에서 노사정 합의안의 갈 길이 아직 멀다면서 무엇보다도 국회 환노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이 합의안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제기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11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야권과 노동계가 어렵게 타결한 노사정 합의에 마냥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면서 야당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며 민주노총 등 강성노조들도 반대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노동자와 청년실업자를 위한다는 핑계를 내세우지만 노동개혁이 미뤄져 생기는 피해는 열약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실업자에게 돌아간다”, “민주노총의 강경세력은 마치 자신들이 전체 노동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대다수 여론이 노동개혁에 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등의 ‘악담’도 쏟아냈다.

동아일보는 이날 1면에 <노사정, 17년만에 노동개혁 잠정 합의>란 제목의 기사로 노사정 합의 내용을 보도하면서 14일 열리는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합의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노사정 대타협이 최종 무산될 수 있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이어지는 2면 기사에서 최경환 부총리 등 정부가 시한을 정하고 노동계를 압박한 것과 청년고용과 노동개혁을 연결시킨 것 등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면서 “일단 기재부는 통상임금 요건을 구체화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 동아일보 14일자 3면 기사

동아일보는 3면에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 청년고용 확대 활용” 명시>제하의 기사에서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승부수를 던져 노동계와 정부의 입장을 ‘절묘하게 절충한’ 중재안을 제시해 합의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합의문에 일반해고에 대한 중장기 법제화를 요구한 노동계와 지침 마련을 주장한 정부의 주장이 모두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가 명확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이 논리를 확장하면 합의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나 민주노총 등의 주장에 정당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한겨레 14일자 5면 기사

이날 일간지들의 지면에서는 보수언론의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이번 합의안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드러난 기사와 사설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겨레는 이날 5면에 <‘쉬운 해고’ 정부안 사실상 수용…‘들러리 한국노총’ 비판 일듯>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독자 입법’을 내세운 정부의 압박에 밀려 한국노총이 물러난 모양새다. 한국노총과 노사정위가 ‘정부발 노동시장 구조개편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라고 썼다.

한겨레는 8면에 <99%를 위하여…오바마 노동개혁은 달랐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세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1980년대 이후 사용자 쪽으로 확연히 기운 노사관계에 균형추를 잡는 내용의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날 <박근혜 정부와 너무도 다른 오바마의 노동개혁>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동개혁에 대한 발언 등을 소개하며 “눈길을 우리 사회로 돌리면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2822일 동안 천막농성을 해야 겨우 노동자로 인정받는 특수고용노동자가 300만명을 웃돌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조차 무시하는 대기업이 존재하는 게 이 땅의 슬픈 현실”이라면서 정부·여당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켜 사회 안정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 경향신문 14일자 사설

경향신문 역시 이날 노사정 합의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시각을 담아 지면을 구성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노사정 ‘대타협’, 헌법 무시해도 좋다는 면죄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면서 “대타협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하고 싶지만 내용적으로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노사정 합의안을 보면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한국노총이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정부는 그동안 노사정 합의가 없더라도 단독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위한 입법과 가이드라인 제정을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제 한국노총이 동의까지 해준 마당에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한국노총은 노동법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정부·여당의 ‘반민주적 폭거’에 조연 노릇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현행 헌법 32조는 국민의 일할 권리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위해 모든 근로조건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노동기본권을 행정지침으로 부정하겠다는 발상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정부와 여당은 한국노총의 동의로 헌법을 무시하면서 노동시장을 개악해도 좋다는 면죄부까지 얻은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렇게 헌법정신을 무시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는 점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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