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당원 투표, 국민여론조사 등을 통해 재신임을 묻되 하나에서라도 재신임이 되지 않으면 사퇴한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문재인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13~15일 간 실시하고 결과를 밀봉한 뒤 16일 중앙위원회 직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신기남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설훈, 김관영, 전정희, 진성준 의원이 참여하는 ‘전당원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관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이와 같은 확대간부회의 결정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재신임은 당헌·당규에 최고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등의 아무런 절차 규정이 없어 대표의 결단으로 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최고위원회 등 지도부가 공동으로 결정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는 전병헌 최고위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도부가 문재인 대표 구상에 반발했다. 이러한 반발은 비주류뿐만 아니라 ‘범주류’로 분류되던 인사들을 통해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정감사.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합참 업무보고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영식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 자리에서 “혁신의 단초가 분열이라면 분열은 공멸이며, 혁신없는 통합, 통합 없는 혁신으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서 “16일 중앙위원회 개최 및 대표 재신임 투표에 대해 당 대표가 재고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승희 최고위원 역시 “충정은 이해하나 재신임 투표의 결론이 어떻든 분열을 촉진할 우려가 있다”면서 “재신임이든 조기 전당대회든 우선 혁신안에 대해 마무리를 짓고 난 뒤 공식적 통로로 의견을 모아 논의하는 게 좋겠다”고 발언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만큼 문재인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결과인 셈이다.

문재인 대표가 이런 방식으로 칼을 빼든 이유는 현재의 구도로 계속 갈 경우 당 내 비주류의 반발을 쉽게 제압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날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과 이를 위한 당원 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를 언급한 데 대해 비주류 측 인사들은 문재인 대표가 국면전환을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반발했다. 어차피 문재인 대표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 때문에 결과는 보나마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 중 어느 쪽에서라도 재신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정계은퇴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음에도 비주류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대표는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만 내고, 같은 지도부인 최고위원들과 전혀 대화하지 않고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우리당은 ‘문재인의,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1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 역시 “중앙위 혁신안, 국민 당원 어느 한쪽만 불신임해도 사퇴하겠다는 것은 결국 친문 반문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면서 “노무현 정치를 계승한다면 정신과 진정성을 계승해야지 스타일만 흉내 내서는 국민과 당원의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당 내 비주류들의 목표가 ‘문재인 주저앉히기’라는 해석이 기정사실화돼있다. 문재인 대표를 일단 끌어내린 후 호남 민심을 수습하고 당 외에서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포괄하는 그림이 있다는 이야기다. 천정배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복귀할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계속 손사래를 치고 있고 12월 말이나 내년 1월에는 신당이 출범해야 총선에 대비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을 내놓고 있으나 문재인 체제 붕괴 이후의 전망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주류 일각에서는 천정배 의원이 탈당하면서 문재인 대표와 당 주류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제기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천정배 의원이 안철수 의원과 접촉한 것 역시 이런 전망의 맥락 안에서 이뤄진 일이 아니겠느냐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제1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모아지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 바 ‘호남 민심’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의 위력이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확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천정배 의원 뿐 아니라 정동영, 손학규 전 의원까지 데려오면 문재인 대표의 낙마로 잃은 지지를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또,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층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보더라도 과거의 야당이 점했던 정도의 지지 이상의 확장성을 갖추는 방법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012년 대선의 경우 제1야당은 좌측부터 중도까지 다 끌어 모아 새누리당과 1대 1구도를 만들었으나 결국 패배했다. 2017년 대선이 반드시 2012년의 재판이 되리라는 법은 없지만 최소한 제1야당이 2012년보다 더 많은 지지층을 끌어 모아야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은 2016년 총선에서 어떻게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어야 하지만 당 내외를 뒤흔드는 분란 속에서 이러한 점들은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승부수’는 이런 연속된 상황 속에서 ‘외통수’를 막기 위한 최후의 묘수처럼 제기된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자신의 재신임투표를 강행키로한 11일 국회 이석현 부의장 집무실에서 야당 중진의원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 부터 시계방향으로 원혜영, 신학용, 주승용, 김영환, 박병석, 이석현, 이종걸, 정세균, 최규성, 문희상, 김성곤, 오영식, 김동철. (사진=연합뉴스)

다시 말하자면 현재와 같은 구도 속에서 제1야당의 혁신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력도 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당권재민혁신위’가 어떤 설명을 내놓든 그것을 2016년 공천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주류든 비주류든, 친문이든 반문이든, 친노든 비노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선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이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당 내외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고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온 전통적인 제1야당의 지지층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를 몰아내서 누구를 데려온다는 식의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제1야당이 어떤 시대정신을 실은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제기할 것인가에 합의하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할 수 있다. 제1야당을 둘러싼 내외의 혼란은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어져 왔지만 그나마 근래의 기원을 찾자면 2008년 정세균 대표 체제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정세균 대표 체제는 2010년 지방선거 공천과 비주류 인사 일부의 탈당 및 복당, 재보궐선거 등을 둘러싸고 온갖 논란과 혼란에 시달린 바 있다. 하지만 ‘무상급식’이라는 정책아젠다를 제대로 잡으면서 선거에서도 성과를 내고 당 내외의 분열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며 진보정당과의 연대·연합의 교두보를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시의 ‘무상급식’에 대한 기억에만 기대어 있어도 곤란하다. 또, 당시의 상황을 제1야당이 언제나 좌클릭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해석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핵심은 중도냐 좌클릭이냐, 사람이냐 정책이슈냐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고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기초하지 않은 정치적 전략은 언제나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 이를 명심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승부수’도 무용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 멀리보기] 더 찾아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