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에 대한 정부안을 내놨다. 확장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세입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의 평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언론은 복지 지출 축소와 구조개혁을, 상대적으로 진보적 관점의 언론은 증세와 낭비성 지출 축소를 주문한 것이다.

한겨레는 9일자 1면에 <빈약한 세입탓 복지 위축, 나랏빚 첫 GDP 40%대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내년 복지관련 예산 증가율이 역대 두 번째로 낮고, 국가채무도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어선다”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증세 등을 통한 세입확충이 이뤄지지 않아 재정이 취약해지면서 복지 확대가 미흡함에도 재정적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까닭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고교 무상교육과 초등 돌봄교실 확대는 내년에도 예산이 잡히지 않아 사실상 폐기 단계에 들어갔다”고도 주장했다.

한겨레는 이어지는 4면에 <복지예산 비중 역대 최고?…절반이 연금 자연증가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고 정부가 복지예산 비중이 31.8%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힌 데 대해 “이는 복지지출을 크게 늘렸다기보다는 전체 예산 증가율이 3.0%로 소폭 늘어나는 데 따른 ‘착시효과’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복지예산 전체를 분석해보면 정책적 의지를 갖고 추진한 부분 보다는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을 비롯한 4대공적연금과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기초연금 지급액 증가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실업급여 관련 예산이 늘어났지만 정부는 노동개혁에 노사정이 합의하지 않으면 이 예산은 빼겠다는 입장이다.

▲ 한겨레 9일자 5면 기사

한겨레는 5면 <‘증세없다’ 고집…세수확충 게을리해 갈수록 적자 ‘눈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내년 예산의 지출 증가율이 3%에 불과해 10년 내 최저이며 재정수입 증가율은 2.4%에 그친 점 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정부가 내년 나라살림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것은 수입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와 채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고 정부는 설명한다”면서 “그럼에도 국가채무 비율은 정부가 정한 한계선인 40%를 넘어선다. 이는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대규모 감세와 현 정부 들어서도 ‘증세 없는 복지’란 도그마에 갇혀 세수 확충 노력을 게을리 한 데 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 9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도 정부가 사실상 긴축예산을 편성했음에도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마냥 ‘증세 거부’를 되뇌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담 여력이 큰 고소득자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세수 증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또 보건·복지·노동 부문 예산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고교 무상교육 시행과 초등 돌봄학교 확대 등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사실도 문제삼으며 “이래저래 예산을 손질할 필요성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 경향신문 9일자 사설

한겨레보다는 다소 증세에 미온적이지만 경향신문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 지적을 내놓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날 <재정 적자 걱정되는 내년 예산안>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가채무 규모에 공기업 부채 520조원, 공적연금에서 정부가 미래에 직브해야 할 연금충당부채 500조원, 금융공기업 부채 500조원을 더한 광의의 국가채무총액이 2200조원 안팎으로 GDP 대비 137%까지 치솟는다고 강조하면서 “문제는 내년 이후에도 재정적자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적자를 메꿀 방안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중국의 성장둔화와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리스크가 강화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화학·철강·조선 등 주력산업을 대체할 새 동력이 발굴되지 않고 있으며 급속한 고령화도 잠재성장률 하락에 일조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출을 늘려도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면 재정 건전성이 더 나빠져 국가채무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국회가 낭비성 지출과 재정 비효율을 따져야 하고 경제활력을 높일 수 있는 부분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야 하며 증세를 포함한 세수 확대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역시 이날 사설 등에서 비슷한 관점을 노출하고 있다.

▲ 한국일보 9일자 사설

그러나 보수언론은 늘 그렇듯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3면에 <복지·국방 등 ‘고정지출’ 급증… 경기부양 예산 부족해 SOC도 삭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내년 예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복지와 국방 예산을 늘리는 반면 SOC(사회간접자본)와 산업분야 예산은 줄인 것”이라면서 “정부가 경기 부양에 가장 효과가 좋은 SOC예산을 감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복지와 국방, 교육 등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예산 지출이 불어나면서 재정운용 여력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9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예산 지출을 늘려 경기를 띄우는 식의 운용은 안 되고, 씀씀이를 늘려 면밀히 들여다보고 경기 부양에 효과가 없거나 낭비되는 예산을 과감하게 도려내 다른 곳에 쓰라는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또 “단기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 남은 재정 여력을 경기 부양에 쏟아 붓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전했다. 조선일보는 4면 우측에 <부메랑이 된 복지공약…내년 123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1면 <복지와 성장 충돌 387조 예산 딜레마>란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사업들을 끌고 가면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제도 되살려야 하는 난제를 떠안았다”면서 “나라 곳간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 확대와 성장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고, 둘 다 끌고 가기엔 버거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4면에 <한번 늘린 복지 줄이기 어려워… 성장 예산 확보 빠듯>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복지와 국방예산의 증가가 재정건전성 악화의 사유가 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사설에서는 “민간의 경제 활력을 살리고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9일자 4면 기사

결국 복지를 포함한 확장적 재정정책만 갖고 위기를 돌파하는 건 한계가 있으며 구조개혁을 병행하라는 조언으로 요약할 수 있는 주장이다. 여기서 ‘구조개혁’이라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과제로 반복 언급해온 ‘4대개혁’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중앙일보 역시 이런 목소리에 의견을 보태고 있다. 중앙일보는 5면 <나랏빚 첫 40%대, 돈 푸는 경기부양 한계 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빠듯한 살림살이 내에서 경기 부양과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자칫 다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지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효율성을 높이자면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6면에 <88%가 빈부차 불만 ‘앵그리 사회’…정부, 불평등 고쳐야>라는 제목의 기사 역시 배치했는데 언뜻 보면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을 해결하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보면 ‘노노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일보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동아시아연구원 등과 함께 진행한 ‘2015년 국가정체성’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노노 갈등이 크다(80.6%)는 응답이 노사 갈등이 크다(77.5%)보다 많았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소득 격차가 너무 크다는 응답은 87.9%에 달했다. 이는 불평등 해소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이 62.8%로 상당히 높았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9일자 6면 기사

불평등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주요한 갈등 요소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투입 여력에는 한계가 있고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수적 관점으로 불평등의 해소를 말하는 것은 결국 정규직 임금 깎고 해고를 자유롭게 해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기성세대로 투입되는 인건비를 축소하고 이를 청년세대에 투입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과 접점을 갖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상 복지를 축소하라는 주장까지 더해지면 결국 노동자와 서민이 살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라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의도가 실린 악순환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언론의 이런 보도 태도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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