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심상치 않다. 안철수 의원이 그간 당내 혁신위의 활동을 비판하면서 당내 갈등에 불이 붙는 모양새다.

안철수 의원은 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 혁신의 본질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낡은 인식, 행태, 문화와 같은 체질을 개혁하는 것”이라면서 “낡은 진보나 당 부패를 청산하고 결별하는 육참골단이 정풍운동이고 야당 바로세우기”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은 그동안 부조리와 윤리 의식 고갈, 폐쇄적 문화, 패권주의 리더십이 당을 지배해왔다”라면서 “혁신위의 활동은 제도 개선만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런 혁신안으론 혁신을 이루기 힘들다”고도 발언했다.

안철수 의원의 이와 같은 주장은 지난 4일 혁신위를 비판하면서 ‘정풍운동’을 언급한 이후 재차 제기된 것이다. 당시 김상곤 혁신위의 위원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통해 일제히 안철수 의원의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이날 안철수 의원의 기자간담회 발언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답’인 셈이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지는 못해 문제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간담회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당 주류는 일단 안철수 의원의 주장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인 걸로 보인다. 같은날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장을 맡고 있는 최재성 의원은 “김한길 전 대표나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혁신안에 대해 ‘그냥 못마땅하다’는 정치적 능란함을 드러냈지만, 안 의원은 이분들과는 결이 다르다”면서 “충정이 읽힌다”고 발언했다. 갑작스런 비판에 반발했던 혁신위원들도 6일의 기자간담회에 대해서는 안철수 의원과 혁신안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비주류 일반과 차기 대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을 분리대응 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도 다소 깔려있는 것으로 읽힌다.

안철수 의원의 비판은 다소 방향이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그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제1야당의 혁신 문제를 다시 여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자신이 생각하는 혁신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고 이에 앞장선다면 김상곤 혁신위의 행보에도 일정 정도 이상의 힘이 실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안철수 의원 역시 그간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하던 처지에서 벗어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시 다져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비주류’의 한 축인 안철수 의원이 이렇게 나오면 분당이니 신당이니를 부르짖고 있는 비주류 일부 인사들의 명분도 상당 부분 축소된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의원과 김상곤 혁신위가 서로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윈-윈’이라는 결론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과연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안철수 의원은 김한길 대표 시절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 수 있도록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행보에서는 미숙한 모습을 거듭 노출해왔다. 최근에는 메르스 사태나 국정원 해킹 의혹 등 본인의 ‘전공분야’에서 조차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 논쟁에 뛰어든 것이 과연 장기적 전망에 근거한 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정치적 타이밍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쯤에서 안철수 의원이 나서는 게 합리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요구조건과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청사진이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제시되었더라면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바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확인된 것 이상의 수확이 없다. 안철수 의원은 ‘클린정치’ 등을 두루뭉술하게 서술했을 뿐 윤후덕 의원의 딸 취업 청탁 의혹이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못했다. 현 체제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듯 안 한 듯, 지도부의 교체를 주장한 듯 안 한 듯한 내용의 주장으로는 여론의 호응을 얻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안철수 의원이 본인이 언급한 ‘정풍운동’이나 인적쇄신에 대한 별다른 계획이나 전망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조직분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비주류 일부 인사들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강도 높은 정치개혁에 포인트를 맞춘 당 혁신의 일익을 자임하고, 이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회복하면서 세력을 끌어 모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추석 전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이 이상적으로 소화될 수 있다면 차기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정세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야권 지지자들의 충성도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곤 혁신위의 활동이 이대로 ‘대중적 울림’을 갖지 못하고 종료되거나 오히려 제1야당의 분열로 이어지는 경우 정치권 주변에서 언급되고 있는 ‘9월 위기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간 이탈을 기정사실화 해온 박주선 의원 등이 추석 전이나 10월 정도에 탈당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신당 창당을 준비한다는 이들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내용이 없는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나 이들이 제1야당의 외부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지지층에게는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호남지역의 지지층에게 이러한 움직임은 짧은 기간에 걸칠지언정 지지 철회의 ‘구실’이 될 만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다.

▲ 4일 오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북도청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전라북도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1야당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을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에 임명해 국정원 해킹 의혹 사태를 맡긴 것에 이어 북한의 지뢰도발 사태가 대두되던 시기에는 박지원 의원을 한반도평화안보특별위원장에 임명해 나름의 통합적 리더십 발휘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직책 모두 사실상 일회적인 것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단결과 통합을 위한 시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필요가 있다.

7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공천룰 등을 포함한 10차 혁신안을 발표한다는 예정이다. 여기에는 공직후보자 경선의 국민 참여 비율을 100%로 하는 내용 등이 담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혁신안과 비교하자면 이제 막 ‘본게임’이 시작되려는 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제1야당이 스스로를 혁신한다는데 당 내외가 절간처럼 조용한 것보다는 박터지는 소리가 나는 게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과정이 결과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총선 승리를 위한 ‘약’이 될 것이냐는 결국 리더십의 문제에 달렸기 때문에 문재인 대표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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