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의 신속한 비준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비준되면 무역과 외국인투자가 활성화되어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침체가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미 FTA를 현재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과연 한미 FTA를 비준하는 것이 현재의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한미 FTA 비준은 오히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더 높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한국경제의 내부적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중국 등 신흥시장의 부상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한 까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자유투자를 통해 한국경제의 또 다른 구조조정을 시도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의 핵심 조항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정치·경제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통합하겠다는 것입니다.

한미 FTA의 핵심에는 서비스시장 개방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법률, 회계, 세무, 정보통신, 금융서비스 등이 포함되는 사업서비스가 중요합니다. 사업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업체를 지원해주는 서비스업입니다. 사업서비스는 초민족기업이 밀집해 있는 금융화된 도시에서 발달한 것인데, 한미 FTA를 통해 이를 한국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한편 한미 FTA로 이미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개방되었던 금융시장의 개방폭도 더 확대될 것입니다.

한미 FTA와 동시에 금융자본에 대한 각종 규제를 없애는 조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이 그것입니다. 한국에는 2000억 달러 안팎의 외환보유고, 국민연금, 기업연금 등 새로운 금융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운용업을 육성해 이러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금융자본도 키우겠다는 것이지요. 노무현 정부가 이미 이러한 계획을 동아시아 금융허브 육성으로 발표했고, 그 핵심에 자통법이 있습니다.

자통법은 지금까지 증권사, 자산운용사, 종금사, 선물회사, 신탁회사 등이 각각 판매하는 금융상품 간 장벽을 허물어 증권사의 덩치와 자산운용능력을 배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또 정부는 소규모 결재 등 은행의 업무까지 증권사에게 허용해서 한국 5대 증권사, 즉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을 대형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1997~98년 위기 이후에 한국은행 독립, 외국인 주식취득 한도 확대,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자회사 설립 허용, 채권시장 개방,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 등을 통해 자본시장을 대부분 개방했습니다. 이러한 전면적 금융 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 자유화 조치에 따라 한국경제는 세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가 되어,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키가 부서진 난파선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미 FTA가 비준되고 자통법이 시행된다면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이 더 진행되고, 금융투기가 확산되어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강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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