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여러 주목할만한 합의가 있었지만 일간지들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른 포인트에 주목했다. 특히 보수언론은 북핵문제 해소 가능성에 포인트를 맞추며 미국의 의구심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10월말에서 11월초 한·중·일 정상회의를 열자고 합의했는데 다수 일간지들이 이 사실을 1면에 보도하고 있다. 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이 이를 반영해 1면 톱기사 제목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가진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 한·중·일 정상회의의 개최 합의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3일자 1면 톱에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다룬 신문들

하지만 조선일보는 <한·중 정상 “6자회담 조속 재개해 북핵 해결”>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에 배치했다. 한겨레도 1면 톱기사 제목을 <한·중 정상 “한반도 긴장 초래하는 모든 행위 반대”>로 붙여 다른 신문들과의 차별점을 드러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외교적으로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일외교에 중심이 쏠려있는 의제다. 한국이 3국 정상회의를 징검다리로 해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유력한 일정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3일자 조선일보와 한겨레 1면

하지만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외교 전망보다 남북관계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여전히 대북관계에 있어서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 제목에 있어서도 미묘한 결의 차이가 느껴진다. 조선일보는 명확하게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겨레는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는 훨씬 포괄적인 중국의 입장을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에는 북한의 도발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 정부의 과도한 군사적 긴장감 조성 등도 포함될 수 있는 외교적 수사라는 것이다.

▲ 한겨레 3일자 사설

신문 보도의 다른 부분과 사설 배치 등을 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가 각 신문의 전체적인 논조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겨레는 이날 <동아시아 평화·협력 기반 넓힌 한-중 정상회담>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합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중 사이의 우호를 넓힌 것에 주목하면서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북한과 미국을 끌어내는 과제가 남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동아시아 나라들 사이에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역사 문제가 큰 불씨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 두 나라 정상의 우호가 동아시아의 갈등이 아닌 우호 증진으로 발전하길 바란다”면서 “이번 회담은 한국 외교가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와 두루 협력하는 다차원적 외교로 나아가는 계기와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3일자 사설

경향신문도 한겨레와 비슷한 톤의 사설을 배치했다. 경향신문은 <동북아 갈등 해소 전망 보여준 한·중 정상회담>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의 도발이 남북관계를 한 번에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이에 대한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성과로 규정하고 중국이 ‘북핵불용’과 의미있는 6자회담 조속 재개를 약속한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경향신문은 한·중·일 협력체제 구축에 대해서도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행이 미국을 경시하고 중국을 중시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미국 일각의 의구심 속에서 이뤄졌고 일본의 속내도 복잡할 수밖에 없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균형외교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 한국일보 3일자 사설

한국일보 역시 <한중 정상회담, 중층적 호혜관계 진입 계기로>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중정상회담을 강행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북문제에 대해 중국이 구체적 조치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6자회담 개최 요구를 합의한 것만으로도 북한엔 압박이 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우리 정부가 이달 미·중 정상회담,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의 모멘텀을 찾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중·일 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해야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안보체제 구축에 선순환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 “한중관계가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 안보지형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중층적인 관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소득”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시각은 다소 신중하게 느껴진다. 조선일보는 이날 2면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과 함께한 오찬장에 박근혜 대통령의 애창곡이 흘렀다는 점 등을 강조해 양국정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고 3면과 4면 기사에서는 중국이 우리 정부와 평화통일에 대해 공감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연계하는 방안 등 여러 측면에서 대북 공조에 나선다고도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회동 내용을 대북문제에 연관된 형태로만 보도한 것이다.

▲ 조선일보 3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밖의 시선을 더 의식해야 할 ‘역대 최상의 한·중 관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중국의 태도를 중립적으로 평가하면서 “중요한 것은 한·중 관계가 당장은 한반도 평화, 길게 보면 남북 통일의 열쇠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10월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에 이르는 외교적 고비를 주도적으로 넘는 한편 남북대화를 비롯한 북한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역량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주장을 내놨다. 문장으로만 보면 위의 신문들과 유사한 관점으로도 보이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에 가깝다.

▲ 중앙일보 3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보도에 있어서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지만 사설에서는 역시 북한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일보는 <중국, 화려한 의전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 측의 화려한 의전을 언급하고 “속 빈 강정 같은 화려한 외교적 수사나 의전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식어가는 가운데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중국이 장담한 ‘지역 평화’를 위한 약속을 지키는지가 중요해졌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경제적 문제에 민감한 언론답게 북한으로 들어가는 석유만 끊어도 중국이 김정은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3일자 사설

같은 맥락에서 동아일보는 실망감을 내비쳤다. 동아일보는 <최고의 환대 속 한중회담, 북핵해법 진전은 없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이라는 정치외교적 부담을 안고 어렵게 방중했는데 시 주석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합의라는 선물만 내놓아 실망스럽다”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과거보다 진전된 메시지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로 기록됨 직하다”고 까지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중국의 ‘세계평화 발전’ 메시지가 미국의 대 중국 포위망에 한국이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내포돼있으며 9·19 공동성명을 거론해 미국과 북한 관계의 정상화 촉구를 시사했고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해야 가능한 문제가 됐는데 어려운 숙제이므로 걱정스럽다고 평가했다. 또, 동아일보는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대해 시 주석의 분명한 지지를 받아내지 못한 것은 아쉽고 안타깝다”면서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시 주석과 특별 오찬을 하는 등 각별한 의전과 예우를 받는다 해도 큰 틀의 지정학적 전략 없이 개인적 친분만으로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방중의 큰 소득일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결국 보수언론들은 중국과의 외교관계 문제를 북한 문제와 미국 의구심 해소라는 틀에서 접근한 것이지만 앞서의 다른 신문들처럼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한 걸음이라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볼 필요도 있다. 언론이 이런 문제를 세세히 조망하지 못하고 친미적 관점에서 협소하게만 바라보는 것은 자칫 문제를 왜곡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보다 중립적인 태도를 갖고 최대한 다양한 측면에서 방중외교의 성과를 분석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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