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박정희는 죽었지만 곧바로 벌어진 12·12 쿠데타로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서울의 봄’은 너무나도 일찍 끝났고 억압의 시대는 더욱 길어졌다. 한국을 입맛대로 통제하기 위한 군부의 움직임은 사회 모든 영역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고 이는 만화도 피해갈 수 없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국가기관의 사전 검열은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는 만화가 본격적으로 사회운동과 만난 시기기도 했다. 학생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했고, 이는 기존 만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사회적이고 시사적인 만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반쪽이’로 유명한 최정현, <한겨레> 만평으로 오랜 시간 사회를 풍자한 박재동 등은 모두 이 시기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사회운동이 점차 힘을 잃으면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들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운동의 방식으로 만화를 택한 이들이 있었지만 예전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나마 최호철의 <태일이>,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 등은 그러한 와중에 출간된 소중한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계속 밑으로 내려가던 사회운동으로써의 만화가 다시 힘을 얻게 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부터였다. 집권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촛불 시위가 전국으로 번질 때 일군의 만화가들은 <한겨레21>을 통해 릴레이로 작품을 연재하였다. 이후 <악? 법이라고!> 등의 릴레이 프로젝트를 통해 조금씩 다시 사회에 목소리를 내던 만화가들은 2010년 용산 참사에 대한 르포만화 <내가 살던 용산>을 신호탄으로 한국 사회를 본격적으로 기획된 작품으로써 다루게 되었다.

<내가 살던 용산>을 만든 작가들은 몇 년 후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 다시 뭉쳐 용산 참사, 그리고 한국 사회 전반의 철거민 문제를 다룬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내가 살던 용산>에 참여한 김수박, 김성희 만화가는 각각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산재문제를 다룬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을 그렸다. 르포작가 이선옥은 장기 투쟁 중에 있는 전국 각지의 현장과 만화가들을 잇는 ‘섬섬 프로젝트’를 기획해 <섬과 섬을 잇다>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최규석은 <송곳>을 통해 자신이 이전에 그린 작품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를 콕 집는 작품을 연재 중이다. 그리고 2015년 8월, <내가 살던 용산>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든 이들이 다시 뭉쳤다.

<내가 살던 용산> 때부터 계속 르포만화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작가가 이번 작품에도 참여했고, 같이 함께하던 유승하 작가는 아쉽게도 이번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계속 독립/대안만화를 그려오던 권용득, 마영신 작가가 새롭게 참여했다. 또한 대중들에게는 만화보다는 일러스트로, 작가 본인보다는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의 아내로 더 알려져 있지만 인상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한수자 작가도 새로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 뭉친 만화가들이 모여 만든 작품집의 이름은 바로 <빨간약>이다.

<매트릭스>의 빨간약처럼 쉽게 보지 못하는 곳을 보여주다

대체 왜 작가들은 작품집의 이름을 ‘빨간약’이라 지었을까. 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지점들은 많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의미는 이 만화의 부제인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대하여’에서 말하듯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지만 정작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약을 건내주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으면 ‘파란약’을, 세계의 진실을 알고 싶으면 ‘빨간약’을 먹으라고 하는 것처럼 만화는 좀처럼 언론이나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지점들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김홍모 작가가 쓴 여는 글에 나와 있듯 심심하면 정부나 집권여당, 또는 보수언론이나 종편에서 ‘종북’이나 ‘빨갱이’로 공격받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작품집에 참여한 여섯 명의 만화가들은 제목에서 풍겨오는 의미처럼 사회에서 너무나도 쉽게 불온한 존재들로 이야기되는 사람들을 각각 조망한다. 만화를 펼치면 맨 먼저 보이는 김성희의 만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서 다루는 대상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다. 작가는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 전후 자신이 가족에서, 그리고 집 밖에서 겪었던 경험들에서 이들을 이끌어낸다. 다만 작품을 이들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국가의 책임을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들을 밝히녀는 시도들이 정부로부터 탄압받고, 다시 몇몇 시민들로부터 ‘종북’이라는 낙인을 받고 잊히는 상황 속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힘써온 이들로 작가는 사제단을 생각한다. 사제단에 대한 작중 비중은 높지 않지만, 오히려 주변의 현실을 통해 작품은 사제단과 같은 사람들이 계속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 김성희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자신이 가정과 사회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은 이들의 필요성을 상기한다.

김수박의 <나의 전교조 선생님>은 작가의 전작 <메이드 인 경상도>를 본 독자들이라면 더욱 인상적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작가는 대구에서 자란 자신의 유년시절을 그리며 어두운 일면들을 조망했었다. 하지만 <나의 전교조 선생님>에서는 조금은 씁쓸했던 학창시절 속에서도 1989년,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 전교조 교사를 만나면서 달라졌던 경험을 그린다. 육성회비와 촌지를 걷는 것에만 집중했던 다른 교사와 달리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는지에 고심한 선생님을 만난 경험과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현 부대변인)으로부터 듣는 전교조의 역사를 교차하는 구성은 지금 현재 정부는 물론 인터넷에서도 쉽게 비난받는 전교조가 한국 교육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마영신이 그린 <일베는 우리 동무>는 <빨간약>에 게재된 여섯 개의 작품 중 가장 독특한 주제와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술자리에서 박근혜, 박정희를 무조건적으로 칭찬하고 그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보는 사람들에 지친 작가는 술자리에서 무심코 일베를 ‘테러’할 마음을 품게 된다. 베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코드에 어울리는 척하는 만화를 그리다가 결말에서 이를 뒤집는 식으로 한방을 먹이는 테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지만 계획은 정작 잘 풀리지 않는다. (작가가 당시 일베를 테러하기 위해 그린 <좀비 마루타>와 <혜리의 경험담>은 검색을 통해서 쉽게 감상할 수 있다.) 오히려 작가는 의도치 않게 일베에 대해서 자신이 이전까지 가져왔던 인식을 다시 재고하게 된다. 과연 일베는 그냥 단순히 나쁜 이들의 모임이고, 그저 일베를 욕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는 작가는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통해 위트 있는 방식으로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시도한다.

조금은 아쉬운 구석이 있어도, 분명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작품

한편 한수자의 <두 할머니>와 김홍모의 <진짜 간첩>은 표면적으로는 ‘통일운동가’와 ‘남파간첩’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약간의 의문을 낳는다. 마치 박건웅이 그린 <어느 혁명가의 삶>처럼 비전향 장기수를 직접 찾아가 그들의 생애와 모진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유를 듣고, 다시 이를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연결시키는 구성은 분명 흥미로운 지점은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굳이 두 번씩이나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전반부의 배치된 만화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어 아쉬움을 낳는다.

이러한 아쉬움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부분은 책의 마지막에 위치한 권용득의 <최선의 선택>이다.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 조작 등 많은 논란이 일었던 18대 대통령 선거를 다루는 이 작품은 대선에 대한 각종 의혹과 문제, 음모론 등을 제기하며 강하게 힘을 주고 들어간다. 분명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정황이나 사건은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이지만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여 지향점이 가장 다른 작품임은 물론 전자개표기에 대한 쟁점을 제기하는 부분, 그리고 대선의 문제를 곧바로 세월호 문제에 전개하는 과정은 거칠게 구성되어 있어 아쉬움을 낳고 만다. 특히 이 작품이 본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아쉬움이 권용득 작가의 작품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감상적인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이 갑자기 드러난 것은 아니다. <내가 살던 용산> 때부터 작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자신이 살면서 겪어왔던 경험에 비추는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그러한 방식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르포 작품의 특성상 취재하는 대상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며,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 다뤘던 <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과 같이 충분한 호흡을 통해 감성적인 접근과 이성적인 분석을 모두 효과적으로 수행한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르포보다는 사회적인 지점들을 다루는 성격이 강하며, 단편 작품집의 특성상 리듬을 고를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 전작들보다 구성적인 면에서 균형이 어그러진 느낌을 들게 만든다.

▲ 김수박의 <나의 전교조 선생님> 중 일부. <빨간약>은 작가들의 전작이었던 <내가 살던 용산>이나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보다는 구성이 성겨진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은 한국 사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콕콕 짚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내가 살던 용산>으로부터 다시 부활한 사회 참여적 성격의 만화, 르포 만화가 한 걸음씩 전진하며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온갖 비난과 낙인에만 휩싸여 제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은 사람들과 사안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살던 용산>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철거의 문제를,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이 전자산업의 산업재해 문제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빨간약>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여금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되어 왔던 사안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심지어는 ‘일베’와 같은 영역에도 말이다.

분명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며 누군가는 이러한 질문에 불쾌함을 느끼고 이 작품 또한 ‘종북’이나 ‘일베충’이라며 낙인을 찍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영신 작가가 작중에서 보였던 모습처럼 조금이라도 <빨간약>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지녀왔던 생각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작품은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수행한 셈이 되지 않을까. <빨간약>이 이러한 계기를 많이 만드는 것은 물론 <빨간약> 이후로도 한국 사회에서 가려져 왔던 부분, 그리고 한국 사회를 넘어 세계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조망하는 작품들이 계속 나오길 바란다.

2015년 8월 15일 발행, 도서출판 보리.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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