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전달과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에는 '전달'과 '해석'은 있지만 비판이 실종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인은 '남의 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차도살인'을 일삼는 비겁한 존재로나 묘사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비판은 실종된다. 제대로 된 비판을 위해 가끔은 언론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공격적으로 드러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도 진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우리의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이라고 외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 주무부처의 장관이 공직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문제다. 당장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 조항과 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 조항을 위반한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간지들은 대개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장 지면 배치 상의 차이를 심각하게 느낄 수 있는 건 한겨레와 조선일보다. 한겨레는 27일자 1면 톱에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를 배치했고 <행자부 장관의 부적절한 ‘총선 개입’ 발언>이라는 사설을 따로 배치했다. 이 사설에서 한겨레는 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에 더해 정종섭 장관의 발언으로 선거 준비 과정에서의 작은 문제나 실수도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가능성이 생겼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한겨레는 정종섭 장관의 발언을 옹호하는 새누리당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정부부처와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해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한겨레 27일자 1면

▲ 조선일보 27일자 5면 (빨간색 강조는 정종섭 장관 관련 기사)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관련 논란을 5면 하단에 네 문장짜리 작은 기사로 다뤘다. 사실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투다. 그러나 다른 보수언론들이 이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태도는 문제적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북 위협 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정치권 ‘도로 구태’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무위원들이 여당 행사에서 ‘총선’을 입에 올린 것부터 잘못됐다. 특히 정 장관은 선거 관리의 주무 장관인데다 내년 총선 출마설까지 나돌아 건배사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면서 “안보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국가적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 ‘여당이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렸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썼다.

중앙일보도 <집권 새누리당과 남은 2년 반의 역사의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종섭 장관의 건배사에 대해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는 길은 이런 부주의한 구호보다 한반도 안보·경제의 미래를 직시하는 역사의식에 있을 것”이라고 짚었고 이은 디지털부문 기자의 ‘취재일기’에서도 새누리당 연찬회 분위기가 느슨히 풀어져 있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위와 같은 언론들의 지적은 모두 일리가 있다. 새누리당 연찬회는 그야말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 속에서 어찌됐든 모종의 합의를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간 욕먹을 일만 계속하다 모처럼 칭찬받을 일을 하였으니 집권여당이 축제분위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남북 간 협상에 대한 국민여론도 긍정적이다. 국회의원들이 모인 자리이니 이것이 총선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정종섭 장관의 생각은 모처럼의 화끈한 발언으로 들뜬 분위기를 맞춰보자는 것이었겠지만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 결국 설화를 부르고야 말았다.

그래도 정종섭 장관의 발언이 새누리당이 해명하는 대로 ‘덕담’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수준의 것인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종섭 장관의 것 이외에도 문제가 되는 국무위원의 발언이 있기 때문이다.

만찬에 앞서 진행된 하반기 경제동향 보고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내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인 3% 중반 정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서 여러 가지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앞의 정종섭 장관의 예와 엮어 보면 심상찮은 흐름이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단지 분위기에 취해서가 아니라 국가기관을 총동원해서 집권여당의 승리를 뒷받침하도록 하려는 의지가 작용한 발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이 정종섭 장관의 발언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결국 경제정책과 직접적 관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전체 경제상황을 객관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해 처방을 내리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수치와 표면적 성과 위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2016년도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마주보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 26일 진행된 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탄력세율을 조정해 개별소비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대형차는 60만원, 중형차는 50만원, 소형차는 30만원 상당 가격이 하락하게 되며 대형가전제품도 2만원에서 9만원까지 가격이 낮아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골프장 이용 비용도 낮아진다. 이는 명백하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소비진작과 이를 통한 경기부양에 목표를 두고 있는 정책이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보면 필요한 물품을 가격이 떨어지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다. 위 품목들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는 실제 많은 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만사를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국가와 기업의 차원에서 다뤄본다면 정부의 이번 조치가 사실상 기업 입장에서만 좋은 종류의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본래 개별소비세는 일반적 소비세인 부가가치세와 별도로 부과되는 것으로 사치성품목, 소비억제 품목, 고급 내구성 소비재, 고급 오락시설 장소 이용 등을 대상으로 하며 부가가치세와 마찬가지로 간접세의 방식으로 징수된다. 즉, 소비자가 내야 하는 세금을 매출 규모에 맞춰 생산자가 납부하는 것이며, 이렇게 대납된 세금은 상품의 가격에 반영된다. 결국 개별소비세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것은 생산자가 납부해야 할 세금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것이며 이 줄어든 만큼의 세금 부담을 그대로 가격에 반영할지 여부는 여전히 생산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부 정책에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은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승용차와 대형가전, 고가가구의 개별소비세를 인하해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과거의 성장 방식을 밀어부치다가 민생 실패로 살림경제가 파탄날까 두렵다”고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현대차와 삼성전자 매출을 위한 자동차와 가전제품 개별 소비세 인하”라면서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줘야 하는데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하니 민생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은 총선을 앞두고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매달리면서 더 중요한 문제들을 외면하는 박근혜 정권의 오늘을 보여준다. 더 발전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기틀을 잡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기적 이익을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는 점만 경쟁적으로 드러낸다. 박근혜 정권은 이런 식으로 정권을 유지해 기업에 좋고 기득권에 도움이 되며 노동자와 서민은 불행하게 만들 뿐인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단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을 따지는 걸 넘어서서 박근혜 정권이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를 재차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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