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되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를 형성했던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0년대 중반 해체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달러를 세계화폐로 인정하면서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교환해줄 것을 약속합니다. 따라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를 믿고 달러를 세계화폐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후 자본주의 세계를 복구하기 위해서 마셜플랜으로 많은 재정지출을 하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의 전쟁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또 산업자본의 국외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져 유럽 등 국외로 진출한 기업이 미국으로 다시 역수출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미국정부는 달러를 금 보유분보다 더 발행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달러가 과잉발행되고 금의 가치가 높아지자 유럽 정부들은 미국에 대해 금태환을 요구했습니다. 금태환을 전제한 고정환율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미국 대통령 닉슨이 1971년 금태환 중지를 선언합니다. 이어서 고정환율제도도 폐지되고 달러를 본위화폐로 하는 변동환율제도가 도입됩니다.
한편 이 당시 영국에서는 유로달러 시장이 형성되어 금융시장이 활성화됩니다.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막아 손발이 묶인 사이에 영국 금융자본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허점을 파고든 것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국제적인 금융자본이 유로달러 시장으로 몰리게 되자 위기를 느낀 각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게 됩니다. 1973년 1차 석유위기로 생성된 오일달러가 여기에 기름을 붓게 됩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금융자본의 이동성이 증대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산업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금융적인 축적방식에 몰두하게 됩니다.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미국에서 개발된 다양한 소비자신용(나중에 신용카드로 발전)이 산업자본의 금융화에 디딤돌이 됩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산업자본으로 알고 있는 제너럴일레트릭(GE)의 경우 2003년 총이윤 중에서 42%가 GE캐피털에 의한 것이고, 제너럴모터스(GM)는 총이윤의 80%를 GM인수회사에서 얻습니다.

즉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후 1970년대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전후 자본주의 질서를 뒤바꿔 놓습니다. 억압되었던 금융이 해방되어 세계각지의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고,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고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되고, 복지제도와 사회 전반이 시장논리와 이윤에 따라 재편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자본주의가 도래할까요? 이를 판가름하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안들을 검토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주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금융거래에 따르는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할 방안입니다. 대표적으로 ‘거래상대방 위험 관리를 위한 정책그룹’(CRMPG)이 재무부에 제출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정책그룹의 의장은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골드만삭스 회장인 제랄드 코리건이고, 주요 멤버들은 세계 12개 은행, 투자은행의 임원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제시한 정책은 다른 금융기업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것이겠지요.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① 금융거래를 표준화하고 공개한다. ② 금융거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③ 금융기관 내 의사결정을 분리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은 사후 평가를 필수화한다. ④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유동성 지급준비금을 적립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은 금융자본 투기를 규제(또는 금지)하다기 보다는, 투기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긴급경제안정화법)도 결국 국내적으로는 계급적인 수탈을,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수탈을 통해서 미국 금융자본을 회생시키겠다는 안입니다. 7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우선 미국 노동자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주되게는 미 재무부의 채권발행을 통해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로 충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의 제국주의적 지위 때문에 유지되는 이러한 달러환류가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그래도 믿을 것은 미국경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0월 13일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를 위해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많은 나라 정상들이 동의해 11월 15일 주요·신흥 20개국(G20)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립니다. 하지만 새로운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립을 낙관할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유럽, 일본, 중국 등이 각각 유로화, 엔화, 위안화의 세계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세계화폐로서의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경제의 지배적인 지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관리할 대안적 세력이 없습니다. 이미 1970년대 중동의 오일머니가 투자처를 분산시키면서 엔과 마르크가 국제적 통화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과 독일은 그러한 지위를 유지할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러한 역할을 마다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수립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각축이 벌어진다고 해도 2차 대전이후 전후 자본주의를 재구조화했던 사건에 비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체적인 세계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안적인 축적전략이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없는 새로운 자본주의 국제경제 질서를 상상하기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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