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득보전직불제. 쌀시장 개방 확대로 소득이 줄어든 농민에게 세금으로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지주들이 가짜농민으로 둔갑해 가로챘다고 해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현 정권이 책임공방을 펴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쟁에만 몰두해 있어 진상파악과 대책마련은 뒷전으로 밀려 자칫 유야무야될 듯하다.

▲ 26일자 한겨레 1면.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선언하고 있다. 농지는 농민만이 소유할 수 있어 원칙적으로 소작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이다. 그런데 역대정권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농지관련법 개악을 되풀이하더니 그 헌법정신이 형해화되어 버렸다.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농지소유 제한을 마구 푼 것이다.

이 나라의 농부는 오랫동안 가난을 멍에로 지고 살아야만 했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고 나면 남는 거라곤 이삭뿐이었다. 1949년 정부 수립 후 소작을 없애려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그 때 소작농지 비율이 40.1%, 소작농 비율이 63.8%였다. 농지개혁이 마무리된 1968년 그 비율이 각각 17.2%, 33.5%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40여년이 흘러 2006년 소작농지 비율이 43%, 소작농 비율이 62.5%로 높아졌다. 농지개혁 이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적지 않게 농지를 자식에게 상속하거나 자식 대학 보내느라 팔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도시의 투기자금이 농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처럼 농민의 60% 이상이 남의 땅을 부쳐서 먹고 사는 소작인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 까닭에 도농간의 소득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양극화의 사회로 치닫는다.

공직자 인사파동 때마다 불법적 농지소유가 도마에 올라 여론의 질타를 받곤 했다. 역대정권은 하나같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들을 감싸려고 꼼수를 부렸다. 그 짓이 워낙 잣다보니 국민들도 둔감해져 으레 있는 일쯤으로 여긴다. 천박한 정치권력이 앞장서 농지법을 주물렀으니 법망이 숭숭 뚫렸다.

농지법은 원래 통작(通作)거리란 것을 두었다. 논밭과 가까이 살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까 경작지와 주거지 사이의 거리를 제한했던 것이다. 그것을 없애버렸다. 그러곤 동네 이장이나 통장이 도장만 찍으면 실경작자로 증명되어 직불금을 탈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땅을 팔 때는 경작증명이 되어 양도소득세를 감면받는다. 그 까닭에 농민에게 직불금을 넘겨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 제도가 가짜농민을 양산하고 세금도둑을 만든 꼴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회 국정조사에 비협조적인 것같다. 감사원, 행정안전부, 농림수산식품부, 건강보험공단이 핑계를 대며 시일을 끄는 모습이다. 이 문제는 실무적 내용이 많아 행정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실태도 진상도 파악하기 어렵다. 전임 정권이 저지른 일인데 속말로 왜 똥바가지를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칫 덮으려고 하다가는 부자정권이란 낙인을 벗지 못한다.

쌀 직불금 수령자가 2005년 103만3000명, 2006년 105만명, 2007년 107만7000명이고 2008년 신청자가 109만9000명이다. 대부분 중복수령자이니 조사대상은 110만명 이하로 추정된다. 부재지주를 추리면 실제조사대상은 40%선으로 줄어든다. 지난 3년간 평균수령액은 1조2165억원이나 된다. 이 중에 상당액을 도둑맞았을 테니 어마어마하다. 국민의 혈세가 말이다. 은폐한다면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는다.

경자무전(耕者無田)의 농업정책이 농업을 망쳤다. 정부 전산망을 열어 행정안전부는 전국의 농지보유실태를, 감사원은 수령진상을 밝혀라. 벌써 지주들이 소작을 거둬들일 움직임을 보여 농촌에는 민심이 흉흉하다. 제도개선도 서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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