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회’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포항 출신 5급 이상 공무원들의 모임이란다. 현재 최고로 잘 나가는 향우회 아닐까 싶다. <신동아> 51권에 따르면 ‘新PK’(포항·고려대 출신)가 이명박 정권 파워 인맥 10개 그룹 가운데 하나란다. 말하자면, 포항 출신이면 ‘진골’, 포항에 고려대 출신이면 ‘성골’이란 얘기다. 포항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 들어 포항 출신들이 내각과 청와대 주요 요직에 많이 진출해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들이 맡은 일에서 원만한 역할을 해줘야 대통령에게 고향 출신 인사를 중용한다는 세간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경북일보> 2008년 3월11일)

▲ 27일자 경향신문 8면.
‘세간의 부담’, ‘원만한 역할’이란 애매모호함은 과연 무얼 감추고 있는 걸까?

어제(26일) ‘영포회’ 모임이 있었다. 발언들이 가관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풍경의 낯 뜨거움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이 전했다. 물론, 온도 차이는 분명하다. 그런데 묘하게 기사 제목은 유사하다. “MB 정부 들어 경북 동해안 물 만나”(조선일보), “이렇게 물 좋을 때 포항 발전시켜야”(경향신문)이다. 어떠신가? 원만한 역할에 대한 감이 좀 오시는가?

어제 모임의 구체적 발언을 소개하기에 앞서, 찬찬히 짚어보자. 우선, 어제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포회’ 사람들의 영원한 좌장쯤 될 이상득 의원의 지난 발언부터 보자. 수도권 규제 완화 입장에 대한 지방의 반발을 묻는 질문에 이상득 의원은 딱 잘라 말했다.

“(수도권)규제 완화에 찬성한다. 우리 포항에는 불만이 없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럴까? 대답을 잠시 미뤄두고 어제 ‘영포회’의 발언들을 살펴보자. 포항 구룡포 출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인사말이 이랬다고 한다.

“오늘 이 자리는 즐거운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도자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중략)…우리의 영도자 이 대통령을 위해 힘껏 지원하는 열정을 가슴에 새기자.”

다음은 포항 북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이병석(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과 이 전 부의장의 후광으로 동해안 시대를 열기 위한 예산안의 윤곽이 드러났다...(중략)...내년부터 포항과 동해안이 예산으로 혈맥이 뚫릴 것이다…(중략)…예산을 다루면서 아무리 대통령이 어렵고 정권이 어려워도 성공을 위한 헌신을 바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 북구에는 현대 아이파크, 풍림 아이원, 하우스토리, 대림 e-편한세상 등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고층 아파트를 쌓아올리고 있단다. 어림잡아 5000여 세대에 달하는 규모라고 하니 기쁘기도 하겠다. 이 뿐만 아니라 ‘타워 브리지’ 건설, ‘포항종합박물관’ 건립, ‘근로자 종합복지회관’ 건립, ‘포항 산업진흥원’ 건립 등의 계획이 포항 남북을 가리지 않고 계획 중이니 어찌 피가 돌지 않겠는가?

이 밖에도 주옥같은 발언들이 계속됐다고 한다.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
“속된 말로 경북 동해안이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좀 떨어지고 있다.”(포항 출신의 강석호 의원, 지역구는 포항 옆 동네인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한 마디로, 잘들 놀고 계시다 아니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지난 17일 <프레시안>은 불만 없다는 포항의 진실에 관한 추적 기사를 내놓은 바 있다. 기사의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대통령님, 포항이 와 이럽니꺼?” 기사가 전하는 진실은 이러하다. ‘경북지역 미분양 아파트 1만5000여 가구의 40%가 포항에 묶여 있다’고 한다. ‘내년 전국 주요도로 11건 공사비 7조292억 원 가운데 40.2%에 달하는 2조8235억 원이 포항에 투입 된다’고 한다.

하지만 분양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다고 한다. 미분양만 6000여 가구라고 한다. 아파트 평당 분양가가 600만~800만 원 정도인데 지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이미 부도가 난 곳도 있고, 몇몇 건설사는 부도설이 돈다고 한다. 아파트 건설자재 납품업체들은 여전히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건설사 부도-철근·레미콘·섀시·내화물 등 관련 납품업체 부도-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최악의 고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 27일자 한겨레 10면.
‘세간의 부담’과 ‘원만한 역할’이 무엇인지 이쯤에서 드러난다. 다른 지역과 포항은 지금 차원이 다르다. 오늘(11/27) 한겨레 사회면에 실린 ‘지자체 서울사무소 ‘뛰어야 산다’’를 보면 확연하다. 다른 지자체들은 “독립운동 하듯 죽을 각오로” 예산을 따기 위해 뛴단다. 포항은 예산이 쭉쭉 내려오는데 말이다. 이러니 어찌 ‘부담’스러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어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기업의 방송시장 진입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킨 날이었다. YTN 블랙 투쟁을 시청자 사과하라는 결정도 있었다. 어제 ‘영포회’에 참여한 최시중 위원장의 건배사가 의미심장하다. 최 위원장이 “이대로”를 선창하면, “나가자”는 구호로 답했다고 한다. “이대로, 나가자.” 최 위원장의 심정이 그러한가? 얼씨구, 지화자, 좋은가? ‘영포회’는 ‘영,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일까.

오늘밤에는 부산의 서울지역 출향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산시장의 시정간담회, 이름하여 ‘부산갈매기모임’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다고 한다. 전통의 ‘오리지날PK’ 4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전해지는 가운데, 부산 출신인 구본홍 YTN 사장의 참석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지금 ‘사장실 사수 농성’ 중이다. 그도 오늘 참석해서 “이대로 나가자”를 외칠까?

남원에 사는 이모 도령이 읊었다는 시를 이들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영포회의 아름다운 술은 일천 지자체의 피요,
포항의 아름다운 아파트는 다른 지방의 고혈이어라.
YTN 눈물 떨어질대 포항에 예산 떨어지고
건배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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