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어른들은 ‘결혼’을 두고 이런 말을 자주한다. 누구나 행복한 결혼을 꿈꾸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4일 <경향신문>에 ‘알려왔습니다’가 실렸다. 국가정보원에서 지난 11월21일 경향신문 기사 중 ‘국정원 추진 비밀보호법 및 가상 시나리오’ 보도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왜 국정원의 ‘알려왔습니다’ 내용을 보고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통속적인 문구가 떠올랐을까.

▲ 21일자 경향신문 8면.
경향신문의 ‘국정원 추진 비밀보호법 및 가상 시나리오’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2020년 한중FTA 협상과정을 비밀로 지정해 공식발표 이외는 취재통로가 막혀 있어 관련 기사를 쓰던 ㄱ기자는 골머리를 썩는 도중 휴대전화로 시민단체 ㄴ씨의 전화를 받는다. 이 자리에서 ㄱ기자는 소신 있는 공무원으로부터 ㄴ이 받은 한·중FTA와 관련된 3급 비밀의 문건을 건네받고 사무실로 돌아왔으나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 전화는 국정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고 ㄱ기자의 휴대폰은 국정원으로부터 감청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가상시나리오를 통해 경향신문은 국정원이 추진하는 비밀보호법으로 인해 언론의 정보접근권이 훼손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24일 경향신문 2면.
그러나 이에 대해 국정원에서는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이뤄진 비밀 수집·누설은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비밀보호법이 언론취재를 위축시킨다는 내용은 잘못됐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 ‘알려왔습니다’를 보고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이 아닌 MBC 김세의 기자이다. MBC 김세의 기자는 지난해 2월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군사시설 내 유흥주점 운영 실태를 고발해 군사법원에서 1심에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항소심 판결에서도 김 기자의 유죄를 인정했다. ‘국민의 알권리’, ‘공공의 이익’은 그들에게는 변명으로만 보였나 보다.

김 기자의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국정원이 반론한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 수집과 누설에 대해 처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밀보호법과 무관하게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 자기네들이 낸 제정 법률안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고만 한다면 끝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이 떠올랐나 보다. 국정원이 말하는 것은 이상이다. 그러나 현재 처벌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국정원의 ‘알려왔습니다’가 한순간 우스워졌다.

그렇다면 현실과 이상은 서로 조율되지 못하는 극과 극의 성질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잘은 모르겠으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의 이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그것의 합의지점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국정원이 만약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면 현실에 대한 자기발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김세의 사건을 두고 성명 하나라도 냈어야 하지 않을까. 경향신문이 기사에 반론을 제기하기 전에 말이다.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이뤄진 비밀 수집·누설은 처벌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려 했다면 말이다.

‘표리부동’, ‘감탄고토’, ‘구밀복검’, '면종복배‘, ’면종후언‘, ’소리장도‘, ’소중유검‘, ’외친내소’…. 이 모든 것이 국정원이 김세의 사건에 입장을 발표하기 어렵다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사자성어들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이뤄진 비밀 수집·누설은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국정원의 말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이다. 정말 그렇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많이 붙는 문장이다. 특히나 ‘국민의 알권리’나 ‘개인의 정보보호’보다 국가의 존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정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 지난해 2월 MBC <뉴스데스크> ‘계룡대에 접대부’ 보도에서 군사시설 내 유흥주점 운영실태를 고발한 김세의 기자에게 군사법원이 2심에서도 유죄를 판결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사자성어가 이토록 많은 것도 놀랍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우리나라는 대대로 겉과 속이 다름을 큰 부끄러움으로 여겼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국정원의 이번 반론제기는 두 번째에 딱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국정원이 첫번째에 해당하고 싶다면 행동으로 보여야만 할 것이다. 국정원이 김세의 기자가 무죄라는 입장이라도 밝힌다면 난 기꺼이 반론을 믿어주겠다.

현실과 이상이 다른 ‘오늘’과 겉과 속이 다른 ‘국정원’의 거리가 좁혀지기는 아마도 힘들 듯 하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전제로 이상을 설계하라. 겉과 속이 같고 싶다면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경향신문 기사에 태클을 걸어온 국정원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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