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은 SBS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다. 핫한 연예인이 매주 출연해 달린다. '빅뱅'이 출연을 했을 때의 촬영 장소는 오토테마파크 ‘인제스피디움’이었다. 연예인이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 컨셉이다보니 촬영지는 금방 화제가 된다. 포털에서 인제스피디움을 검색하면 ‘빅뱅 런닝맨 촬영지’가 같이 검색될 정도다. 인제스피디움 페이스북에는 “빅뱅&런닝맨과 함께한 인제스피디움 ‘타임트랙레이스. 모두 보셨나요?? 인제스피디움과 황소계곡이 어우러진 런닝맨 한판승부!”라는 홍보글이 올라와 있다.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가장 핫한 연예인이 방문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인제스피디움은 SBS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태영건설의 소유다.

▲ SBS '런닝맨' 빅뱅 출연편은 인제스피디움에서 촬영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채수현)는 4일 <누가 또 SBS를 태영 홍보 방송으로 만들려는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인제스피디움’ 홍보 프로그램들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SBS본부는 “SBS가 태영건설 소유의 인제스피디움매니지먼트(이하 인제스피디움) 살리기에 총동원되고 있다”며 “지난 달, 회사는 인제스피디움 숙박권(SBS 500장, A&T 100장) 9천만 원어치를 쓸데없이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인제스피디움 돈벌이에 기여할 프로그램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5월 이후 대량으로 시기 집중하여 편성·제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관련기사 : SBS, 태영건설 적자 메우려 인제스피디움 숙박권 구입 ‘논란’)

SBS노동조합 “태영건설, 인제스피디움 돈벌이 위해 SBS 프로그램 사유화”

SBS본부는 인제스피디움이 “태영건설 소유로 강원도 인제에 2013년에 개장한 자동차 경주장”으로 “태영건설이 수백억 원의 운영자금을 지원했지만 운영사의 법정소송 등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웠고 현재 부채비율 500%를 넘겨 자본잠식 상태”라고 지적했다. SBS본부는 사측이 SBS 프로그램을 이용해 부도 위기에 빠진 인제스피디움을 회생시킬 꼼수를 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논란이 된 인제스피디움은 국제자동차경주 시설을 중심으로 숙박시설, 전시·체험시설 등이 포함된 복합 자동차 전문 테마파크이다. 태영건설과 포스코ICT, ㈜KRF 등이 사업비 1863억 원을 투자해 2013년 5월 개장했으나 계속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태영건설은 인제스피디움에 총180억 원의 운영자금을 차입했는데, 이는 인제스피디움의 –28억2600만원(2014년 말 기준)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란 것이 SBS 안팎의 설명이다. 인제스피디움은 올해 초까지 운영권 갈등을 빚다 지난 5월 말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탁윤태 SBS미디어넷 전 사업실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태영건설은 인제스피디움 자산관리를 위해 설립된 회사, 인제 스피디움매니지먼트를 100% 소유하고 있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SBS의 소유구조이다. 태영건설은 SBS미디어홀딩스 지분의 61.22%를 소유하고 있고, SBS미디어홀딩스는 SBS 지분의 34.72%를 보유한 지주회사다. SBS미디어홀딩스 윤석민 부회장은 태영건설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윤세영 회장은 지난 3월 태영건설 등기이사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윤세영 명예회장, ‘회장’으로 SBS 미디어그룹 복귀) 결국, SBS <런닝맨> ‘빅뱅 편’의 인제스피디움 촬영은 태영건설 계열사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설령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SBS를 사유화했다’는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SBS <모닝와이드>는 인제스피디움에 ‘광고효과’를 줬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는 지난달 5월 7일 방영된 SBS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 코너에서 인제스피디움을 과도하게 노출해 광고효과를 줬다는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 제재를 내렸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6조(광고효과) “방송은 상품·서비스․기업·영업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SBS에서 인제스피디움이 노출되는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더 많이 편성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 공개방송이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다. 오는 10일 SBS에 신규프로그램 <더 랠리스트>가 편성될 예정이다.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 특집 공개방송이 7일 인제스피디움에서 개최된다. 이 밖에도 SBS는 신규 프로그램으로 <더 랠리스트>, <더 슈퍼 레이서>를 편성할 예정이다. <더 랠리스트>(진행자 배성재·유리)는 “한국을 대표할 랠리 드라이버 선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10일 토요일 밤12시 15분에 편성될 예정이다. <더 슈퍼 레이서>(가칭)는 10월 자동차 경주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는 과정을 그리는 SBS 자체제작 프로그램으로 주말 예능 프라임시간대에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연달아 자동차 경주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논란을 빚은 류시원 씨가 출연이 결정되어 내부 구성원들의 시선도 따갑다는 것이 SBS본부의 설명이다.

SBS 신규 편성프로그램들은 이처럼 ‘레이서’를 주제로 편성되면서, 인제스피디움은 5월부터 7~8개의 SBS 프로그램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된다. 이에 대해 SBS본부는 “회사는 지난 달 9일, 세계자동차경주대회(WRC) 유치를 위해 강원도와 업무협약까지 체결했다”며 “다양한 홍보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겠다고 함으로써 인제스피디움을 향한 SBS의 지원 프로그램은 더 늘어날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소유·경영 분리 위반” VS “프로그램 경쟁력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SBS본부 채수현 본부장은 “SBS의 ‘금전’적 손해 유무로 따질 일이 아니다”라며 “SBS의 특수관계자이자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태영건설이 지상파를 이용해 자본잠식 상태의 계열사를 살려보겠다고 나선 ‘사적이용’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채수현 본부장은 “프로그램이 제작자의 의사·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방송법> 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하면서 어떠한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게 돼 있는데 대주주가 계속 위에서 프로그램을 내리 꽂고 있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무엇보다 <방송법>은 시청자의 이익에 우선해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개연성을 걱정해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소유지분을 제한한다. 그렇지만 최근 SBS와 대주주의 행태는 시청자보다 지배기업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위법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10년 전 노사합의로 ‘SBS는 상업자본과 정치권력에서 독립한다’는 대의를 배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인제스피디움 측은 SBS <런닝맨> '빅뱅 출연편'을 통해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

채수현 본부장은 “SBS는 이제라도 인제스피디움을 띄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모두 폐기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홍보의 극치를 이루는 <더 슈퍼 레이서>(가칭)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그리고 윤세영 회장이 선언한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을 재차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SBS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SBS는 지난달 27일에 열린 편성위원회에서 “인제스피디움에서 좋은 조건으로 (장소협찬 등을)제안할 경우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라며 “회사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인제까지)가려는 생각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런닝맨>의 인제스피디움 촬영과 관련해서도 “프로그램 구성에 필요한 장소를 풀로 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고 빅뱅의 이미지와 어울려 좋은 조건이라 판단해 해당 장소를 사용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뜨거운 <더 슈퍼 레이서>에 대해서도 SBS는 “장소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은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장소가 있어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타사는 제작비나 대관 스케줄 때문에라도 해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진다.

SBS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달 말 열린 편성위원회를 사장(이웅모)이 주재했다”면서 “그 자리에서 노조의 우려를 전해듣고 사장은 ‘그 무엇보다 트렌드를 반영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최우선으로 생각을 하다보니 <더 슈퍼 레이서>(가칭) 등을 기획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인제스피디움에서 제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제작이 우선적으로 고려돼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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