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음악웹진 <보다>의 김학선 편집장이 미디어스에 매주 <소리 나는 리뷰> 연재를 시작한다. 한 주는 최근 1달 내 발매된 국내외 새 음반 가운데 ‘놓치면 아쉬울’ 작품을 소개하는 단평을, 한 주는 ‘음악’을 소재로 한 칼럼 및 뮤지션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 국내 음반

블랙 메디신 / <Irreversible> (2015. 7. 28.)

한국 최초의 데스 메탈 밴드라 불리던 스컨드렐이 있었다. 그리고 1996년 첫 앨범을 발표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던 데스 메탈 밴드 사두가 있었다. 두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이명희와 또 다른 데스 메탈 밴드 시드에서 가공할 보컬을 들려줬던 김창유가 중심이 돼 결성한 밴드가 블랙 메디신이다. 데스 메탈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이들은 오히려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헤비니스 음악을 하는 이들에겐 근원과도 같은 블랙 사바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자리했다. 1970년 첫 앨범을 낸 블랙 사바스가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에 끼친 영향력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이어지고 있다. 보도자료에 쓰여 있는 ‘느릿함, 블루지함, 암울함, 사악함’ 같은 것들이다.

블랙 메디신이 2005년에 처음 결성했으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10년 동안 만들어낸 이 앨범에는 앞서 말한 형용사들의 극대화가 담겨 있다. 더할 수 없이 느릿하고 블루지하고 암울하며 사악하다. 이른바 둠/스토너/슬럿지 메탈로 분류될 음악은 그 방면의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려냈다. 낮고 어둡고 느리게 진창(sludge)에 빠져드는 것 같은 음악에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강조한 사운드 프로덕션은 훌륭하고, 보컬 김창유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날이 서있다. ‘Sludge Song’ 같은 노래는 이 모두가 어우러진 최상의 결과물이다. 압도적인 사운드. ‘올해의 앨범’급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썬파워> (2015. 7. 7.)

내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음악은 이들의 노래 제목처럼 '샤도우댄스' 같은 것이다. 적당한 나른함과 적당한 그루브. 이 두 가지 요소는 구남을 인디 씬에서 가장 색깔 있고 가장 힙하게 만들어줬다. <우리는 깨끗하다>(2007)와 <우정모텔>(2011), 범상치 않은 제목의 두 앨범에 이어 역시 4년 주기로 만들어낸 <썬파워>는 외형적으로 큰 변화가 있다.

전까지 조웅(보컬, 기타)과 임병학(베이스) 두 명의 멤버가 음악을 만들어왔다면 이번 앨범부턴 공연 때 함께 해왔던 김나언(키보드)과 박태식(드럼)을 정식 멤버로 받아들였다. 이제는 구남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김나언의 미소는 새 앨범의 제목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데, 이전의 앨범들이 의뭉스럽고 능청스러웠다면 <썬파워>는 좀 더 밝고 건강한 기운이 넘친다. 좀 더 경쾌해진 사운드 안에서 구남의 매력은 여전히 활어처럼 팔팔 뛴다. 춤을 추게 하고 몽상하게 하고 여유롭게 한다. 이 밝고 건강한 태양의 에너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

슈가도넛 / <Polyverse> (2015. 7. 21.)

슈가도넛의 1집에 실린 ‘몰라’와 ‘몇 해 지나’를 듣는다. 오랜만에 들어도 좋은 노래들이다. 슈가도넛은 이처럼 좋은 팝송을 쓸 줄 아는 밴드였다. 처음 등장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슈가도넛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활동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7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앨범 <Polyverse>에서도 슈가도넛만의 색깔은 여전하다. 이 점이 지금 음악을 듣는 젊은 애호가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이들이 첫 앨범을 낸 게 벌써 13년 전이고, 지금의 음악 역시 처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좋은 멜로디를 쓰고 좋은 노래를 만들고 있다. 뜨겁고 장난기 넘치던 젊음에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보여 더 찡해지는 부분도 있다. 조금 더 철이 든 청춘의 사운드.

유근호 / <무지개가 뜨기 전에> (2015. 7. 17.)

유근호의 첫 앨범 <Walk Alone>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좋은 앨범이었다. 별다른 홍보 없이 그 정도의 입소문을 탔던 건 온전한 노래의 힘 때문이었다. 그의 작곡 능력은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신인 음악가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그의 노래는 유재하와는 또 다른 서정성을 갖고 있었다. 새로운 EP <무지개가 뜨기 전에>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최근 소속사를 옮긴 그는 좀 더 웰-메이드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정갈한 음악을 들려준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게 청량감이 돋보이고, 포크 팝과 모던 록의 경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유근호란 이름을 각인시켰던 작곡력은 여전히 그 감각을 잃지 않아 ‘무지개가 뜨기 전에’나 ‘사막탈출’, ‘둘이서’ 같은 노래들은 반복해 듣게 하는 힘이 있다. 애써 혼자 다 하려 하지 않고, 빅베이비드라이버나 이규호를 비롯한 편곡자들의 힘을 빌린 건 좋은 선택이었다.

Various Artists / <사랑가> (2015. 7. 29.)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춘향가를 몰라도 대중에겐 친숙한 대목이다. <사랑가>는 바로 이 익숙한 대목을 중심으로 한 춘향가의 ‘자진사랑가’를 동기 삼아 만든 음반이다. 김반장, 고준석, 호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킹스턴 루디스카, 신세하까지, 각기 다른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여섯의 아티스트가 모였다. 지금껏 들려줘온 음악 스타일이 다르고 이 음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춘향가의 ‘사랑가’가 노래의 중심에 있는 것은 같다. 프로듀서를 맡은 김반장의 총괄 아래 여섯의 아티스트는 리듬, 박자, 가사 등 ‘사랑가’ 원곡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지키며 각각의 색깔을 담은 새로운 ‘사랑가’를 만들어냈다.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은 ‘전통’이란 이름 아래 지금껏 숱하게 ‘저질러온’ 어설픈 국악과의 접목을 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철저히 국악의 것은 국악에게, 대중음악의 것은 대중음악에게 맡겼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국악인인 고준석의 소리를 듣는 한편으로 호란의 매혹적인 유혹의 노래를,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을 빌린 이몽룡의 펑키한 외침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아티스트 본연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전통의 맥을 놓지 않는 탁월한 재해석이 잇달아 펼쳐진다. 의미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컴필레이션이다.

* 국외 음반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 / <Communion> (2015. 7. 10.)

영국의 BBC는 매해 주목할 만한 신인 음악가를 선별해 ‘BBC Sound Of’를 발표한다. 여기에 오른 명단은 꽤 공신력과 선견지명이 있어 해마다 명단이 공개되면 많은 관심이 쏠리곤 했다. 아델, 미카, 샘 스미스 등이 ‘BBC Sound Of’의 선택을 받았던 음악가들이다. 이어스 앤 이어스 역시 ‘BBC Sound Of 2015’의 최종 승자가 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국 런던 출신인 이 트리오는 일렉트로닉과 소울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점차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다. 신스팝과 하우스 같은 일렉트로닉의 요소를 음악의 주된 재료로 삼고 여기에 소울풀한 보컬을 얹는 식이다. 각 곡마다 고른 완성도를 지니고 있고 또 각기 다른 정서와 분위기를 갖고 있어 계기만 있다면 더 많은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팝 시장에서 잘 통하는 코드들을 고르게 담고 있어 한국에서의 반응이 더 궁금한 앨범이기도 하다. 지금의 유행을 담았으되 결코 얕지 않다.

김학선 /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위원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K-POP,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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