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바늘을 보고 있으면 오늘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11시 59분이 지나고 다시 12시로 회귀하는 모습은 때론 답답하게 여겨지기까지 하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여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 소심한 일탈을 꿈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TV가 아닌가 싶다. 달리면 달릴수록 빠르게 돌아가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쁨에 지쳐 있을 때 나타나준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삼시세끼'였다.

'삼시세끼'는 강원도 정선의 한 시골 마을에서 유기농 라이프를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손님들이 매번 오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서진과 옥택연의 슬로우 라이프 이야기이고, 이번 편에는 김광규도 합류했다. 그런데 시즌2를 시작한 '삼시세끼'를 보며 조금은 아쉬운 면이 보였다. 그건 점차 슬로우 라이프가 사라지고 게스트발 토크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 집 손님은 누구?

'삼시세끼'에는 원래 게스트가 중요하다. 게스트와의 케미가 '삼시세끼'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의 '삼시세끼'를 보면 이렇게 작위적이지는 않았다. 정말 친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유는 이서진이나 옥택연과 관련 있었던 사람들이 게스트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2에서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은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나오고 있다. 박신혜, 지성, 보아와 김하늘 등 시즌2의 게스트들을 보면 서로 서먹한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우리 집에 누가 온다면 보통은 잘 아는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고, 거기에서 기대감이나 설렘이 생기게 된다. 만약 생판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오게 된다면 그건 그냥 집이 아니라 팬션이 아닐까. 팬션에 손님으로 왔다가 주인집과 저녁에 모여서 고기 구워 먹는 정도의 유대감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게스트들에 대한 오해도 생긴다. '삼시세끼'에 출연할 때는 각기 컨셉을 준비해온다. 하지만 그것은 가식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보통 예능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하지만 '삼시세끼' 정선편 시즌2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게스트가 있으니 바로 유해진이었다. 유해진은 어촌편에 출연했던 멤버이지만, 그의 행동은 '삼시세끼'의 취지에 가장 부합했다. 마치 만재도에서 놀러온 친구 같아 보였고, 짜여진 프레임에서 자꾸 벗어나 있었다. 보아는 유해진이 잡초를 뽑지 않는다고 나중에 모니터링으로 유해진의 행동을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실은 '삼시세끼'에서 시청자들이 원했던 모습은 유해진 같은 모습이었다. '삼시세끼'에서 무언가 열심히 하는 모습은 도시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아서 오히려 답답하다. 반면 유해진처럼 슬렁슬렁 걸어 다니며 카메라 앵글을 벗어나서 카메라가 허겁지겁 따라가는 모습이나 유유자적하며 제작진이 만들어둔 울타리 안에 갇힌 그들을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숨통을 틔워준다.

퇴색한 유기농 라이프

김하늘 편부터 사라지긴 했지만 장보기는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시세끼'가 처음부터 표방한 것은 유기농 라이프였다. 라면스프도 불허하는 곳이었는데 보아 때는 갑자기 소풍을 간다는 핑계로 온갖 재료들을 다 사왔다. 인스턴트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삼시세끼'가 처음부터 자신 있게 내걸었던 슬로건이 유기농 라이프였고, 그간 그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놓고 스스로 그 기준을 풀어버리니 ‘이건 뭐지?’하는 느낌이었다.

수수를 베고 돼지고기를 얻어먹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너무나 풍족한 텃밭이 있음에도 그냥 사서 먹는다. 돈까스 소스 듬뿍 뿌리고 케첩 뿌려서 만든 소스에 사온 등갈비를 그냥 익혀서 양념 발라 먹는다. 패밀리 레스토랑 비주얼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냥 패밀리 레스토랑 같았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산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이 재미있다. 칡이나 약초들을 가져다가 각종 요리를 해먹으니 말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삼시세끼'에서 충분이 제약된 공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러 소재들이 있을 텐데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그냥 장봐서 해먹겠다는 것은, 그냥 유기농 라이프는 포기하고 게스트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처음에 자신들이 내세웠던 기준들은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수를 잘라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뭔가를 제공해주면 옥수수밭 잡초를 얼마큼 뽑는 등 조건을 제시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잡초는 끝없이 나오니 말이다.

사라진 대결구도

나PD의 장기 중 하나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대결구도 구축이었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대결구도가 되면 자연스럽게 시청자는 출연진에 시선이 쏠리게 되어 있고, 균형을 잡기 위해 출연진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제작진은 악역을 맡음으로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작진이 출연진을 오히려 도와주는 서포터즈 같은 느낌이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도와주고, 김하늘을 위한 이벤트도 나PD가 주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잡초도 나PD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다.

유일하게 제작진과 날을 세웠던 사람은 유해진이었다. 제작진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벗어남으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냇가에 가서 쓰레기를 치우고, 동네 마실을 다니고, 어르신들이 주는 약주 한 잔 걸치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간의 '삼시세끼'가 참 방송을 위한 방송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다 방송이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방송이 있고, 힘을 뺀 방송이 있다. 스포츠든 음악이든 힘이 들어가면 될 것도 안 된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삼시세끼'는 처음 어깨에 힘이 빠진 프로그램이었다. ‘꽃보다 할배’에서 우연히 나온 이야기를 진짜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감이 커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그냥 해 볼까하고 만들었는데, 시청률이 터지자 이제는 시청률의 부담감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어깨에 힘을 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PD가 잘하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말이다. 대결 구도를 통해서 다시 긴장감을 높이고 게스트보다는 유기농 라이프에 초점을 맞추고, 더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서 프로그램의 컨셉에 날을 더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해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지금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론 김광규가 유일하다. 이서진과 옥택연의 캐릭터는 정해져 있으니 야관문으로 터트린 김광규를 좀 더 자유분방하게 놔두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삼시세끼'를 더욱 삼시세끼‘답게’ 만드는 길일 듯하다.

'삼시세끼'가 바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그런 느낌을 받게 프로그램이 되길 기대해본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tvexciting.com 운영하고 있다. 바보상자 TV 속에서 창조적 가치를 찾아내고 픈 욕심이 있다. TV의 가치를 찾아라! TV익사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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