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고 입대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군대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입대를 앞둔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기대했을 법한 일이 무려 6천여 명에게 벌어졌다. 지난 30일 병무청은 고등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지닌 현역입영대상자들에 대한 징집결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필요인원에 비해 매년 2만 3천여 명 정도의 인력이 남아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국방부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갈 젊은이들이 줄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매년 600~800명의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으면서도 현역자원부족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군 당국의 입장이었다. 대체복무제가 생기면 대체복무를 선택하려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한해 800명 정도지만 국방부는 현역자원이 부족하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2만 명이나 남아돌고 있었다니.

현역 입대 대신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일을 하게 된 6천여 명도 병무청의 이번 결정을 환영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보충역 판정을 받게 된 까닭을 설명하려면 ‘학력 미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현역자원이 모자란다며 전과자를 양산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현역자원이 남아돈다며 학력 수준으로 현역입영대상자를 잘라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 현역병 입영 행사에 참석한 입영 장병들과 가족들의 모습. 현역 판정을 받고 입영을 기다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입영이 취소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해봤을 그 상상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다. (사진=연합뉴스)

근거 없이 관성적으로 유지돼온 병력규모

이러한 촌극이 가능한 이유는 ‘과학적 근거’ 없이 병력동원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과연 63만 정도의 상비군이 필요한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 국방부는 북한과 대치하기 위해 나름의 계산에 따라 병력을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해왔다. 군사적 필요, 경제적 합리성, 인구변화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만 있지 종합적으로 따져봤다는 과정과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군의 병력동원 규모는 사실 별다른 근거 없이 관성적으로 유지되어왔다. 이 정도 규모가 유지되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직후부터다. 한국군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0만여 명에서 72만 명까지 그 규모를 급격히 확대했다.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합의한 ‘한미합의의사록’의 부록에 한국군의 규모를 72만 명으로 명시했다.

왜 하필 72만 명이었을까? 한국 정부에게 72만 명이란 규모는 군사원조를 더 많이 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일례로, 1957년 국회에서 민관식 의원이 국방부를 상대로 72만 명이란 숫자가 산출된 근거를 묻자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정열은 이에 답하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부탁할 뿐이었다. “병력을 줄이면 줄인 만큼 원조도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 72만의 병력문제는 거론하지 않았으면 바란다.” 전쟁이 끝난 지 4년이 넘었지만 제대를 하지 못했던 군인들의 불만이 공공연히 터져 나오고 있던 때였다.

72만 명이라는 규모는 군사원조를 제공하는 쪽인 미국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정부는 전선에 나가 있는 자국군을 한국군으로 교체하기 위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겼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미국에서는 자국 군인들의 희생을 줄이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었는데, 대선후보로 나온 아이젠하워가 미군을 한국군으로 교체하여 철수시키겠다고 화답하면서 이러한 공약은 기정사실이 됐다.

미국은 달러와 원화를 환전하는 식으로 한국군의 병력규모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군은 한국군을 운용하는 비용이 미군에 비해 1/8 정도로 싸다고 봤다. 또한 미군 2개 사단을 전선에서 철수시키려면 한국군 6개 사단, 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키려면 한국군 4개 사단이 새로 필요하다는 계산도 세웠다.

결국 72만 명이라는 규모는 전선에 나가 있던 자국군을 한국군으로 대체해 자국민들의 희생을 줄이고자 했던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체면을 세워주는 과정에서 적당히 산출된 것이었다. 1960년을 전후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한국군 역시 총 12만 명을 감축하면서 현재의 60만 명 선에 줄곧 머물게 됐다. 이처럼 한국군의 병력규모는 남북 대치에 따른 힘의 균형과는 관련 없이 관성적으로 이어져왔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의 철밥통만 단단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다른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다가 두들겨 맞고 체포되는 동안 군대 장교들은 분단 상황이라는 방패 뒤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자신들의 일자리 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집단은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군부가 유일하다.

▲ 한국군의 숫자가 왜 72만명 이었는지, 지금은 왜 60만명인지에 대한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숫자의 결정이 독자적인 판단이나 객관성에 기초한 것이 아닌 미군의 편의성에 의해 산출된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분단’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자

이제는 이런 야바위를 끝낼 때가 됐다. 이토록 무책임한 병력동원이 가능했던 건 한국이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인식 덕분이었다. 지난 60년 동안 군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치부되어왔다. 군 관련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합리적 비판도 불가능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군화발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군정분리 원칙이 자리를 잡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위해서 정치 역시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역설도 발생했다. 군 장성들이 방위산업 비리에 연루된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지만 국방정책과 관련한 정보는 아직도 온통 비밀로만 부치고 있는 실정이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양심의 자유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한 전 세계 수감자 중 한국인이 92.5%를 차지한다는 유엔의 비판도 무시하면서 병역기피자 인터넷 신상공개 같은 ‘위험한’ 정책을 시행한다. 국방부에서 나서서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압수하는 행태가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지배자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특수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근대화를 ‘특수한 길(Sonderweg)’로 주장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일이 비자유주의적이지만 후발 근대국가로서 어쩔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특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일본, 한국 등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유럽의 프랑스나 영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세계 모든 국가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은 특수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지배자들이 말하는 ‘분단’ 역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특수성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은 이미 91년에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면서 서로를 각각의 국가로 인정했다. 다만 자국의 헌법에서는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특수성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눈을 돌려 세계를 훑어보면 국민국가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국민국가의 이념형에 가장 가까운 유럽의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각각의 주마다 독립성이 상당히 높은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도 있다. 50여 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중국이 있는가 하면, 중국과 체제가 다르지만 어쨌든 중국에 속한 홍콩도 있다. 이처럼 세계는 보편성이 아니라 수많은 특수성들이 조각처럼 구성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각 지역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특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유일하게 보편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분단’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한국의 상황은 수많은 국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촌극들은 통일이 되지 않아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남북의 지배자들이 통일이라는 과제를 빌미로 서로의 권력을 강화하는 사태들이다.

한국의 군부가 진정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체제 경쟁을 더욱 분명하게 벌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국방부는 3대 세습하는 독재국가의 인민무력부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들의 획일성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자인하는 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오는 9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병역거부권과 관련한 공개변론이 열린다.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고 무조건 입대를 요구하는 것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따져 묻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국방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번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현역자원이 부족하다며 대체복무제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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