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KBS이사회 이사장이 이승만 정부가 6·25 한국전쟁 당시 일본 망명을 준비했다는 KBS의 보도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밖에서 시끄럽게 KBS 성토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라고 설명했지만, 야당 추천 이사들은 “개별 보도 내용으로 이사회를 여는 것 자체가 보도본부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KBS <뉴스9>는 지난달 24일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단독보도했다.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당시 일본 정부에 6만명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난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의 문서를 바탕으로 한 보도였다. 설로 존재했던 일본 망명 요청이 일본과 미 군정 문서로 확인돼 보도의 파장이 컸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비공식 문서를 근거로 허위 왜곡보도를 했다며 KBS를 규탄하는 보도를 했고, 종북좌익척결단·나라사랑어머니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통해 KBS 보도에 불편함을 강하게 표출했다. (▷ 관련기사 : <보수세력, KBS ‘이승만 일본 망명’ 보도 강력 비난>)

▲ 7월 3일자 KBS <뉴스9> 보도

<뉴스9>는 3일 <이승만 기념사업회, ‘일 망명 정부 요청설’ 부인>(▷링크)을 통해 이승만기념사업회 측의 반론을 별도 리포트로 처리했다. 이승만기념사업회는 정부 공식 기록이 아닌 야마구치현 자료만을 근거로 망명 정부 요청설을 제기한 것은 왜곡이고, 정부의 제주 이전도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이 망명을 타진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뉴스9>는 “보도한 야마구치현 기록은 망명정부 요청이 전쟁 초기 상황으로 묘사돼 있을뿐 보도에서 나온 6월 27일이란 날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도 도입부에는 “KBS는 앞서 충분한 반론 기회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보수세력의 비난 이후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을 비교한 인터넷 뉴스뿐 아니라 6월 24일 나간 첫 보도가 삭제되기까지 했지만 뉴데일리, 뉴스파인더 등 극우 성향 매체들의 맹공은 6일 오후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인호 이사장, 이사회 소집 “밖에서 시끄러워서 대책 마련하기 위해”

KBS이사회는 오는 8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KBS의 이승만 보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보도 책임자를 불러 ‘보도의 정확성 제고 방안에 관한 보고’를 받겠다는 것이다. 이번주는 예정된 이사회가 없었으나 이인호 이사장의 요청으로 이번 이사회가 열리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인호 이사장은 6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이 문제(이승만 보도)에 대해서 KBS에서도 유감 방송이 나갔고 밖에서 굉장히 시끄럽고 KBS 성토대회까지 열린다고 하니까, 이 상황에 대해 우리도 보고를 받고 어떤 대책을 논의해 봐야 한다 이런 얘기”라고 말했다.

▲ KBS이사회 이인호 이사장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일본 망명을 추진했다는 내용의 KBS 보도를 논의하는 임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2일 KBS 신관에서 열린 국감 당시의 이인호 이사장 모습 ⓒ미디어스

앞서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2일 통화에서는 이사회의 방송 내용 개입 여부에 대해 “전혀 아니다. (방송은) 집행부(경영진)가 하는 일이지 이사회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승만 보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방송을) 만드는 데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보고를 받는다. 당연히 이사회가 알고 있어야 할 일 아닌가. 더군다나 제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을 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다 소상하게 보고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미 한 차례 보도본부에서 설명 들은 내용을 가지고 재논의를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이인호 이사장은 재차 “(보고 받은) 그 후에도 밖에서 시끄럽게 성토대회를 한다고 하니 우리는 우리대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라며 “좀 더 좋은 방송이 되기 위해서, 시끄럽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답했다.

개별 보도 사안에 대해 이사회를 긴급히 소집하고 해당 내용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보도본부에 위축효과를 줄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8일) 이사회가 공개되니 와서 들으세요”라며 “우리는 우리대로 (보도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야당이사들은 이사회 개최 ‘반대’… 새 노조, ‘월권 행위’ 지적

하지만 KBS이사회 야당이사들(김주언·이규환·조준상·최영묵)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이사회의 ‘월권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야당 추천 이규환 이사는 같은 날 통화에서 “야당이사 4인은 이사회가 방송이든 보도든 내용을 가지고 언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작 과정에서 내·외부적인 압력이 있는 경우에만 경위를 살펴보기 위해 안건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따라서 이승만 보도는 이사회의 안건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규환 이사는 “방송 내용을 이사회 안건으로 하면 보도 독립성과 제작자율성 침해가 될 수 있다. 사장을 뽑는 인사권을 가진 이사회에서 어떤 말이 나오면 (구성원들은) 바로 영향을 받고 (자율성을)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며 “방송 내용은 이사회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청자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법적 기구로 둔 것이다. 이사회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야당이사들은 이승만 보도를 안건으로 하는 이사회 개최에 ‘반대’ 입장을 표했고,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다.

새 노조 역시 이번 이사회 소집은 ‘월권 행위’라고 우려했다. 새 노조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경영 행위가 아닌 프로그램이나 보도를 가지고 긴급히 이사회를 소집해 보도 책임자 의견을 청취하는 것은 ‘공사(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사 경영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제46조 1항)는 <방송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외부에서의 방송 독립성 침해를 이사회가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보도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월권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새 노조 관계자는 “통상 이사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두지 않고 (보도 내용을) 언급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정식 안건으로 해서 이를 논의하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는 것은 전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 KBS <뉴스9>가 지난달 24일 단독보도한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 리포트는 6일 오후 현재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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