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미디어스에 새로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김풍신, 우리집 냉장고도 부탁해요! <냉장고를 부탁해> (6월 29일 방송)

“단언컨대 그동안 김풍 요리 중 가장 깊은 맛이다(최현석)”
“흠 잡을 데가 없다(이연복)”
“역시 잘해요(샘킴)”

샘킴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최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가장 깊은 맛”이라고 인정했다. 그의 스승이자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은 백 마디 말 대신 시원한 용트림으로 평가를 대신했다.

이 모든 것이 김풍에게 쏟아진 찬사였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유일하게 전문 셰프가 아니었던 출연자. 그래서 다른 셰프들이 그의 요리를 조금씩 도와줘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던 ‘유니셰프’. 그러나 지난 7개월 동안 보여준 김풍의 변화는 놀라웠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김풍 셰프

스타 셰프 샘킴을 몇 번이나 이겼다. “저 별은 샘킴 별”이라는 노래까지 나올 정도로 김풍의 가슴에 달린 승리 배지는 대부분 샘킴의 패배에서 나온 별이었다. 샘킴을 정복한 후,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셰프의 제자가 되었다. 물론 이연복 셰프의 허락 따위는 받지 않았다. ‘연복풍’ 메뉴로 승리하자, 이연복 셰프는 진짜 김풍의 제자로 받아들였고 직접 칼까지 하사했다.

그리고 6월 29일, 김풍은 기어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게스트 성규의 냉장고는 그야말로 역대급 ‘쓰레기’ 냉장고였다. 김풍은 상하기 직전의 방울토마토, 달걀 2개, 달랑 두 장 남은 식빵만으로 정통중화요리를 만들어냈다. 이원일 셰프가 진땀을 흘려가며 육포를 잘라 육수를 내는 동안, 김풍은 이연복 셰프의 마늘 다지기 퍼포먼스를 여유롭게 흉내 냈고 심지어 콧노래까지 불렀다.

이를 지켜보던 이연복 셰프는 “김풍은 저렇게 간단하게 했는데, (이원일 셰프가) 지면 얼마나 억울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억울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다진 방울토마토와 계란을 휘휘 저어 끓이고 그 위에 구운 식빵 조각을 올려놓은 ‘토달토달’의 맛은 깊고, 또 깊었다. 개미 이원일을 이긴 것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한 베짱이 김풍이었다.

언제나 김풍은 승리에 목숨 걸지 않았다.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머랭’에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셰프들이 놀리면 놀리는 대로 자신만의 요리를 완성해갔다. 대신, 늘 웃었다. 정말 요리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의 눈빛이 보였다. 결국 이번 주 김풍의 승리는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한 승리였다.

이주의 WOSRT: 박성호&김준호, <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인가 민폐인가 (6월 28일 방송)

<개그콘서트>는 전통적으로 계파가 존재해왔다. 최근에는 박성호파, 김준호&김대희파, 김병만파로 나뉘었다. 김병만이 정글로 떠나면서 박성호와 김준호는 어엿한 <개그콘서트>의 맏형이자 터줏대감이 되었다.

김준호는 ‘닭치高’ 코너의 교장 선생님으로, 박성호는 ‘도찐개찐’과 ‘대륙의 별’ 코너에 오르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러나 요즘 그들의 무대를 보면, 진정한 터줏대감인지 단순히 경력만 오래된 고참 개그맨인지 의문이 든다.

건망증 심한 학생과 교사가 다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닭치高’는 ‘지난 일은 잊자’는 의미심장한 교훈 덕분에 한 때 정치 풍자 코너가 아니냐는 호평도 받았다. 꼭 정치 풍자가 아니더라도, 송준근과 쌍둥이 개그맨의 건망증+허무 개그는 방심하고 있는 관객들의 허를 찔렀다.

▲ KBS <개그콘서트> '닭치고'의 김준호, '대륙의 별'의 박성호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닭치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기억상실 커뮤니케이션보다 교장 김준호의 비중이 커졌고, 어느새 김준호 원맨쇼로 전락했다. 김준호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이미 ‘김준호 괴롭히기쇼’를 예상하고 미리 환호를 보낸다. 6월 28일 방송분에서 김준호는 고무줄로 매단 럭비공에 두 차례 맞고 쓰러졌고, 그 때마다 관객들은 눈을 가리면서도 김준호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송준근과 쌍둥이 개그맨의 수업은 김준호의 원맨쇼를 빛내주기 위한 에피타이저로 변했다.

김준호가 몸으로 웃긴다면, 박성호는 분장으로 웃기는 스타일이다. 최근 시작한 코너 ‘대륙의 별’에서 박성호는 여행 가이드 면접을 보러 온 역할로 등장한다. 그러나 면접은 핑계일 뿐, ‘갸루상’을 연상케 하는 경극 분장이 핵심이다. 박성호는 등장 직후 지난 3주 동안 마트에서, 도서관에서, 놀이공원에서 경극 분장을 하고 돌아다녔던 ‘인증샷’들을 공개한다. 그것이 끝. 결국 가이드 면접에서 떨어진 박성호는 “아이고 허무하다”라며 퇴장하지만, 정작 허무한 건 시청자다. 분장으로 웃기는 것이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박성호의 분장은 ‘갸루상’에서 정점을 찍었고, 이번 경극 분장 역시 ‘갸루상’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도찐개찐’ 코너에서는 중간에 투입됐다. “아빠 바지와 여자친구 SNS 사진 / 도찐개찐 / 그만 좀 올려라”처럼 후배 개그맨들이 전혀 연관성 없는 A와 B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동안, 박성호는 느닷없이 나타나 예쁜 연예인과 망가진 연예인 사진을 비교하며 후자를 ‘빽도’라 비웃는다. 그것도 “여러분 도찐개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빽도의 박성호!!”라는 후배 개그맨들의 호명을 받으면서 의기양양하게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박성호의 ‘빽도’ 개그는 오히려 ‘도찐개찐’의 흐름을 끊어놓고 있다.

박성호와 김준호가 무대 뒤에서는 후배들을 물심양면 도와주는 진정한 맏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무대에서는 전혀 발전되지 않은 형태의 개그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언제까지 우리는 김준호의 가학적인 원맨쇼와 박성호의 갸루상 분장을 ‘닭치고’ 지켜봐야 하는 걸까.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이주의 BEST&WORST] 더 찾아보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