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방발기금) 징수를 최소 일 년 뒤로 미뤘다. 방발기금은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콘텐츠·플랫폼사업자가 미디어생태계 선순환을 위해 부담하는 ‘의무’다. 기금은 방송통신업계 전반에 공공·공익적 목적 사업에 쓰인다. ‘프로그램 제작·유통 지원’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방발기금은 일종의 ‘회비’로 인식된다. 그런데 종편 4사는 2011년 개국 이후 방발기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받아서 쓰기만 했다. 방통위가 종편을 “인큐베이터에 있는 갓난아기”라고 비유하며 배려한 덕이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종합편성·보도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해 방송광고매출 6% 이내에서 방발기금 분담금을 부과할 수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방송사업자(KT스카이라이프),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IPTV사업자) 경우 방송서비스매출의 6% 이내, 홈쇼핑PP에 대해서는 영업이익의 15%까지 징수할 수 있다. 정부는 시장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 최초 3년 동안 방발기금을 ‘면제’했고, 이후에도 관행적으로 징수율을 0% 부과해왔다. 방통위가 올해 출범 5년차인 종편에 대해 올해는 기금을 걷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방통위 내 야당은 퇴장했고, 여당만 논의에 참여했다. 정부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 셋과 야당 추천 상임위원 둘이 부딪히고, 야당 위원들이 퇴장하고, 여당 위원끼리 만장일치로 의결하는 모습은 방통위에서 늘상 있는 일이다. 종합편성채널 승인 때도 그랬고, 종편 재승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2일 전체회의는 조금 달랐다. 종편 4사에 총 10억원의 회비를 걷자는, 종편이 사용하는 방발기금 액수보다 적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를 두고 최성준 위원장은 현장에서 ‘정치’를 했다.

김재홍 고삼석 상임위원은 “올해부터 당장 1%를 걷자”고 주장했다. 최성준 위원장과 이기주 상임위원은 내년부터 0.5%를 걷자는 의견을 냈다. 허원제 부위원장은 ‘6년 유예안’을 주장했다. 김재홍 고삼석 위원이 퇴장한 직후 최성준 방통위원장의 정치는 시작됐다. “부위원장님, 다시 생각해줄 수 없는지 부탁합니다.” 허원제 부위원장은 “소신과 철학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시간 상 문제가 있으니 제가 한 걸음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내년 징수시기와 징수율을 다시 논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방통위 관료들은 고시를 개정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최성준 위원장 (사진=방송통신위원회)

방통위는 올해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정치적 협상’이나 관료들의 ‘관행’으로 특정사업자를 봐주지 말고, 방발기금을 보다 엄격하게 걷자는 게 입법취지였다. 그런데 방통위는 재차 방발기금 고시에 ‘부칙’을 삽입해 종편 특혜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방통위는 종편 ‘베이비시터’를 자처하면서 네 살배기 종편을 계속 ‘응석받이’로 만들어 버렸다. 보수신문사가 최대주주인 거대미디어그룹의 중심축이자 연간 매출액이 885억에서 1308억원에 이르는 종편에게 징수율 0.5%나 1%는 사실 ‘껌값’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성준 위원장은 종편을 감쌌다. 그것도 ‘싸구려 정치’로 말이다. 최성준 위원장이 정치하는 장면에서 기자들은 웃고 말았다. 정치를 할 줄 알았던 전임 위원장과 달리 그의 정치는 볼품없었다. 그는 지난해 여러 차례 종편 특혜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정치인 흉내를 냈을까. 종편을 감싸봤자 자신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것 또한 충분히 알고 있을 터다. 소신을 접은 사람은 허원제 부위원장이 아니라 최성준 위원장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종편 등 방송사업자들이 광고보다 협찬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고, 앞으로 기금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리 없다. 기업이 방발기금 ‘펀딩’에 참여했고, 기금이 ‘돈 되는 곳’에 점점 몰리는 사실도 모를 리 없다. 그는 방발기금 전반의 문제를 점검하지 않고 종편 특혜만 연장했다. 관료를 탓할 일이 아니다. 최성준 위원장은 게으르거나 무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보수언론에 포획된 것뿐이다. 그는 방통위를 싸구려 정치집단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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