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일본 망명을 추진했다는 KBS 보도의 후폭풍이 크다. 선조와 이승만 대통령을 비교한 기사는 당일 삭제되기까지 했지만, 보수세력들의 ‘KBS 이승만 보도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 6월 24일 KBS <뉴스9> 보도

KBS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는 지난달 24일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링크)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단독보도했다.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당시 일본 정부에 6만명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난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의 문서를 바탕으로 한 보도였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 논란이 많은 가운데, ‘일본 망명 요청설’이 일본 및 미 군정 문서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보도의 반향은 컸다.

뉴라이트 성향의 KBS공영노동조합은 보도 다음날인 25일 성명을 내어 “대한민국 정부나 일본 외무성의 공식자료가 아닌 일본의 일개 현의 자료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을 폄하하는 근거로 제시한 KBS 9시 뉴스. 이런 보도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틈만 나면 사용하는 전략이어서 KBS가 이제는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국기를 흔드는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도대체 이런 뉴스를 통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가. 대한민국을 세운 지도자를 도망자로 매도하고 나아가 그가 세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에게 빌미를 주는 이런 뉴스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가”라며 “수신료를 내고 있는 절반 이상의 국민들에게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사장과 보도 책임자는 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KBS는 같은 날 오전 <전쟁 통에 지도자는 망명 시도…선조와 이승만>이라는 인터넷뉴스를 내보냈다. 다급한 전쟁 상황에서 망명을 타진한 이승만 대통령과 1592년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개성, 평양, 의주로 도주한 선조를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심약한 것은 죄가 아니다. 지도자의 자리를 감당하기에 당사자 역시 버거웠으리라. 하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았다”는 말로 끝난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올라간 당일 삭제돼 현재는 볼 수 없다. 보도본부장이 이승만 대통령과 선조를 단순 비교한 것은 너무 과하지 않느냐고 문제제기를 해 인터넷뉴스국장이 삭제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 <뿌리 깊은 미래> 등 과거 KBS 보도와 프로그램에 문제제기를 해 온 이인호 이사장이 개입했다는 설이 돌았으나 이인호 이사장은 부인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2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24일 이승만 망명 보도와 25일 선조-이승만 보도 삭제 건에 대해 묻자 “적절치 않으니까 삭제했다고 보고 받았다”면서도 이사장 자신이 의견을 제시해 삭제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그 보도가 있을 때 중국에 있었고 (기사는) 오기도 전에 내렸더라”고 답했다.

중요한 보도가 나가면 관련해서 이사회에서 따로 보고를 받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아니다. 집행부(경영진)가 하는 일이지 이사회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 내용에 대해 이사회가 관여하지 않는데 이승만-선조 보도 삭제 보고는 따로 받은 것인지 재차 물으니 “우리가 (방송을) 만드는 데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보고를 받는다. 당연히 이사회가 알고 있어야 할 일 아닌가. 더군다나 제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을 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다 소상하게 보고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 군정 없었고, 이승만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조선일보

하지만 보수세력은 KBS의 ‘이승만 보도’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보수단체들의 1인 시위, 기자회견에 이어 오늘(2일)은 조선일보가 <KBS가 이런 報道(보도) 하라고 시청료 내야 하나>라는 칼럼으로 ‘이승만 보도 때리기’ 선봉에 섰다.

조선일보 이한우 문화부장은 이승만 일본 망명 계획 보도에 대해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20년 사이에 한국이나 일본·미국의 공식문서에서 확인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국내외에 이승만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가 얼마나 많은가? 적어도 이 점을 점검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 7월 2일 조선일보 35면

이한우 문화부장은 “최악의 경우 이승만 정부와 별개로 미국 측에서 전시(戰時) 대비책의 하나로 그런 요청을 했을지 모른다”면서도 “또 그런 문서가 있었다 한들 그것은 이승만 정부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이미 대한민국에는 미 군정이 없어졌고, 일본에는 맥아더가 이끄는 극동사령부가 있었을 뿐이다. 이승만과 맥아더의 친밀했던 관계를 볼 때 애당초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한우 문화부장은 “KBS가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고 보도한 바로 그 대통령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우리 연안 수역 보호를 목적으로 선언한 ‘평화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KBS는 알기나 하는가”라며 “우리로선 이승만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KBS의 황당한 보도가 있기 이틀 전인 6월 22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배우 최지우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동방신기도 제쳤고, 박정희 대통령도 제쳤다. 60여년 전 이승만의 반일(反日) 정책이 그만큼 일본인들 뇌리에 강하게 새겨진 때문”이라고 글을 맺었다.

앞서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대학생포럼의 여명 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이승만 보도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한국대학생포럼은 “6·25전쟁 발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75세 노령의 몸이었다. 그리고 건국 2년 차 대한민국에는 국가위기 해결을 위한 어떠한 국가안보시스템도, 매뉴얼도 없었다”며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남침 직후 대통령으로서 국가원수로서 그리고 국군통수권자로서의 활동은 매우 적절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적확히 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BS 보도를 ‘전형적인 언론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후, “공영방송 기자가 진실여부나 출처확인 없이, 국민들에게 정체성 혼란을 주는 기사를 냈다”며 “국민들을 자극하기 좋은 친일 프레임으로 버무린 기사를 내보낸 해당 기자와 KBS보도국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에는 종북좌익척결단·멸공산악회·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나라사랑어머니연합·무궁화사랑운동본부·바른사회시민연대·자유민주수호연합·나라사랑실천운동·월드피스자유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KBS 보도를 규탄했다.

이들은 “온 아시아대륙이 공산화 될 때에 미개한 군중을 상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한국땅에 구축한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독재자’나 ‘도망자’로 매도하는 KBS의 좌편향적 보도는 좌익세력 특유의 거짓되고 자해적인 이적선동에 다름 아니다”며 “김일성의 남침을 막아 대한민국을 지켜낸 이승만 전승대통령의 공적을 외면하고, 그를 비겁한 도망자로 채색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KBS는 이런 왜곡된 오보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설사 이승만 대통령이 기습남침에 대응해서 대한민국을 살리려고 망명정부를 어떤 곳에 세우기로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라며 “KBS 경영진은 확실한 공식적인 근거도 없이, 그것도 6·25남침전쟁 65주년 기념일에, 이승만 승전대통령은 비겁한 도피자로 매도한 KBS 보도책임자를 퇴출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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