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금융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긴급경제안정화법(구제금융)이 뉴딜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기되는 조치들이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방책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조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와 1930~33년 은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루즈벨트가 제시한 뉴딜의 핵심은 ‘금리생활자의 안락사’입니다. 즉, 경제 불안을 낳은 금융자본의 활동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루즈벨트 정부는 중앙은행(연준)을 재무부가 통제하도록 하고, 기관투자자와 투자신탁기금과 같은 고도금융을 규제하기 위해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을 통해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로 뉴딜을 통해 확립된 화폐·금융제도가 붕괴되고, 금융자본의 활동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에 따라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한 과거의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이 폐지된 것은 그 최종적인 수순이었습니다. 최근 메릴리치,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의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상업은행에 의한 인수·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는 은행의 겸업화·대형화를 촉진하는 조치입니다. 또 노동자계급에 대해 완전고용과 고임금을 약속했던 ‘뉴딜 연합’ 역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해체된 상태입니다.

한편 뉴딜의 신화는 2차 세계전쟁(1939~45년)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933년 뉴딜 정책의 도입 이후 미국 경제는 4년여 동안 회복세로 접어들었지만, 1937년에 또다시 경기침체에 봉착했고(당시 실업률은 14.3%), 1929년 수준의 국민소득은 1940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회복되었습니다. 실례로 1943년의 경우 설비 투자의 65%, 총투자의 61%가 정부 재정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종전 후 경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여 민간 투자가 매우 저조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케인즈주의의 ‘투자의 사회화’는 2차대전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실현되었고, 이를 통해 전후 미국의 고도성장의 토대가 완성된 셈입니다. 따라서 이를 ‘군사적 케인즈주의’라고 하죠.

무엇보다 1930년대 대공황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대공황은 이윤율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예외적 사건’이었습니다. 반면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잠시 반등했던 이윤율이 다시 침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인 고통 끝에 자본주의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예전의 경제위기와 달리 더 큰 위기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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