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5일자 조선일보 1면.
오바마보다는 유색인과 이주민 운동에 주목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유색인종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국내 미디어들은 앞 다투어 그의 ‘담대한’(?) 희망과 변화를 언급하며 새로운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기대를 쏟아내었다. 어떤 이는 이를 혁명으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물론 인종차별이 구조화되어 있고 그것이 사회를 조직하는 주요한 방식으로 작동해 온 미국에서 비(非)백인 대통령의 당선은 그 자체로 센세이셔널하고 충분히 자극적이다. 눈물 흘리는 흑인 지도자들과 평범한 유색인 미국 국민들이 미디어 화면이나 지면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보도됨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비주얼은 고양되었다.

사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오바마라는 상징이 현실적으로 단단히 뿌리박은 인종차별을 가리는 효과를 더 크게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오바마라는 상징을 통해 더욱 자신감과 활력을 얻고 활동을 펼칠 유색인 운동과 이주민 운동이다. 이미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 유색인과 이주민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어느 때보다 더 정력적으로 유권자 등록운동과 오바마 지지운동을 벌인 바 있다. 일례로 포괄적인 이민개혁과 유색인의 권리향상, 서류미비자(undocumented-미등록체류자) 보호를 위해 활동해 온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의 이은숙 사무국장은 <아시아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이후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사회는 모든 공동체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정책을 현실화하는데 있어 새로운 행정부 및 의회와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오바마가 선거정책에서 미등록체류자들을 사면하고 이민자들을 위한 제도개혁을 약속한 바 있기 때문에 이민자 단체들은 이의 실행을 위해 활발히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인종차별의 약화와 이민자 권리보장은 이러한 풀뿌리 공동체운동의 힘에서 비롯될 것이다.

한국의 오바마?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시선을 한국사회 안으로 돌려보자. 2007년에 이미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2008년에는 110만 명을 돌파하였다. 인구의 약 2%에 이른다. 2007년도에 결혼 건수 33만2천여 건 가운데 국제결혼 비율이 11.9%인 3만9700여 건이나 된다. 2050년에는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이 되고, 2020년까지 국제결혼 2세가 아동인구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의 초·중·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자녀 2만4867명 가운데 6089명(24.5%)이 입학을 아예 하지 않거나 도중에 탈락하는 등 공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는 60%, 고등학교는 30%만 다닌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궁핍, 한국어 부족, 미등록 체류신분 등이 그 원인이다.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학교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피부색으로 인한 놀림과 따돌림, 선생님의 부당한 차별대우 등이다.

학교에도 아예 다니지 못하고, 다니더라도 차별을 당하는 현실에서 “봐라, 오바마처럼 될 수 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오히려 두렵다. 한 10년 쯤 뒤에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에도 지독한 차별의 벽이 그대로라면 그 절망과 좌절이 분노로 폭발하지나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이민자들에게 사회통합 정책을 펴 온 프랑스 같은 데에서도 인종차별로 인한 소요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이대로 가면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작년에 “외국인과 혼혈을 차별하는 단일민족 국가 이미지를 극복하라”는 권고를 발표했다.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고, ‘순혈’과 ‘혼혈’ 같은 용어도 인종적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이 다민족사회임을 인식하고 교육, 문화 및 정보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채택해야 하며 초·중등학교의 교육 과정과 교과서에 국내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 및 국가 집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 모든 인종·민족 및 국가 집단 간의 이해와 관용·우의를 증진시키는 인권의식 프로그램을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동화와 배제만으로는 문제만 커질 뿐

정부의 공식 정책담론은 ‘다문화사회’다. 그러나 말이 좋아 다문화지 실제로는 결혼이주 여성들에 대해서는 한국인으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쓰고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관리와 통제, 배제(미등록이주노동자) 정책을 쓴다. 농촌과 도시 빈곤층의 아내로 오는 소위 ‘베트남댁’, ‘필리핀댁’ 등은 국민의 아이를 낳아 부족한 인구를 보충해주는 존재로 보고 애써 한국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들이 최근 예산을 많이 풀고 있는 분야인데, 한글교육, 요리교육, 전통문화교육 등을 실시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3년간의 단기순환 정책인데,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단속과 추방만을 시행할 뿐이다. 얼마 전 11월12일에 마석 지역에서의 싹쓸이식 단속은 그 결정판이었다. 경찰병력은 도로를 차단하고, 출입국 단속반원들은 공장과 주택에 마구잡이로 진입하여 100여 명이나 잡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쳤다. 이런 식의 공포정치, 이주노동자에 대한 계엄통치는 원한만을 쌓을 뿐이다. 최소한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겠다고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이주노조를 고등법원도 인정하였는데 노동부가 인정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해서 아직도 계류되어 있는 것이 이 나라 현실이다.

다문화사회를 제대로 만들려면 국내 이주민들의 본국 언어와 역사, 문화를 한국인들에게도 가르쳐야 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포용과 관용에 기반한 정책을 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백인계 서구인들, 투자자, 고위 전문인력에 대해서만 우대하는 치졸한 인종차별 정책으로는 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진짜 담대한 변화가 필요

국내에서 공직에 진출한 외국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산 단원경찰서에는 외사특채 경장으로 임용된 필리핀 여성 아나벨 씨가 있고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는 중국출신 동장 유암 씨도 있다. 외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동사무소의 기능을 하도록 서울시가 새로 만든 특별 행정기관인 글로벌 빌리지 센터 6개에 외국인 동장들이 생기고 있다. 지난 총선 때는 창조한국당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민인 주디스 에르난데스 씨를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사실 겉치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상황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 동안에 만들어온 최소한의 인권마저 무너지는 느낌이다. 딱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면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은커녕 같은 동포라고 하는 중국동포나 탈북 새터민들도 정치지도자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단일민족과 순수혈통 신화,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 다른 아시아인들을 깔보는 시각과 정책, 다문화로 가장한 인종차별주의 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진짜 담대한 변화가 절실하다. 오바마의 당선은 다른 것보다도, 우리 사회의 순혈주의와 인종차별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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