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못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줄임말입니다. 지못미,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의 멤버들에게 자주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못미가 주는 ‘쿨’한 느낌이 좋아서 자주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시사투나잇>의 마지막 방송을 기록한 동영상을 보며 그 말이 싫어졌습니다. 서러워졌습니다. 살다 보면 정말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한 일들이 있습니다. 이번 KBS 가을 개편에서 사라지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도저히 ‘쿨’해지기 어려운 구질구질하고 먹먹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언론 장악이란 추상이 프로그램 폐지라고 하는 실체로 다가왔습니다. <미디어포커스>가 없어지고, <시사투나잇>이 사라집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정관용의 열린토론>이 바뀝니다. 방송사는 정기적인 개편일 뿐이라며, 경제적 형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좀 말랑해 보자며 시작한 <주말 그 말랑한 미디어>였는데, 이번 주는 좀 딱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편집자>

신자유주의의 금융 위기가 옥죈 실물경제와 이에 따른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앞에 한국의 지상파 방송 3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나 보다. 일개 가정도 경제가 어려우면 가계부를 다시 짜는데, 방송사도 어찌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금융시장이 경색되다 보니 기업들은 여유 자금이 부족해지고 이는 광고비 지출 감소로 나타나 방송사까지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에 따르면, 현재 KBS의 올해 적자 예상액은 930억원 대이고, MBC도 약 250억원 대의 적자가 예상되며, SBS는 영업이익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방송사들은 개편을 맞아 불황을 관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는데 첫째, 장르의 변화, 둘째, 인적 쇄신, 셋째, 비상경영체제 운영이다.

▲ MBC,KBS,SBS 사옥 ⓒ미디어스
장르의 변화는 많은 제작비가 투여되는 드라마 장르의 축소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많은 시청률이 확보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면화로 나타났다. 방송이 국민에게 주는 즐거움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동했고 그 와중에 은근슬쩍 시사 보도 프로그램의 씨를 말리는 일이 진행되었다. KBS의 <미디어 포커스>와 <생방송 시사 투나잇>의 폐지가 가장 눈에 띄고 MBC의 <생방송 화제집중> 폐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 시사교양 PD들이 직업적인 전문적 훈련을 받는 곳 한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해외 특파원이 제작하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도 환율 문제로 인해 제작 환경이 열악해졌다고 한다.

짐작컨대, 경영위기란 이름으로 정치적으로 논란을 일으킬 만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비가 아니었을까? 전후맥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짐작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만은 지적해야겠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인심은 흉흉해지기 마련인데, 그와 같은 인심과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정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불황이 가속화될수록 더욱 절실해진다는 사실이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만큼 제작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시청률이 낮다’라는 방송사의 변명은 계속될 터이다. 하지만 시청률을 위해 방송이 존재하는 것일까? 경제가 불황이라고 해서 인간됨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우리의 인간됨을 보여주는 시대의 양심이지 않았던가?

인적 쇄신은 이번 개편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아야할 부분이다. 높은 몸값의 인기 스타가 독점한 텔레비전에 각 방송사들은 자사 인력을 충원해 새롭게 물갈이를 시도하고 있다. 기실, 이 부분은 이제야 방송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 평가해야 한다. 스타의 인지도에 편승해 프로그램의 인기를 내맡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 가능성 있는 다양한 인재를 충원하여 프로그램의 참신함을 꾀해야 하는 것이 방송의 책임이고 또 권리이기도 하다. 그동안 방송은 너무나 쉽게 이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갑이 아니라 을이 된 바가 컸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무대 위의 인적 쇄신과 무대 뒤의 인적 쇄신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 무대 뒤의 풍경은 살벌하다고 한다. 얼마 전 한 방송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많은 이들이 열악한 근무 조건에서 비롯된 구조적 죽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최근 방송사가 적자에 시달리며 작가의 수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 개선되지 않은 노동 조건에 설상가상으로 인원까지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작가들만 이런 처지일까. 의외로 방송사는 비정규직 인원들을 많이 쓴다. 이들 비정규직들에 대한 칼바람이 가속화되고 있다. 만일 그와 같다면 방송은 무대 위와 무대 뒤가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액 출연자에 대한 거품 빼기뿐만 아니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 방송사가 느끼는 위기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비정규직은 위기의식을 넘어서 위기가 현실이다. 거품을 줄여 생긴 여유를 분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통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고 했다.

비상경영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향후 방송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정책적 움직임도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의 비상경영 선언 등과 관련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지상파에 중간광고나 간접광고(PPL)를 도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언하였다. 방송사 역시도 수익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 속에서 이와 같은 정책변화를 내심 반기는 눈치이다. 민영 미디어렙 문제도 다시 급물살을 탈 기세이다. 현재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광고수주를 대행하고 있는데, 방송사가 직접 광고를 수주할 경우 방송사의 수익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상경영체제에서 방송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시청자의 자리는 점차 사라지는 모습이다.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이다. 이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우리의 방송법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방송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 용어의 정의 뒤부터 본격적으로 방송법의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 첫머리에 해당하는 제3조가 시청자의 권익 보호이다. 방송법 제3조는 다음과 같다. “방송사업자는 시청자가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방송의 결과가 시청자의 이익에 합치하도록 하여야 한다.”

내 주위에 방송 중에 광고가 나와 시청 흐름을 방해하거나 혹은 방송 내용 중에 간접광고가 부각되어 프로그램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중간광고와 간접광고의 문제는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사고해야 한다. 민영 미디어렙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공적 기관인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소위 말해 인기 없는 종교 방송과 지역 방송에도 광고가 분배될 수 있고 이로 인해 한국의 방송이 다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해체될 경우 몇몇 자본력과 경쟁력을 갖춘 방송사업자만 시장에서 생존하고 나머지는 퇴출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위기를 빌미로 스리슬쩍 방송의 공공성을 사영화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세계적인 금융 투자자 (혹은 투기꾼) 워렌 버핏은 최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역발상의 투자 전략을 제안한 바 있다. 모두가 탐욕적일 때를 경계해야 하고 모두가 공포에 떨 때 탐욕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일의 대박을 위한 기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역발상의 전략은 지금의 방송위기 국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위기라 할 때가 기회이다. 이 기회는 단지 미래의 대박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의 방송이 행한 과오를 점검하고 스스로 내실을 다져 방송의 건전성과 공공성을 개선하기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방송위기 상황의 역발상은 경제적으로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만큼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시작된다. 한류로 한껏 달아올라 드라마에 과도한 투자를 했던 것은 아닌지, 인기 스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의 빛 속에 비정규직의 어두운 그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광고 수익 논의 앞에 지역 방송과 종교 방송의 역할과 공공성을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불황을 관통한 후의 방송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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