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번재판소는 완성이다. 체제의 절대자이다. 삼권분립은 무의미하다. 민주주의는 허울이다. 지금, 모든 것은 단지 헌재의 액세서리(accessory)일 뿐이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란다. 헌재의 정리는 명확하고 절명하다.

가족 간의 증여를 통해 재산을 형성했다고 하여 모두 조세회피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란다. 가족 간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란다. 부부별산제란다. 공유재산을 세대별로 합산해 과세할 당위가 없단다. 결론적으로, 세대별 합산 규정의 불이익(조세부담)이 공익보다 훨씬 크단다. 고로 헌재는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겠단다.

▲ 11월 14일자 동아일보 3면.
조중동은 좋아 죽는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헌재에 유감을 표했다. 얼핏,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비분해 보이지만 무력할 뿐이다. 헌재가 결정하면 끝이라는 게임을 모두 받아들인다.

이미 말했다. 모두 헌재의 액세서리들일 뿐이라고. 헌재의 결정은 그 자체로 불가침이다. 환호와 볼멘소리로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도 김빠진다. 그동안 너무 많이 봤다. 현 체제에서 헌재의 적은 헌재뿐이다. 새로울 게 없다. 권력의 과시만 반복될 뿐이다.

현실의 어떠한 세력도 헌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 견제 불가능한 집단이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는 불가하다. 판관 9명이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건 근대의 풍경도 못된다. 고대 로마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조중동과 한나라당 역시 마냥 좋아할 게 못된다. 이런 식의 헌재 만능주의는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그리고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헌재는 다른 무엇이 아닌 '세대별합산'만을 위헌이라고 봤다. 헌재의 법리는 간단하다. 헌재는 세대별 합산을 차별로 봤다. 부부별산제를 채택한 민법을 강조했다. 헌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법리는 확장의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확장 논리들이 헌재의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조중동은 과세의 기본 단위는 반드시 개인이어야 한다는 미신을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이를 환원하면 결국, 재산권의 주체는 언제나 개인이라는 결론이 된다. '세대별합산'은 위헌이니까.

이건 늪이다. 헌재는 늪에 빠졌다. 조중동은 잠겨버렸다. 확신하건대, 길게 보면 '세대별합산' 위헌 결정은 헌재는 물론 우리 사회 우파들의 이념적 지향과 가치 체계를 일거에 늪으로 밀어넣는 자승자박의 선택이 될 것이다. 헌재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고, 조중동은 점점 궁색해질 것이다.

헌재와 조중동의 이념적 지향은 민주주의의 최신이 아니었다. 헌재는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그 단위들의 집합으로서 국가를 옹호해왔다. 조중동이 이승만과 박정희 타령을 해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사회적 고비가 있을 때마다 가부장적 국가주의야 말로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이자 법리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 헌법재판소 ⓒ미디어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판결 직전에 있었던 간통죄 합헌 판결을 보자. 간통죄 합헌이라는 헌재의 결론은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아직 개인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타인 혹은 국가의 관리 감독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충돌한다. 재산권의 주체는 이제 개인인데, 신체의 자기결정권은 개인이 가질 수 없게 된다. 조중동은 뭐라 하겠는가? 희극적 모순이 발생한다.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헌재는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했었다. 조중동은 나팔을 불었다. 헌재는 화답으로 관습법을 끌어왔었다. 오늘의 대소사라도 어제의 전통이 승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었다. 주택을 세대별로 합산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공동의 선으로 지향'해왔던 양속이었다. 세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제도들이 사회의 기초 단위를 '세대'로 규정한다.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뭐라 할 텐가? 헌재와 조중동이 맞은 진정한 비극적 모순이다. 우스워졌다. 웃음은 권위를 해체하고 우스워지면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좋아하는 꼴은 그래서 한심하다. 기와 한 장 아끼느라 대들보 썩는 줄 모르는 꼴이다. 헌재가 우리 모두를 '세대별합산'의 늪에 빠뜨렸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은 통탄해야 옳다. 권리는 가족, 국가의 것이라는 구태의연함에서 헌재가 벗어나기 시작하면, 조중동은 비빌 언덕 자체가 없어진다. 그 시작이 다소 불행하게 재산권일 뿐이다. 한겨레·경향이여, 너무 무력해 말라. 법은 언제나 재산권부터 보호하기 시작한다.

개인들은 이제 막 하나의 권리를 찾았다. 아버지-가족-국가로 이어지는 '세대'라는 상징이 권리를 하나 내려놓았다. 권리를 돌려달라는 소원은 봇물이 될 텐데… 헌재는 안면몰수하고 권리는 개인의 것이라는 '세대별합산' 위헌 논리를 배반할까? 지켜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헌재의 노동강도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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