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친노 마녀사냥’에 앞장서고 있는 <조선일보>가 이번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한 ‘종북몰이’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27일 1면에 <문재인·전해철이 대표 지낸 로펌 변호했던 40여명 盧정부 때 특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전해철 의원이 참여정부 시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으로 근무하면서 특별 사면 관련 업무에 관여할 때 자신들이 과거 변호했던 사람들을 대거 사면 대상으로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27일 1면 기사.

특히, 사면 대상에 포함된 인사들 중에는 통합진보당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바 있고 과거 ‘영남위원회 사건’에 연루된 바 있는 박경순씨가 포함돼있어 문제라는 게 <조선일보> 기사의 핵심이다. <조선일보>는 박경순씨 이외에도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통신업체 대표 김모씨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5면 기사의 제목이 <文이 변호한 公安사범, 사면 뒤 통진당 핵심으로>인 것을 볼 때, <조선일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박경순씨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영남위원회 사건’은 1998년 박경순씨를 비롯한 당시 김창현 울산동구청장 등 15인이 반국가단체를 결성해 북한이 대남공작조직인 한국민족민주주의전선(한민전)의 지도이념에 따라 이적활동을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으로 ‘영남위원회’라는 명칭 이외의 상위 조직을 규명하는데 혼란이 있었고 수사당국의 증거조작 논란까지 일었던 바 있다. 이후 1999년 옛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연루됐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이 터지면서 박경순씨와 김창현 전 청장 등은 자연스럽게 민혁당 산하 영남위원회 활동을 한 것으로 규정되게 됐다. 이들이 영남에서 활동했다면 옛 통합진보당 이석기, 이상규 의원 등은 경기남부에서 활동했다는 게 수사당국의 설명이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통합진보당 내부에까지 이어져 각기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이라는 이름의 정파로 불리게 된다.

▲ 조선일보 27일자 5면 기사.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은 2003년 참여정부 시기 사면대상에 포함되는데 이것은 참여정부가 특별히 ‘종북’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매 정부에서 실시되는 양심수 사면의 일환으로 진행됐다고 보는 게 옳다. 양심수란 정치적·종교적 신념 등으로 투옥·구금된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및 노동법, 집시법 위반 사범 등을 사안에 따라 양심수에 포함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사면된 2003년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의 면담에서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양심수 사면이 있었는데,이번에는 왜 언급조차 없느냐”라고 항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민가협 등은 참여정부의 양심수에 대한 특별사면 조치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 반발하며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 사면에서조차 기결 양심수의 조건없는 석방 및 특별사면·특별복권조치가 내려졌으며 수사중인 양심수 30명은 검찰이 구속 취소·석방됐고 재판에 계류중인 123명에 대해 구속취소됐다는 점을 지적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주장에 따르면 노태우 대통령 취임 당시 석방된 사람 중에는 남민전 사건 관련 무기수 등 국가보안법 조직사건 관련자가 다수 포함돼있었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참여정부 시기 박경순씨에 대해 이뤄진 사면 등에 대해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굴해낸 양 보도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한 보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조선일보>의 보도는 ‘재탕’ 혐의까지 있다. 문재인 대표가 박경순씨 등을 변호하였다는 의혹은 이미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제기된 의혹이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문재인 대표가 변호사 시절 박경순씨 등을 변호하고 나아가 2001년 이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받는데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가 당시 유신반대 시위와 집시법 위반 사건의 민주화운동 유공자 인정 여부에 대해서만 심사했고 영남위원회 사건 관련해서는 심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논란의 포인트는 민주화 운동 유공자 인정 여부에 있었지만 박경순씨 등을 문재인 대표가 변호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던 셈이다.

▲ 조선일보 25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가 이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이 사건을 이제와서 ‘특별사면’ 문제와 엮어 새로운 사실처럼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을 계기로 해서 불거진 ‘친노’를 둘러싼 논란을 ‘종북’으로 이어 붙이려는 하나의 시도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5일 1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씨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비판조의 주장을 내놓은 사실을 <막말과 조롱…‘원조 親盧’의 귀환>이란 제목의 기사로 전한 바 있다.

▲ 조선일보 25일자 사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서도 “이날 노씨는 전직 대통령 아들로 처신하기 보다는 친노의 행동대장으로 나섰다. 노씨 눈에는 그저 자신의 비아냥과 냉소, 조롱이 뒤섞인 독설에 환호하는 일부 열성 친노 지지자들만 보였던 모양이다”라며 노건호씨의 행위를 비난했다. 이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싸가지’, ‘막말’ 등의 단어를 동원하며 소위 친노세력의 예의없음에 대해 비난했는데, 이제는 이 예의없음을 ‘종북’으로 연결해 매번 반복되는 ‘종북몰이’를 다시 시작하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의 이날 지면 편집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것은 ‘공안통’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상황이라는 점이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는 ‘미스터 국보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안 분야에 정통하며 이를 신념으로 여기고 있을만큼 이념적 성향이 투철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문재인 대표를 겨냥한 ‘종북몰이’에 나서면 황교안 후보자를 앞세운 극우적 보수세력이 이에 호응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더욱 기세좋게 황교안 후보자를 옹호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권이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개혁 프레임으로 접근하면서 참여정부의 특별사면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만한 지점이다. 보수언론들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시기 석연찮은 과정을 통해 특별사면을 받은 정황이 있다며 여론몰이를 계속해왔다. 대통령도 보수언론의 이러한 행보에 발을 맞추어 참여정부에서 이뤄진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정면 충돌하며 청와대의 방침을 관철시켰던 황교안 후보자가 국무총리로 임명되면 ‘성완종 리스트’ 관련 수사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안 봐도 비디오’인 상황이 올 것이다.

결국 <조선일보>의 이날 지면 편집은 박근혜 정권과 황교안 후보자, 검찰을 향한 일종의 ‘응원’과 ‘엄호’에 가까운 행위로 볼 수 있다. 신문마다 정치적 입장과 관점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이리 저리 끼워 맞춰서 권력에 정치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비판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으로서의 본분이 아니다. 매번 맞닥뜨리는 일이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 정도다. 보수언론, 특히 <조선일보>가 언론의 본분을 다시 찾기 위한 길에 나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