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의 무기력함, 이를 이겨내는 유일한 희망은 청춘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를 명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불안은 그들의 삶을 더는 움직일 수 없는 고통으로 밀어 넣었고, 스스로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라 자기최면을 걸고 사는 게 현실이다. 이런 지독한 현실 속에서 다시 희망은 청춘일 수밖에 없다.

인상의 선택이 곧 진보다;
국가주의를 품은 가족 풍자, 천민자본주의가 잠식한 현실

노동자를 탄압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가족까지 지옥으로 몰아넣는 재벌의 횡포. 이런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지만, 그들은 재벌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데 모든 시스템을 맞추고 있다. 이런 노동자 탄압의 현실을 <풍문으로 들었소>는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영의 친오빠가 한정호 측과 합의했다는 말을 듣고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 오빠가 합의서를 보고 판단해서 사인을 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철저하게 강압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합의서 하나를 가지고 그들의 오랜 투쟁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그토록 증오하던 '한송'에서 돈을 버는 딸로 인해 분노도 했지만 편안함도 느꼈다 한다. 미행과 도청, 법원에 불려 다니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일상은 지속될 수 없었다.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노동자들은 죽지 못해서 사는 현실을 버텨야만 했다. 노동자 탄압을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그들에 의해 노동자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오해하게 된다. 그런 집요한 파괴에도 버텨내고 이겨낸 이들에게는 더욱 지독한 고통으로 압박한다.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며 법정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 노동자는 노동자 혼자가 아닌 그의 가족까지 모두 파괴되는 이유로 다가온다. 평생을 벌어도 만들 수 없는 엄청난 비용으로 협박을 하는 재벌들의 행태는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대신 사인을 한 어머니. 그 어머니가 느꼈을 고통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던 민주영이 어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은 우리 시대 노동자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 그 자체였다.

피해자가 오히려 사과해야만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속 주인은 그저 자본 그 자체일 뿐이다. 한정호가 집으로 돌아와 최연희에게 분노하게 내뱉은 발언엔 갑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자본의 속성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한정호에게 을들은 모두 도둑 같이 보일 뿐이다.

"그것들 다 돈 때문이다. 정의니 인권이니 하는데 그 주장이라는 것이 결국 임금체불, 대량해고 이면의 비자금, 다 부당하지 않냐. 그로 인해 발생한 이득을 좀 나눠먹자는 것이다"

"자기네 동네에만 왜 비가 안 오냐고? 따지려면 구름에 따져야지 왜 우리한테 따지냐"

한송과 대산그룹의 소송으로 인해 아들인 인상과 봄이 이혼에 이르고 같은 층을 쓰는 핵심 변호사들이 반기를 들고 사표를 쓴 상황에서, 한정호는 이 모든 원인을 부조리한 을들의 욕심으로 치환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고,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을들이 빼앗으려고만 한다는 한정호의 발언 속에 우리 사회 갑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돈으로 입막음을 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는 한정호는 분노하며 부당하게 얻은 이익을 을들이 자신들에게도 나눠달라고 떼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오직 하나에 맞춰 살며 편법을 일삼아 거대한 부를 일군 그들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

인상이 요구했던 사안까지 포함해 법원에 이혼 소송을 하겠다던 정호는 별첨을 통해 인상과 봄의 아들을 빼앗아 오겠다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인상은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분노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바로 인상의 문제이고 한계다.

독 선생이 언젠가는 돈과 봄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인상에게 한 달에 3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자신이 사용하는 그 모든 비용을 포기할 수 없다면 현실에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결국 자본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정호의 잔인한 반격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된다. 투자클럽을 운영하는 연희의 절친 송재원과 그의 아버지인 총리까지 희생양으로 삼아 던져버리는 그에게는 피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꼬리자르기를 통해 자신의 것들만 지키려는 현실에서 정호가 가진 힘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인상의 친구이자 그를 사랑했던 현수의 반격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안정된 삶을 발로 차버렸다. 연희가 현수를 며느리로 삼으려는 생각에 초대했지만, 그 자리에서 그녀는 폭탄 발언을 한다. 제대로 사랑도 한 번 해보지 않은 당신들이 인상과 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분노는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터진 이 분노는 곧 금수저를 문 그들이 하는 반항의 시작이었다.

부모가 편법으로 챙긴 재산을 가지고 살면 평생 돈 걱정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 그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수의 이 한 방은 결국 인상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기 어려웠던 엄청난 재산. 그 재산을 위해 다양한 편법을 생각도 해봤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한정호와 최연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본으로 채울 수 없는 현실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자본을 무기로 자식들을 조정해왔던 못난 부모. 모든 것이 돈이면 그만이라는 천민자본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하며 살아왔던 그에게 타인의 반항은 분노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자식들이 그들과 유사하게 반항하는 것은 예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상이 현재 시점에서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부모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곧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자,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역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작이다. 독일 여성과 아랍계 이민자 남자의 사랑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어떻게 인간의 영혼이 불안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지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 역시 불안을 조성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잠식되고 파괴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잔인함을 블랙코미디로 대체해 날카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는 결국 그 모든 반전의 시작은 청춘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